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을 앞두고 있는데다가 밀린 일들 때문에 '마지막 초읽기'에 몰려 있는 처지여서 한가하게 책소개나 늘어놓을 형편이 아니지만 막간에 몇 자 적는다(아마도 이 소개는 좀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다). 이런 건 ('사고'라기보다는) 그냥 '본능'이라고 해야겠다. 나를 보전하며 나를 망치는.

 

 

 

 

먼저, 조셉 캠벨(1904-1987)의 <신화의 이미지>(살림, 2006)을 꼽아두고 보자. 저자는 따로 설명이 필요없는 "미국의 신화종교학자, 비교신화학자"이며 "20세기 최고의 신화 해설자"이다. 더불어 대중적으로는 가장 유명한 신화학자. 소개에 따르면 캠벨이 생애 마지막으로 펴낸 저작이라고 하는데, 원저 'The Mythic Image'가 1974년 저작으로 돼 있으니까 그의 나이 70세에 나온 책이다(이후에 캠벨은 '여생'을 살았나 보나). 

책은 "6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으로 전세계 각 문화권에 퍼져있는 신화들을 4백 50여장의 크고 화려한 컬러 도판과 함께 소개하고, 그 상징성과 함께 이들을 궤뚫는 신화의 원형(archetype)을 분석한다"고 하니까 제목의 '이미지'는 수사이거나 겉멋이 아니다. 책은 말 그대로 신화의 방대한 이미지들을 잔뜩 보여주는 책인 것. 그러니까 600쪽의 분량이라고 하더라도 '부담'스럽지는 않겠다. 신화 이미지 '사전' 정도로 활용할 수 있을 테니까. 아래 그림은 '신화학자의 삶'을 이미지화한 것이다.

강의록들을 포함하여 캠벨의 저서들은 차고 넘칠 만큼 번역돼 있다. 그렇다고 그의 펴낸 책들이 전부 망라돼 있는 건 아니겠지만, 우리의 인문서 번역 현황에 비추어본다면 다소 과잉으로 여겨질 정도이다. 그 일등공신은 짐작에 <신화의 힘>과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등을 번역 소개한 우리시대의 '신화 전도사' 이윤기 선생이다. 몇 차례 개정판이 나온 걸로 알지만, 내가 최초이자 유일하게 접한 캠벨의 저작은 <신화의 힘>(고려원, 1992)이다. "비교신화학의 세계적인 석학 조셉 캠벨과 저널리스트 빌 모이어스의 TV 대담을 책으로 엮어낸"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이 신화학 입문서로 추천하곤 한다. 아직은 신화쪽으로 별로 끌리지 않는 탓에 캠벨의 다른 저작들은 모두 나로선 미래의 책들이다.

 

 

 

 

<문화국가>(경성대출판부, 2004)의 저자 마르크 퓌마롤리의 <100편의 명화로 읽는 그리스 로마신화>(마로니에북스, 2006)도 얼마 전에 나온 이 분야의 관련서이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쪽은 그래도 신화와 영화 쪽인데, 유재원의 <신화를 읽는 영화 영화를 읽는 신화>(까치글방, 2005), 강대진의 <신화와 영화>(작은이야기, 2004) 등이 국내 전문가들의 저작이고,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이 제시한 '영웅의 여정' 패러다임에 따라, 50편의 영화에 담긴 신화적 구조를 탐구"하고 있는 스튜어트 보이틸라의 <영화와 신화>(을유문화사, 2005)가 유익한 독서 자료이다. 다소 진부한 소개이긴 하지만, 롤랑 바르트의 <현대의 신화>(동문선, 1997)도 신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책이다. 

 

 

 

 

'위대한 작가들의 창조적 열병'이란 부제를 갖고 있는 <하이퍼그라피아>(휘슬러, 2006)가 두번째 책이다. 책의 기본적인 시각에 따르면, 작가를 비롯한 글을 쓰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크게 두 가지 양태가 존재한다고 한다. "하나는 아이디어가 무한대로 쏟아져나와 막힘없이 글을 써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만족할만한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인데, "전자를 의학 용어로 '하이퍼그라피아(hypergraphia)', 후자를 '블록 현상(writer's block)'이라" 한다고(어느 것이 더 고통스러울까?). 

하버드 의대 교수인 저자는 자신이 경험했던 조울증과 하이퍼그라피아 증상에 근거하여 여러 천재적인 작가들의 임상사례와 자기 치유법을 소개한다고 한다. '천재로서의 작가'에 대한 신화를 냉정하게 해부하는 '천재와 광기' 또는 '무슨 신드롬' 류의 새로운 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첫장이 "도스토예프스키, 발작을 일으키다"이다. 물론 도스토예프스키의 발작은 간질 발작을 가리킨다. 참고로, 작가의 이 특이 병력은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에게도 반영돼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백치>의 주인공 므이슈킨(미쉬낀) 백작이다.  

 

 

 

 

세번째 책은 루마니아 태생의 미술사학자 빅토르 스토이치타(1949- )의 <그림자의 짧은 역사>(현실문화연구, 2006). 원제는 'A Short History of the Shadow'(1997)이며, 375쪽 분량이니까 그렇게 짧지는 않다. 소개에 따르면, "이 책은 재현의 담론에 중심에 서 있는 그림자를 미학과 서양 문화사의 맥락에서 바라본다. 지은이는 회화, 문학, 사진, 영화, 만화, 광고 등 서양 문화사 전반에서 등장하는 그림자의 의미와 상징성을 풀이한다. 이를 통해 예술가들이 그림자를 묘사하기 위해 들인 기술적 도전을 보여주고, 더 나아가 이 도전이 바로 예술의 시초라는 점을 지적한다. 플라톤의 동굴의 우상 비유 등의 이야기와 다양한 예술작품을 사례로 들고 그 안에 등장하는 그림자가 예술가들의 자기반영의 기능을 한다는 주장을 담았다. 또한 이들 작품들의 컬러 및 흑백 도판 110개를 수록, 볼거리를 더했다." 

A Short History of the Shadow Book

저자는  소르본대학에서 국가박사학위를 받고 여러 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는 스위스의 한 대학에 재직중이라는데, <스페인 미술 황금기로의 꿈같은 체험Visionary Experience in the Golden Age of Spanish Art>, <자각하는 이미지The Self-Aware Image> 등의 다른 저서도 갖고 있다고. 로마대학에서 수학한 경력도 있지만, 외모상으로는 이탈리아 사람을 닮았다. 내가 읽고 싶은 그의 또다른 책은 <몬드리안>(1979)이다.

 

 

 

 

그림 책 얘기가 나온 김에 랜덤하우스중앙에서 나오기 시작한 '내 손 안의 미술관' 시리즈도 꼽아두어야겠다. 1차분으로 나온 책들 가운데에서는 내 맘대로 꼽자면 단연 닐스 오켈의 <브뢰겔: 이상한 천국의 풍경을 꿈꾸는 화가>이다. 이미 시공사에서 나온 <브뢰겔>(2001)을 갖고 있지만, 이 책은 이 시리즈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그림 한 점에 대한 자세한 정보와 읽기를 제공해주고 있는 책이다.

즉, "화가 브뤼겔(1525-1569)의 예술관과 그의 그림 '게으름뱅이 천국'(1567)의 탄생 배경을 소개하는 책"인데, 제대로 읽기를 선호하는 나의 취향과 맞아떨어진다. 게다가 미술사학자 노성두의 번역이라 더 믿음이 가고. 아마도 이전에 마루(금호문화)에서 나왔던 <화가가 꿈꾸었던 이상한 천국의 풍경>(2000)과는 같은 책으로 보인다(이번에 더 번듯하게 나오긴 했지만).

한편, 이 신비로운 16세기 화가는 러시아의 영화감독 타르코프스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아래는 브뢰겔의 대표작 중 하나이면서 영화 <솔라리스>에 등장하는 '눈 속의 사냥꾼'(1565).

네번째 책은 프랑스 작가 줄리앙 그라크의 <시르트의 바닷가>(민음사, 2006). 세계문학전집의 책으론 오랜만에 꼽아보는데, 원제는 'Le Revage des Syrtes'(1951)이다. 그라크의 소설로는 처음 소개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숲속의 발코니>(책세상, 2001)가 이미 나와 있었다. 요즘은 이름이 생소한 작가들도 많이 소개되지만 '전설'로만 남아 있는 작가들도 드물지 않은데, 내게 줄리앙 그라크는 그런 작가이다(국내에도 전공자들이 여럿 있어서 '거장'이란 입소문은 진작부터 돌았지만 진상을 확인할 도리가 없었다. 해서, 재작년엔 다른 작품이지만 러시아어본도 사두었다! 데뷔작인 <아르골 성>). 이번에 나온 작품은 그 오랜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을까 싶다. 제목의 '시르트'는 아프리카 북부 지중해 연안의 유사(流沙) 지방을 뜻하는 모양이다.

 

작품은 "300년 이상 휴전이 지속되고 있는 가상의 국가 오르세나를 배경으로 한 소설"로서 "주인공 알도의 일상이 정치하고 시적인 문장들을 통해 그려진다"고 한다. "베일에 싸여 있던 프랑스의 은둔 작가 쥘리앙 그라크는, 1951년 이 작품에 수여된 공쿠르 상을 거부하면서 비로소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다"는데, 그 이전인 "1949년 쥘리앙 그라크는 '뱃심의 문학'이란 글을 발표하면서 프랑스 문학계와 결별한다"고. 

"대형 출판사들이 영리 추구를 위해 서로 다투고 나눠 먹는 문학상 제도와 당시 문단을 지배하던 실존주의 유파를 표적으로 하는 도발적인" 평문이었다는데, 내용 자체는 먼 나라 얘기 같지 않다(우리도 배짱좋게 문학상 좀 거부하는 작가가 이젠 나와주었으면 싶다. '노벨문학상' 거부면 더 좋고. 물론 사르트르처럼 상금은 챙겨둘 일이다. 혹은 상금이 없지만 권위 있는 문학상이 좀 나와주든가, 안 주고 안 받든가. 그것도 아니면 유치원식으로 모든 작가들에게 상을 주든가...). 어쨌든 그런 지조로 인하여 그는 1951년 그의 작품 <시르트의 바닷가>가 공쿠르 상 수상작으로 지명되자, 그라크는 두 차례에 걸쳐 수상을 거부했다 한다.

그런 그에게 바치는 투르니에의 찬사: "그라크는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프랑스 작가다. 그는 50년 전부터 프랑스 문학을 지배하고 있다. 그는 문학 비평을 지금껏 그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경지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그의 역량이 십분 확인되는 것은 소설과 기행 노트에서이다." 그라크의 책들이 더 많이 번역되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초현실주의와 독일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았지만 독특한 창작세계 때문에 분류곤란한 작가로 '분류'되는 그라크는 1910년생이지만 아직 생존작가이다.

 

 

 

 

두께에서 밀리긴 했지만, 그라크와 같은 프랑스 작가 자크 카조트(1719-1792)의 <사랑에 빠진 악마>(열림원, 2006)도 놓치긴 아까운 작품이다. "환상문학의 선구자로 알려진 프랑스 소설가 자크 카조트의 경장편 소설. 연금술에 의해 불려나온 악마가 인간을 유혹하고, 인간의 원칙과 열정이 그 악마와 투쟁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18세기 후반의 프랑스 문학의 경향을 집약하고 있을 뿐 아니라, 환상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탄생을 프랑스 문단에 알린 작품"이라 한다. 그런 문학사적 맥락 외에 관심을 끄는 건 '사랑에 빠진 악마'라는 주인공의 형상이다(한데, 이 악마는 '알바로'라는 귀족청년을 사랑한다. 이 또한 동성애 코드인가?).

이 책을 소개한 지난주 한국일보의 북리뷰에서는 러시아 화가 브루벨(1856-1910)의 <악마>(1890)를 같이 실었는데(이게 삽화로 들어가 있는 건가?), 이 계열의 그림들은 레르몬토프(1814-1841)의 서사시 <악마>에 암시를 받아 그려진 작품이다(카조트의 소설을 레르몬토프가 읽은 적이 있는지 한번 확인해봐야겠다). 국내에선 (절판된) 레르몬토프의 작품집도 브루벨의 화집도 구해볼 수 없으니 유감스럽다. 다들 어디에 빠져 있는 것인지...

 

삽화 얘기가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러시아 작가 고골(1809-1852; 왼쪽 초상화)의 <코>를 다시 쓰고 거기에 (현재는 미국에 살고 있다는) 러시아의 일러스트레이터 겐나디 스피린(1948- ; 오른쪽 사진 )의 그림들을 넣은 그림책 <코>(보림, 2006)도 최근에 나온 책이다. 소장용으로 꽂아둘 만한 책인데, 스피린의 그림은 이미 <야곱과 일곱 명의 도둑>(문학사상사, 2004)에서 소개된바 있다. 그는 (<코>의 삽화는 아니지만) 아래와 같은 식으로 그린다.  

이런 솜씨로 그려낸 <코>의 삽화가 아래와 같은 그림이다. 당당하게 마차에서 내리는 5등관 코를 코 주인인 8등관 코발료프가 놀라서 쳐다보고 있는 모습. 놀랄 만큼 매혹적인 삽화이다.

러시아 책 이야기가 나온 김에 고골의 선배 작가 크릴로프(끄르일로프, 1769-1844)의 <끄르일로프 우화집>(문학과지성사, 2006)도 덧붙이도록 하자. 이전에 '크릴로프 우화'라고 나온 책들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대개가 중역에다가 발췌본이었다. 198편의 우화들을 수록하고 있는 이번 번역서는 "1843년 뻬쩨르부르끄에서 출판된 <9권으로 된 끄르일로프 우화집>을 한 권으로 엮은 1956년 모스끄바 예술문학사 판 <끄르일로프 우화집>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번역하였"고 "작품 해설과 작가 연보, 최초로 작품들이 발표된 지면 및 작품 연보를 수록하고 찾아보기를 함께 실었다." 그러므로 가히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이로써 세계 3대 우화집이라 일컬어지는 이솝 우화집, 라퐁텐 우화집, 크릴로프 우화집 등을 모두 우리말로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우화란 기본적으로 '사회풍자'적 성격을 갖는 것인데, '아동물'로 즐겨 읽히는 것은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 일이다(아이들에게 일찍부터 견인주의적 냉소를 가르치는 것인가, 아니면 '거세된' 우화들을 읽히는 것인가?). 나이든 이들이 미리 좀 읽고서 가려 읽히는 게 합당하겠다.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유기환 교수의 해설서 <조르주 바타이유>(살림, 2006)이다. 이미 <에로스의 눈물>(문학과의식사, 2002)을 번역/소개한 바 있는 저자는 오랜 동안의 독서를 바탕으로 하여 바타이유의 세계에 대한 가이드를 자임하고 나섰는데, 이런 바타이유 소개서는 저역서를 막론하고 국내에선 처음 나오는 것이다(줄리언 페파니스의 <이질성의 철학>(시각과언어, 2000)이 예외라면 예외이지만, 거기서는 바타이유가 보드리야르, 리오타르 등과 함께 다루어지고 있다). 주로 <저주의 몫>과 <에로티즘> 해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모두 번역돼 있는 만큼 수월하게 바타이유의 나라로 떠나볼 수 있겠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프랑스 도르도뉴 현의 몽티냐크 마을에 이는 '라스코 동굴'을 직접 찾아가본 '충격적인' 체험을 소개하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는데(바타이유 또한 라스코의 벽화들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불가능한 체험'은 바타이유의 키워드 중 하나이다), 우리도 비슷한 흉내를 내보기 위해 잠시 구석기 시대를 '체험'해 보도록 하자. 그들은 삶에서 무엇을 믿고 무엇을 열망했을까? '신화'보다도 더 먼 시대에. 아직 '책'도 없던 시대에!..

  

 

06. 02. 18-23.

 

 

 

 

 P.S. 최근에 나온 시집 두 권을 별도로 언급하면서 글을 마치기로 한다. 먼저 황동규(1938- ) 시인의 13번째 시집 <꽃의 고요>(문학과지성사, 2006).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2003)에 이어 3년 만에 나온 시집인데, 그 3년이 시인에게는 "<유마경>을 읽고가 아니라, 읽을 수 있는 마음 상태를 엮은 기간"이었다고. 그 마음이 때로 터지면 이렇게 된다. 

시여 터져라.

생살 계속 돋는 이 삶의 맛을 이제

제대로 담고 가기가 너무 벅차다.

반쯤 따라가다 왜 여기 왔지, 잊어버린

뱃속까지 환하게 꽃핀 쥐똥나무 울타리,

서로 더듬다 한 식경 뒤 따로따로 허공을 더듬는

두 사람의 긴 긴 여름 저녁,

어두운 가을바람 속에 눈물 흔적처럼 오래 지워지지 않는

적막한 새소리,

별 생각 없이 집을 나설 때 기다렸다는 듯 날려와

귀싸대기 때리는 싸락눈을,

시여!

 

반면에 김승강(1959- )의 첫시집 <흑백다방>은 웬만해선 안 터지는 시와 삶의 꼴을 담고 있는 시집이다. 황동규 시인이 '꽃의 고요' 속에서 노래를 듣는 '경지'에 도달해 있다면, 김승강은 능청스레 '꽃필까 두려운' '지경'에 머물러 있다: "제 몸에서 꽃 필까 두려운 목련/ 지난밤 바람이 햝고 간 자리/ 행여 열꽃으로 필까 두려운 목련"의 세계, '흑백다방'이란 제목처럼 촌스럽고 활달한 세계가 시인이 서두에 적은 '하루살이의 일기'이고, 평론가가 해설의 제목으로 적은 '생활의 발견'기이다. 그가 '발견'이라고 적어놓는 시들은 이런 식이다(근래에 보기 드문 능청이되 기본기 있는 능청이다. 김승강은 첫시집을 낸 '신예'이지만, 복학생보다도 나이 더 먹은 대학 새내기를 보는 듯하다).

 

아내는 자꾸

냄새가 좋다.

냄새가 좋다, 했다.

아버지, 논 물꼬를 트자

논물에서 개구리 울기 시작했다.

밤이 깊도록 아무도

개구리 울음소리를

끊어놓지 못했다.


아내는 아쉬운 듯 마지막으로

냄새가 참 좋다고 말한 뒤

잠들었다.


논물에서 개구리 목쉬게 울고

밤꽃 향기 밤새 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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