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서평을 옮겨놓는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신간 <세컨드 핸드 타임>(이야기가있는집, 2016)을 다루었다. 일차마감을 넘겨 겨우겨우 보낸 원고인데, 스마트폰으로 쓴 걸로도 기억에 남을 듯하다(임시저장해가며 메일에다 직접 적는 방식이다). 아마도 두번째이지 싶다.

 

 

경향신문(16. 01. 23)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대중의 힘든 삶은 여전

 

<세컨드 핸드 타임>은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최근작이다. 국내에는 데뷔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1985)와 <체르노빌의 목소리>(1997)가 먼저 번역되었고 2013년에 나온 <세컨드 핸드 타임>은 세 번째로 소개되는 책이다. ‘목소리 소설’로 불리기도 하지만 알렉시예비치의 책들은 소설(픽션)이라기보다는 논픽션으로 분류되어야 한다. 이야기를 지어낸 것이 아니라 그가 인터뷰를 통해 만난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다만 편집한 것이기에 그러하다. 즉 그는 책을 저술한다기보다는 기획하고 인터뷰하고 편집한다. 놀라운 것은 그 결과물이 동시대의 어떤 문학작품도 보여주지 못한 압도적 진실과 감동을 전달해준다는 점이다. ‘문학을 넘어선 문학’이 있다면 바로 그의 목소리 소설들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 책이 전하는 진실과 감동은 무엇인가. 비록 번역본에만 붙어 있는 것이긴 하지만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최후’란 부제에서 어림해볼 수 있다. ‘사회주의적 인간’ ‘소비에트적 인간’을 뜻하는 호모 소비에티쿠스는 1917년 러시아의 사회주의혁명이 만들어낸 ‘새로운 인간’을 뜻한다. 혁명은 경제적 토대와 정치체제를 바꾸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의 본성 자체도 개조되어야 했다. 아담 이래의 ‘오래된 사람’, 곧 낡은 인간을 대체하여 새로운 인간이 새로운 시대, 새로운 역사의 주인으로 등장해야 했다. 혁명은 소비에트 문명과 함께 소비에트적 인간을 낳았고 낳아야 했다.

 

그렇듯 야심찬 기획과 함께 출현했던 소비에트 러시아도 1991년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했다. 우리가 현실사회주의의 몰락 혹은 해체라고 부르는 급변의 결과였다. 70여년의 사회주의 실험을 대체하여 자본주의 러시아가 재탄생했고 이는 권위적 정치체제와 짝을 이뤄 오늘의 러시아를 구성하고 있다. 흔히 포스트소비에트라고 부르는 시대다. 하지만 알렉시예비치는 이 시대를 세컨드 핸드, 곧 중고품 시대라고 부른다. 새로운 시대라기보다는 한번 겪었던 시대의 반복이 될 가능성이 농후해서다. 지난 몇십년간 러시아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들이 벌어진 것인가.          

 

알렉시예비치는 1991년부터 2012년까지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다수의 평범한 러시아인들을 만나서 그들의 과거와 현재의 삶에 대한 증언을 청취했다. 스탈린 시대에서부터 푸틴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무엇을 기억하고 있으며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는가. 작가 자신을 포함해 많은 이들이 전환기였던 1990년대를 행복하게 기억했다. 공산주의 대신에 스스로 새로운 미래를 선택했다고 생각해서다. 그만큼 사회주의에 대한 기억은 어두웠다. 어떤 경우에는 사람들이 강제 수용소보다도 더 견딜 수 없었다.

 

공동주택에서 두 여자가 친하게 지냈는데 한 여자에겐 다섯 살짜리 딸이 있었고 다른 여자는 혼자였다. 어느 날 보안경찰이 찾아와 딸아이가 있는 여자를 체포해갔다. 여자는 딸아이를 고아원에 보내지 말고 데리고 있어달라고 이웃여자에게 부탁했다. 여자는 17년 만에야 돌아왔고 딸을 돌봐준 이웃여자의 손과 발에 키스를 퍼부었다. 고르바초프 시대에 와서 기록보관소가 개방되자 여자는 자신의 사건기록을 열람해 보았다. 그녀를 밀고한 이가 바로 이웃여자였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고는 그 길로 집으로 와 목을 매달았다.

 

분명 소비에트 삶은 인민에게 권력을 돌려주고 새로운 문명을 구축하려는 최초의 시도였지만 결과는 아름답지 않았다. 하지만 사회주의 이후, 자본주의 러시아의 삶은 과연 얼마나 더 나아졌는가. 아이로니컬하게도 러시아의 대중 사이에서 소련에 대한 동경까지 나타나고 있다. 소련 시대의 모든 것이 유행하면서 심지어는 강제수용소 체험이 관광상품으로까지 나왔다. 사회주의 러시아가 마치 ‘오래된 미래’처럼 향수의 대상이 되었다. 바야흐로 세컨드 핸드 시대의 도래다.

 

 

사회주의도 고통스러웠지만 자본주의 러시아도 소수의 신러시아인들을 제외하면 똑같이 힘든 삶을 강요하고 있다. 오히려 더 나빠진 건 지금은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회주의가 와도 민주주의가 와도 우리가 사는 건 똑같아요. 우리에겐 ‘백군’이나 ‘적군’이나 그 나물에 그 밥이에요”라고 말하는 목소리다. 알렉시예비치는 그런 목소리들을 모아 ‘세컨드 핸드 시대의 백과사전’을 만들었다. 솔제니친이 ‘수용소의 백과사전’으로 <수용소 군도>를 집필한 것처럼. 문학이 언제 위대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감동적인 사례다.

 

16. 01. 22. 

 

P.S. 방대한 분량의 책을 단기간에 번역해낸 역자의 노고에는 의당 감사해야 하지만,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일례로 러시아어 '나로드'를 '인민''민중''민족' 등 여러 가지로 옮겼는데, 한 단락에서도 번역어를 고정시켜주지 않아서 혼선이 빚어지기도 한다. 80쪽의 '촌사람'은 '농촌문학 작가'의 오역이고, 88쪽의 '제3국'은 '제3세계'로 옮겨져야 한다. 그리고 89쪽의 '시멘스 텔레비전'은 '지멘스 텔레비전'으로 옮겨야 할 듯싶다. 독일의 가전회사 지멘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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