'이주의 책'과 '이주의 저자'를 건너뛰는 대신에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고른다. 꾸준히 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일이 줄지 않는 걸 보면 일의 화수분 속에 들어앉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기야 책도 부지런하게 사들이고 있음에도 여전히 손에 쥐지 못한 책들이 널려 있는 걸 보면, 책의 화수분 속이기도 하다. 그 가운데 이달에 꺼내놓을 책들의 목록이다.

 

 

1. 문학예술 

 

문학 쪽에서는 페터 바이스의 대작 <저항의 미학>(문학과지성사, 2016)을 고른다. 에세이나 이론서가 아니라 소설이다. "1937년부터 1945년까지의 반파시즘 저항운동을 그린" 소설. 작가는 스웨덴으로 망명했지만, 여하튼 20세기 독일문학의 기념비 가운데 하나다. 해설로는 문광훈 교수의 <페르세우스의 방패>(고려대출판부, 2012)가 미리 나왔었다. 사실 이 정도 분량이면 여름이나 겨울방학(휴가) 거리여야 하지만, 출간을 기념하여 '이달의 읽을 만한 책'으로 꼽는다. 영어판도 1권밖에 나와 있지 않기에 충분히 기념할 만하다.

 

 

두꺼운 소설을 골랐으니 얇은 시집도 몇 권. 문지 시인선 신간들 가운데 세 권을 골랐다. 젊은 시인부터 중견시인까지. 이이체, 송찬호, 허연. 가장 궁금한 건 이이체다. "나는 직업이 죄인이다/ 누구보다도 죄를 잘 짓는다"는 자랑질이 먼저 눈길을 끈다. 시인이 지을 수 있는 죄라고 해봐야 별것일 리 없을 거라는 생각이지만.

 

 

예술 쪽으로는 세 명의 화가를 고른다. 반 고흐와 변월룡, 그리고 렘브란트다. 마틴 베일리의 <반 고흐의 태양, 바라기>(아트북스, 2016)는 '해바라기'라는 '걸작의 탄생과 컬렉션의 여정'을 그린다. 문영대의 <우리가 잃어버린 천재화가, 변월룡>(컬처그라퍼 2012)은 러시아 최고 명문 레핀미술대학의 교수로 재직했던 변월룡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충실히 소개하고 있는 책. 몇년 전에 나온 책이지만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변월룡전이 진행중이어서 책을 읽을 적기이다. 물론 그의 그림들을 직접 먼저 봐야겠지만(기대 이상의 인상을 받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그리고 게으로그 짐멜의 <렘브란트>(길, 2016)가 번역돼 나왔다. 역시나 김덕영 교수가 옮겼다. 렘브란트는 변월룡이 가장 좋아한 화가이기도 하다.

 

 

2. 인문학

 

인문 분야에서는 지젝의 <새로운 계급투쟁>(자음과모음, 2016)과 호가트의 <교양의 효용>(오월의봄, 2016)을 고른다. 이미 언급한 책들이어서 군말을 더하진 않는다. 거기에 한 권 더 얹자면, 윌리엄 레디의 <감정의 항해>(문학과지성사, 2016). '감정 이론, 감정사史, 프랑스혁명'이 부제다. 저자는 생소하지만 역자 김학이 교수에 대한 신뢰 때문에 주저 없이 손에 들게 된다.

"미국 듀크 대학의 역사학 및 인류학 교수로 재직 중인 윌리엄 레디의 <감정의 항해>. 이 책은 감정이 '생각'과 완전히 다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인류학과 심리학 분야에서 진행되어온 최근의 감정 연구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뒤, 감정사를 연구하기 위한 새로운 이론 틀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에 입각하여, '감상주의'가 수백 배, 수천 배 증폭되었던 프랑스혁명 시기를 풍부한 역사적 사료를 활용하여 흥미롭게 분석한다."

 

조금 가볍게 읽을 만한 책도 세 권. 자크 아탈리의 <언제나 당신이 옳다>(와이즈베리, 2016)은 자기와 자존심을 주제로 한 책. "아탈리는 고대 사상, 종교, 근대 철학 속 '자기 자신 되기'의 의미와 역사를 더듬으며, 스티브 잡스, 싯다르타, 피카소, 제프 쿤스, 에드워드 스노든, 고르바초프를 비롯하여 예술가, 기업가, 정치가, 활동가 등 분야를 망라한 다양한 인물들의 발자취를 따라, 주도적으로 인생을 경영하여 성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시인이자 번역가인 전대호의 시집도 아니고 번역서도 아닌 첫 책, <철학은 뿔이다>(북인더갭, 2016)는 대놓고 논쟁을 거는 책이다. '어느 헤겔주의자의 우리 철학 뒤집어 읽기'가 부제로, "헤겔철학을 화두 삼아 저자가 논쟁의 장으로 끌어들인 철학자들은 바로 김상봉, 이진경, 김상환, 이어령이다. 현재 우리 지식계를 대표하는 이들과 맞서며 저자는 주체와 근대의 문제를 새롭게 조명한다."

 

리처드 스티븐스의 <우리는 왜 위험한 것에 끌리는가>(한빛비즈, 2016)는 왠지 읽어본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인데(제목부터 새롭진 않다) 그럼에도 신간이다. 원제는 <검은 양>(2015) "이 책의 원제인 검은 양(Black Sheep)은 자기 외에 모두 하얀 양인 무리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양을 말하는 것으로, 집안이나 조직의 골칫거리, 말썽꾼, 이단자를 말할 때 쓰인다. 자신이 검은 양이라고 생각하는가? 기왕 나쁜 짓을 할 바에는 일탈행위의 혜택을 누리는 실속 있는 검은 양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직업이 죄인이라고 한 이이체 시인도 마스터함직한 책이다.

 

 

3. 사회과학

 

역시나 언급한 바 있는 존 그레이의 <가짜 여명>(이후, 2016)을 제외하면 토마 피케티의 신작 <세금혁명>(글항아리, 2016)이 있다. "공정하고 실용적인 세금 개혁을 위한 제언'이란 부제의 세금혁명 가이드. 국민의 소중한 재산인 세금이 질이 나쁜 권력의 손에 쥐어지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를 여실히 보여준 게 '단군 이래 최대 국책사업'이라는 4대강 사업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그리고 그 일에 북치고 장구친 자들은 누구인지 따진 책도 이달에는 읽어봐야겠다. 환경운동연합과 대한하천학회가 같이 펴낸 <녹조라떼 드실래요>(주목, 2016). "환경운동연합과 대한하천학회가 4대강 사업의 진실을 기록하고, 4대강 사업에 대한 정치인, 전문가, 언론가 및 사회 인사들의 발언을 모아 책으로 엮었다. 4대강 사업을 찬동하고 추동한 인물들과 집단이 미래에라도 역사의 심판을 받도록 이들의 명단과 발언과 과오를 기록하려는 것이다. 저자들이 생생하게 전하는 4대강 사업의 진실 속으로 함께해 보자."

 

 

4. 과학

 

과학분야에선 진지한 진화생물학 책 한권과 가벼운 물리학 책 두 권을 고른다. 호모 스미스의 <내 안의 바다, 콩팥>(뿌리와이파리, 2016)이 진지한 책. '물고기에서 철학자로, 척추동물 진화 5억 년'을 다룬다. <물고기에서 철학자로>가 원제. "콩팥이라는 특정 기관의 진화를 일목요연하게 다루며, 물고기에서 인간에 이르는 다양한 척추동물들이 어떻게 콩팥을 정교하게 다듬어왔는지를 보여준다. 가벼운 책이라고 한 건 과학팟캐스트 '과학하고 앉아있네' 시리즈를 가리킨다. 양자역학 편으로 <김상욱의 양자역학 콕 찔러보기>(동아시아, 2015)에 이어서 그 속편으로 <김상욱의 양자역학 더 찔러보기>(동아시아, 2016)가 나왔다. 양자역학에 관해서 이보다 더 쉬운 안내서는 없다고 해야 할 터. 정말 그런지는 읽어봐야 알겠다(읽어도 모르는 게 양자역학이라지만).

 

5. 책읽기/글쓰기

 

 

민음사 대표를 지낸 출판평론가 장은수의 <출판의 미래>(오르트, 2016)를 책읽기/글쓰기 책을 꼽기에 앞서서 고른다. '세계 출판의 최전선에서 배우는 미래 출판 전략'이 부제, 출판의 향방을 좀 들여다 보고 손에 닿는 책을 읽는 게 순서에 맞을 듯해서다.

 

그리고 정여울의 <공부할 권리>(민음사, 2016). 일종의 독서에세이로 "마르크스에서 지그문트 바우만까지, <리어 왕>에서 <이방인>까지 저자가 종횡무진 횡단했던 책 읽기를 삶의 지도에 그려 넣은 책"이다. 더불어, 작가들의 멘토 바버라 애버크롬비의 창작 가이드북도 <작가의 시작>(책읽는수요일, 2016)이란 제목으로 다시 나왔다. 나의 추천사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멋진 글에 대한 영감이 떠오를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생각은 집어치워라. 사뮈엘 베케트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를 키워주는 건 더 나은 실패뿐이다. 더 낫게 실패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인생이란 초고도 조금씩 개선될지 모른다. 인생을 어떻게 이야기로 만들 것인가 고민하는 독자에게 당근과 채찍이 돼줄 책이 여기 있다. 꾸준히 글을 쓰며 ‘나는 작가다’라고 말하는 작가라면, 매일 아침에 혹은 매일 점심에 혹은 매일 저녁에 글을 쓰려고 자리에 앉을 때마다 이 책을 찾을 것이다."

16. 04. 03.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아무래도 셰익스피어와 함께 서거 400주년을 맞은 세르반테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2월에도 골랐었지만, 안영옥 교수의 해설판도 나온 김에 <돈키호테> 읽기를 다시 시도해봄직하다. 나로선 이번 가을에 강의에서 다시금 다루려 하지만, 미리 읽는다고 해서 우리의 평판이 나빠지거나 하는 건 아니다. 언제 읽어도 제때인 것이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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