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미덕이 다른 친구를 소개해주는 데 있다면, 마찬가지로 좋은 책의 요건 가운데 하나도 다른 책과 연결시켜주는 데 있다. 어제 배송받은 책의 하나는 올란도 패터슨의 <노예제와 사회적 죽음: 비교연구>(하버드대출판부, 1982)인데,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문학과지성사, 2015)에서 처음 보고 구입한 책이다. 1장 '사람의 개념'의 '노예' 절에서 주로 저자가 참고하고 있는 책.

 

 

김현경 박사는 인류학 전공자로, 그리고 내게는 부르디의의 <언어와 상징권력>(나남, 2014)로 알려졌는데, 첫 책 <사람, 장소, 환대>를 통해 상당한 필력을 보여주면서 "학술 논문에도 대중적인 에세이에도 속하지 않는 새로운 글쓰기 형식"에 대한 실험이 어떤 성과를 거둘 수 있는지 실증했다. 다음 책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는 '올해의 발견' 가운데 하나. 노예제는 원래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여서 관련서를 조금씩 모으고 있던 터라 패턴슨의 책 추천은 아주 요긴했다.   

 

 

그리고 마침 이번주에는 이 분야의 책이 한권 추가되었다. 차전환 교수의 <고대 노예제 사회>(한울, 2015). '로마 사회경제사'가 부제인 걸로 보아 주로 로마시대의 노예제를 다룬 책이다. 어떤 내용인가.

고대 노예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보통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2세기까지의 이탈리아와 시칠리아를 노예제사회로 규정한다. 기원전 2세기는 제2차 포에니전쟁(한니발 전쟁)에서 승리한 직후에 시작되었고, 기원후 2세기는 오현제 시대와 함께 막을 내렸다. 즉, 이탈리아와 시칠리아가 노예제사회였던 시기는 고대 로마의 전성기와 거의 일치한다. 지중해 세계를 정복한 것이 로마 군단과 장군들이라면, 하드리아누스 방벽에서 유프라테스 강에 이르는 광활한 제국을 통치할 수 있도록 로마 세계의 중심인 이탈리아와 곡창인 시칠리아를 떠받친 것은 노예들이었다. 기독교의 확산은 노예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로마인들이 노예를 해방한 이유는 무엇인가? 왜 노예제사회가 쇠퇴하고 농노가 등장했는가? 저자는 사회경제사라는 틀을 통해 고대 로마를 중심으로 하는 고대 노예제사회의 실상과 한계를 되짚어봄으로써 당시 세계에서 가장 진보한 문명이 어떻게 융성하고 어떻게 몰락해갔는지를 새롭게 보여준다.    

그런 질문들에 관심이 있다면 일독해봄직하다.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고대 노예제 연구의 권위자는 모시스(모제스) 핀리다. 몇 권의 책이 번역됐는데, 아쉽게도 <고대 노예제도와 모던 이데올로기>(민음사, 1998) 같은 책이 절판된 지 오래다. 더 나은 책이 나온 게 아니라면 다시금 나오면 좋겠다...

 

15.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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