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위 인문학자이자 비평가 겸 소설가', 프로필의 소개가 그렇다. 대개는 수전 손택을 떠올리지 않을까. 시리 허스트베트다. 바로 입에 익는 이름은 아니다. 여러번 중얼거려야 한다. 그래도 작가의 이미지가 바로 잡히지는 않는다. 하나 더 얹어야 한다. "시 낭송회에서 작가 폴 오스터와 만나 이듬해 결혼해 뉴욕에서 살고 있다." 아하! 이건 시리 허스트베트를 그제서야 알게 됐다는 감탄사가 아니다. 어떤 경로로 소개되었는지 가늠이 된다는 뜻이다. 설사 그런 경로가 아니더라도 '폴 오스터의 아내'는 속지의 광고문구 정도는 된다.

 

 

파파라치가 불을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종의 스타 커플. 그렇더라도 허스트베트를 내가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가장 먼저 소개된 <사각형의 신비>(뮤진트리, 2012)를 구입한 게 작년 여름인 걸 보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손에만 들었을 뿐 읽지 않아서(이후엔 또 어디에 두었는지?) 대면했다기보다는 스쳐지나갔다고 해야 맞다. 그러곤 지난 달이다.

 

 

릭 게코스키의 고급한 에세이 <게고스키의 독서편력>(뮤진트리, 2016)이 다시 나와서(품절됐던가?) 손에 들었다가 뒷표지에서 시리 허스트베트의 출간 목록을 보게 되었다. 그러고는 별다른 사전 정보 없이, 폴 오스터의 아내라는 사실도 모르고, 몇 권을 원서와 함께 주문했다(원서가 비싸지 않은 건 제법 독자가 있는 저자란 뜻도 된다). 에세이 <살다, 생각하다, 바라보다>(뮤진트리, 2014)를 며칠 전에 받았고, <불타는 세계>(뮤진트리, 2016)는 어제 받았다. 이 책들의 원서도 엊그제인가.

 

 

다시 한번 혼자 놀란 건 <불타는 세계>가 소설이라는 점. 그럼 뭔줄 알고 주문했단 말인가? <사각형의 신비>나 <살다, 생각하다, 바라보다>가 에세이여서 막연히 그런 줄 알았던 모양이다. 아니면 장르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도. 실제로 <불타는 세계>는 '소설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책이라는 게 책소개다. 그리고 그게 마음에 들었다. 원저까지 구한 건 나대로의 안목이라면서 혼자 부듯해하고. 게다가 더 흡족한 건 국내에선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라는 점. 폴 오스터 독자의 절반의 절반도 안될 듯싶은 소수의 독자가 그녀의 독자다. 시리 허스트베트라는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우리끼리 말하자면 이건 흔한 일이 아니다.   

 

책머리에 붙은 '작품 해설'에서 역자는 이런 소감을 적었다. "번역을 하다보면 아주 가끔은, 허스트베트의 전작 <내가 사랑했던 것>과 이번에 출간되는 <불타는 세계>처럼, 독자들의 지성과 독서 행위에 대한 헌신을 철저히 믿고 지적으로 훈련된 독자들이 투입하는 노력에 감동적으로 보답하는 책들을 만날 때가 있다." 무슨 속뜻이냐면, 이 책은 매우 지적이어서 당신이 읽어내기 힘들지 모르지만(아니 필히 그럴테지만) 그래도 읽어낸다면 독서에 기울인 노력 만큼의 감동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얘기다. 이 또한 만족스럽다. 허스트베트란 작가가 뜰 일은 없다는 얘기니까(영미에서는 사정이 다를까?). 그러니까 시리 허스트베트는 우리끼리 읽는 작가이고, 내내 우리끼리만 읽는 작가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그녀의 전작 <내가 사랑했던 것>(뮤진트리, 2013)을 미처 구입하지 않은 게 후회됐다. 나름 계산은 <불타는 세계>를 먼저 읽어보고 판단하자는 것이었는데, 첫 장을 넘기기도 전에 판단이 종료되어서다. '시리 허스트베트의 모든 책'이라고. 한가지 아쉬운 건 한국어판의 표지들이다. 어쩌면 그렇게, 눈에 안 띄기로 작정한 표지들인지! <내가 사랑했던 것>과 <남자 없는 여름>만 보아도 그렇다. 원서 표지가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혹은 이 작가를 절대 띄우지 말아야겠다는 편집자의 속내가 반영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만 사랑하는 작가로 남겨두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무의식적으로) 개입한 것인지도.

 

작가는 1955년생이다. 요즘은 나이 인플레를 고려해야 하지만, 그래도 환갑을 넘긴 나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만난 지 얼마 안된 사이니 좀 젊은 시절의 이미지로 시작해보기로 하자.  

 

 

여기, 시리 허스트베트의 유혹적인 세계가 있다...

 

16. 04. 02.

 

P.S. 아침에 페터 바이스의 <저항의 미학>(문학과지성사, 2016)에 대해 적은 페이퍼를 날려먹었다(로그아웃되는 바람에). 다시 적을 기력이 없어서, 허스트베트 이야기로 건너뛴다. '저항의 미학에서 불타는 세계로'가 오늘의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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