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도진은 러시아의 저명한 연극연출가이자 말르이(말리) 극장의 예술감독이다. 재작년에 그의 체호프 공연 한편을 보고 적어둔 감상을 여기에 옮겨놓는다. 공연과 관련한 이미지들을 찾아넣으면 그때의 느낌이 조금은 되살아나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해서, 연극은 시간예술이면서 공간예술이지만, 이 글-정리는 공간의 이미지를 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성격이 더 강하겠다. 아래 사진은 레프 도진.

 

 

한편 도진의 작품들은 <가우데아무스> 등이 이미 한두 번 내한 공연된 바 있는데, 소식에 따르면 올 5월 20-21일 양일간에 걸쳐서 그가 이끄는 말르이극단의 <형제자매들>이 LG아트센터에서 국내 초연된다.  러시아에서는 1985년에 초연한 화제작이라는데,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스탈린 정권 아래 살고 있는 러시아 민중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는 <형제자매들>은 억압된 자유와 빈곤한 삶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의 강한 생명력을 예찬한다"고. "40여명의 배우들이 7시간 동안 뿜어내는 에너지와 감동은 영화의 시대이자 뮤지컬의 시대인 오늘날에도 연극이라는 장르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고 하니까 한번 기대해봄 직하다. 아래 사진은 페테르부르크의 말르이극장.  

 

내가 지난주(2004년 6월) 수요일에 ‘타간카’극장에서 본 레프 도진의 <바냐 아저씨>가 바로 ‘마냐 아줌마와 바냐 아저씨’(마야코프스키) 류의 연극이다(<바냐 아저씨>를 간혹 <바냐 외숙>이라고 옮기는데, 촌수야 그렇지만 ‘정떨어지는’ 번역이다). 그러니까 <바냐 아저씨>는 안톤 체호프(1860-1904)의 대표작이면서(나는 ‘체홉’이라고 즐겨 쓰지만, 여기서는 번역 관례대로 ‘체호프’라고 표기하겠다), 러시아 정통극의 상징이다. 

 

<바냐 아저씨>를 그의 ‘대표작’이라고 부르면, 약간 서운해 할 사람들도 있겠다. <갈매기>, <세자매>, <벚꽃동산>의 팬들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여전히 <바냐 아저씨>이고, 그걸 감추기는 어렵다. 내 생각에, 체호프의 이 네 작품에는 인생의 사계(四季)가 반영돼 있다. <갈매기>는 예술에 대한 열정과 좌절의 드라마이면서 동시에 봄의 드라마이고, 청춘의 드라마이다. 니나는 물론이거니와 트례플료프도 젊디 젊다. 그의 권총자살은 그 젊음을 웅변한다. 그는 미숙하지만 구차하지는 않은 것이다.

 



 

 

 

 

 

 

 

하지만, <바냐 아저씨>와 <세 자매>에는 구차하게라도 삶을 계속 이어나가는, 이어나가야 하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이들의 삶은 언제 올지도 모르는 진짜 삶, 삶다운 삶을 준비하고 고대하는 데 다 소진된다. 이들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다 비슷한 족속들일 것이다. 그들은 삶을 항상 고대하지만, 삶은 언제나 그들을 그냥 통과해간다. 마치 가구처럼, 무슨 간이역처럼. 그런 꿈이 허깨비였다는 걸 알게 된 이후에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데 이들의 삶이 가진 비극성이 있고, 진실이 있다(진실은 잔인하다!). <바냐 아저씨>는 그 진실의 남성-버전이고, <세자매>는 여성-버전인바, 드라마에서 이들의 삶은 여름에서 가을로 간다. 어느덧 그들의 젊음은 사라졌거나 대책없이 사라져가고 있다.

 

한편, <벚꽃동산>은 조락(凋落)의 드라마이자, 장년의 드라마이며, 체호프식의 ‘엔드게임’이다(어떤 연구자들은 <벚꽃동산>에서 부조리극의 ‘원조’를 읽어내기도 한다). ‘벚꽃동산’ 대신에 곧 ‘별장’이 들어서는 것처럼, 한 세대(혹은 한 시대)는 가고 또 다른 세대(혹은 또 다른 시대)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벚꽃동산>에는 ‘가을’에서 ‘겨울’로의 그러한 이행의 과정이 쓸쓸하게, 그러나 의외로 코믹하게 그려져 있다. 

<갈매기>를 무척 좋아했던 한 친구와는 다르게(그 친구는 구차하게 살기를 거절했다), 나는 처음부터 <바냐 아저씨>였고, 아직도 <바냐 아저씨>이다. 그래서, 이대로라면, 마흔 일곱까지는 조숙한(조로한) 편이게 된다. 바냐 아저씨의 나이가 마흔 일곱이므로. 하지만, 그 이후에라도 <벚꽃동산>을 좋아하게 되는 건 꺼려진다. 그건, 나의 분류에 따르면, ‘인생의 무대’에서 곧 퇴장할 사람들이나 ‘절절하게’ 즐길 만한 드라마이므로(‘잔혹극’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레프 도진이 체호프극 연출가로서 명성을 얻은 것은 이 달 1일부터 24일까지 타간까 극장(사진. 전철역 ‘타간까’에서 나오자 마자 있는데, 올해로 40주년을 맞이했고, 비소츠키가 활동했던 극장으로도 유명하다)에서 열리는 ‘레프 도진 연극제’의 레파토리에도 들어가 있는 <제목 없는 희곡>의 성공에 힘입은 걸로 보인다. 지난번에 언급한 대로, 이 작품은 체호프가 최초로 시도한 장막극이자 실패한 장막극, 그래서 미완성으로 남은 드라마이다. <애비 없는 자식>이란 제목은 체호프의 한 편지에서 언급되며, 공식적인 제목은 아니다. 그리고, 흔히 일컬어지는 <플라토노프>란 제목은 독일인들이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면서 붙인 제목이라고 한다. 그리고, 아마도 도진은 이 작품을 새롭게 각색한 모양이다(원작은 공연 분량으론 너무 길다). 도진에 의하면, 우리의 삶 또한 ‘제목 없는 희곡’이다. 아래 사진은 <제목 없는 희곡>의 한 장면. 참고로, 니키타 미할코프의 영화 <피아노를 위한 미완성 희곡>도 같은 원작이다.

 



이번 연극제에 대한 정보를 좀더 일찍 알았더라면 (비싸더라도) 표를 구해볼 수 있었을 텐데, 룸메이트가 <바냐 아저씨>를 예매하고, 다른 날 다른 작품들을 예매하러 갔을 때 이미 모든 공연의 표가 매진이었다. <체벤구르>도, <악령>도, <제목 없는 희곡>도. 그래서 결국, <바냐 아저씨>만 보게 된 것인데, 다음에 그의 작품들을 보려면, 아마도 페테르부르크에 가야 할 것이다. 레프 도진은 원래 페테르(페테르부르크를 러시아에서는 ‘삐쩨르’라고 약칭해서 부른다)의 ‘말르이 극장’에서 활동하는 연출가이다(페테르에는 현대식 건물의 ‘제2 말르이극장’도 곧 건축될 예정이다. 지난번 설계공모에서 프랑스 건축가의 출품작이 선정됐다).

 

그래서 이번 공연의 원제는 ‘모스크바에서의 레프 도진의 공연들’이며 지난 봄에 있었던 제10회 ‘황금가면’ 연극제에서 <바냐 아저씨>로 도진이 연출상을 받은 걸 기념하여 기획된 걸로 안다. 그러니까 도진의 모스크바로의 ‘화려한 외출’인 셈이다. 배우들은 물론 전부 말르이극장 소속 배우들이며, 무대장치도 페테르에서 공수해 왔다고 한다. 참고로, 모두 7편이 공연된 도진의 연출작(혹은 감독작) 가운데, 제일 첫작품은 류드밀라 페트루셰프스카야의 <모스크바 합창단>이었다. 페트루셰프스카야? 지난번에 번역해서 올린 단편 <복수>의 작가 말이다. 그녀는 극작가로서도 상당한 명망을 갖고 있다. 막심네에서 들춰본 그녀의 희곡선집에는 <모스크바 합창단>이 빠져 있어서, 자세하게 어떤 내용인지는 모르겠다(그녀의 작품이 일부 <러시아 현대희곡>에 번역/소개돼 있다).

 

 

 


 

 

 

 

 

도진이 연출한 체홉극 목록에서 <바냐 아저씨>는 <제목 없는 희곡>과 <갈매기>, <벚꽃동산>에 이어진 작품이다. 그러니까 <세자매>가 목록에 빠져 있는 셈인데, 한 잡지의 인터뷰 기사를 보니까 현재 오페라 <엘렉트라>를 준비중인 도진은 기회가 되면 <세자매> 또한 연출해볼 의향을 갖고 있다(그는 올해로 환갑을 맞았다). 한국에서 체호프의 공연을 거의 본 적이 없기 때문에(나는 연극을 즐겨보는 편이 아니다), 도진의 <바냐 아저씨>가 어느 정도 뛰어난 작품인지는 잘 가늠할 수 없었지만, 객석이 꽉 들어찬 가운데 배우들이 가구들을 하나 둘씩 날라다 놓으면서 시작된 공연은 상당히 품위 있고 세련돼 보였다.


우리의 ‘바냐 아저씨’를 연기한 배우는 세르게이 쿠르이쇼프인데, 도진의 9시간짜리 <악령>에서는 키릴로프 역을 맡고 있고(내가 갖고 있는 이미지로는 차라리 ‘샤토프’ 역에 더 어울리는데), 이번 <바냐 아저씨>로 ‘황금가면’ 연극제에서 남자연기상을 받았다. 그런 걸로 미루어볼 때, 연기력을 인정 받는 배우이지만, 내가 상상해온 ‘바냐 아저씨’와는 조금 다른 면모의 배우였다. 일단 키가 좀 크고(그래서 어정거리며 걷는다), 갈색 머리는 웨이브의 장발이며, 양복을 아주 단정하게 입었고, 약간 술 취한 듯한, 질질 끄는 말소리에는 콧소리가 좀 들어가 있었다. 다른 배우가 연기한 ‘바냐 아저씨’를 보아야 감을 좀 잡을 거 같다.

바냐 아저씨가 헤프게 어정거리다 말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도진의 <바냐 아저씨>에서 두드러지는 건 의사인 아스트로프인데, 이 역을 맡은 배우 표트르 세마크는 단단한 체구에 똑 부러진 말투로 아스트로프의 열정과 냉소주의를 연기했다. 이 세마크란 배우가 도진의 <갈매기>에서는 역시 의사인 도른 역을, <악령>에서는 주역인 스타브로긴 역을 맡고 있다(이런 내용은 당일 70루블(2,800원)을 주고 산 전체공연 팜플릿에는 배우들의 사진과 약력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알게 된 것이다).

 

 

배우들의 이러한 면면으로 대략 도진 버전의 <악령>을 그려볼 수 있다. 아스트로프와 함께 도진의 <바냐 아저씨>를 끌고 가는 건 늙은 학자 세레브랴코프와 결혼한 ‘미의 화신’ 옐레나 안드레예브나인데, 크세니야 랍포포르트란 여배우가 연기했다. 이 배우는 <갈매기>에서 니나도 맡고 있었는데, ‘아름다우면서 콧대 높고 허영에 찬 젊은 여자’의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다(실제로 눈이 크고 콧대가 높은 배우였다. 머리는 곱슬머리. 아니, 파마머리인가?). 사진은 아스트로프와 옐레나.

도진의 <바냐 아저씨>에서의 클라이막스는 예상과 다르게, 3막에서 영지를 매각하는 게 좋겠다는 세레브랴코프의 발언에 분노한 바냐 아저씨가 그에게 권총을 겨누지만 그마저 제대로 못 맞히는 장면이 아니라, 4막에서 아스트로프와 엘레나가 단둘이 작별의 포옹을 나누는 장면이었다. 둘은 포옹만 하는 게 아니라 열정적으로 상당히 긴 시간 또한 키스를 하는데, 그 바람에 남편 세레브랴코프를 비롯한 다른 식구들이 모두 그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객석에서는 탄성이 나왔다).

 

내가 읽은 <바냐 아저씨>에도 그런 장면이 있었나 싶어서 기숙사에 돌아와 확인해보니까 원작은 그렇지 않았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에서는 둘이 잠깐 포옹했다가 서로가 화들짝 놀라서 떨어진다(사실 그런 게 ‘체호프적’이다). 즉, 원작에서는 아스트로프가 바냐 아저씨 못지 않은 ‘등신’으로 나오는데(그래서 둘이 친구로서 어울린다), 도진의 <바냐 아저씨>에서는 아스트로프가 나름대로 박력있는 남자로 나옴으로써 ‘배신’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나는 이러한 도진의 해석이 창의적인 것인지 오바한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물론 보기엔 더 좋다. 이 ‘한심한 인물들’의 드라마에 그래도 열정적인 키스씬이라도 나오니까 말이다).

 



엘레나의 남편이자 바냐의 처남이자 소냐의 아버지, 세레브랴코프 역은 이고르 이바노프란 배우가 맡았는데(사진은 세레브랴코프와 옐레나), 그는 <벚꽃동산>에서는 로파힌 역을, <악령>에서는 레뱌드킨 역을 맡고 있었다. 로파힌 역을 맡기에는 너무 젊잖고 완고해 보이는 외모인데(김무생 타입이다), 콘찰로프스키의 영화 <바냐 아저씨>에 나오는 아주 얌체 같은 늙다리 세레브랴코프에 비하면, 나름대로 권위적이고, 젊은 아내 엘레나를 거느릴 만한 세레브랴코프를 연기했다.

 

그밖에 주요 배역으론 소냐를 연기한 엘레나 카릴니나와 첼레긴을 연기한 알렉산드르 자비얄로프가 있다. 미스터리한 것은 이 배 나온 ‘첼레긴’이 <갈매기>에서 트레플료프를 연기한다는 점(사진에서 기타를 치고 있는 남자). 자비얄로프란 배우는 이고르 이바노프와 마찬가지로 1954년생이니까 우리 나이로는 51세이다. 나는 (첼레긴 역에나 딱 어울리는) 그가 연기하는 트레플료프를 도저히 상상하기 힘들다!

기타 등등. 이제 마무리이다. 알다시피 <바냐 아저씨>는 “바나 아저씨, 우리, 일을 하는 거예요.”로 시작되는 소냐의 대사로 마무리되는데, 도진 버전에서는 이 마지막 대사가 비교적 절제된 톤으로 담담하게 전달되고 있었다. 룸메이트에 따르면, 한국의 <바냐 아저씨> 공연에서는 이 마지막 대사에 상당히 힘을 준다고(거의 울부짖는 수준으로).

 

하여간에, 우리들 ‘소냐’나 ‘바냐’들은 남은 여생을 그저 일이나 하는 수밖에 없겠다. 천국에 가서 그간의 노고를 위로 받고 쉬게 될 때까지 말이다. 그것이 냉철한 연민의 작가 체호프가 <바냐 아저씨>에서 내리는 결론이다. 이건 위안일까, 냉소일까? 혹은 낙관주의일까, 비관주의일까? 둘 다이다. 그래서 체호프를 ‘Optimo-pessimist’라고 부르기도 한다. 되는 일도 없고, 굳이 안 되는 일도 없는, 그래서 슬프도록 즐거운, 혹은 눈물 나게 즐거운 삶을 우리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갑시다!(막) 짝짝짝…

 

06. 03. 07.

 

P.S. 체호프 원작의 영화들 얘기는 조만간 다른 자리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참고로, 도진과 말르이극장에 관한 영어본 소개서로는 마리야 셰브쵸바의 'Dodin and the Maly Drama Theater'(Routledge, 2002)가 있다. 한번 구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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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레프 도진과 말리드라마극장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4-07 21:59 
    뜻밖의 책이면서 '오늘의 책'이라 할 만한 책은 마리아 셰프초바의 <레프 도진과 말리드라마극장>(동인, 2010)이다. 이미 여러 차례 방한한 바 있는 러시아의 연출가 레프 도진에 관해서는 여러 차례 포스팅한 적이 있고, 셰프초바의 책도 관심도서로 분류했었지만 막상 번역까지 될 줄은 몰랐다. 반가운 마음에 바로 주문을 넣었다. 도진의 <바냐아저씨>가 내달 서울에서 공연될 예정이기도 해서 더욱 의미가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