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회 한국출판문화상 수상작이 발표되었다(http://www.hankookilbo.com/v/71a8d1c527f34b05b67ab79440d8f986). 공동수상작이 있어서 5개 분야의 7종이다. 올해는 예심과 본심에 참여해 의견을 보탰기에 나로서도 의미가 깊다. 수상작 도서 목록과 함께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의 총평과 내가 맡아서 쓴 번역 부문 심사평을 옮겨놓는다.
-저술-학술: 정병준,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돌베개, 2015)
-저술-교양: 박점규, <노동여지도>(알마, 2015), 김범준, <세상물정의 물리학>(동아시아, 2015)
-번역: 수징난 지음, 김태완 옮김, <주자평전>(역사비평사, 2015)
-편집: <자기록: 여자, 글로 말하다>(나의시간, 2014), <금요일엔 돌아오렴>(창비, 2015)
-어린이청소년: 장석주 시, 유리 그림, <대추 한 알>(이야기꽃, 2015)
-심사 총평
올해 국내 출판시장의 최대 화두는 ‘책의 발견과 연결성’이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책의 전체 발행종수는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독자는 꼭 필요한 책을 찾기가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문의 책 소개 지면이 크게 줄어들었고, 독자가 실물 책을 확인할 수 있는 오프라인 서점도 많이 사라졌다. 그런 면에서 좋은 책을 골라 제대로 소개하는 일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올해 56회째를 맞이하는 국내 최고의 연륜과 권위를 자랑하는 한국출판문화상이 어떤 책을 선정하는가는 지적 생태계의 흐름을 긍정적으로 바꾸는데 크게 기여해왔다. 그래서인지 올해에도 분야별 수상작을 선정하는데 많은 애로가 있었다. 거의 전 분야에서 마지막 최종 후보 두세 권을 놓고 장시간 토론해야 할 정도로 수상작 선정이 어려웠다. 결국 세 분야에서 공동 수상을 검토했지만, 번역 부문에서는 단골 후보인 노승영씨가 단지 젊고 유망한 사람이기에 곧 다른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이유로 탈락시켜야만 했다.
전반적인 교양서의 약진 속에 특히 수준 높은 과학서가 많았다는 것이 기뻤다. 과학서의 약진은 과학기술 혁명 시대에 과학이야말로 인문학이라는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한 결과일 터이다. 다만 특수한 분야로 집중된다는 한계는 여전했다. 수준 높은 해외서를 수준 높게 빨리 번역해내는 능력이 해마다 높아지고 있음은 확인되었지만 국내 학문 수준을 가늠하는 학술서의 부진은 여전히 숙제로 남았다. 그림책이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것과 논픽션 청소년 도서의 약진을 확인할 수 있어 놀라웠지만 상상력을 자극하는 청소년 도서가 많지 않은 것은 아쉬웠다.
정보의 생산과 소비는 점차 모바일로 집중되고 있다. 이제 스마트기기는 도서관과 시장과 사교클럽의 역할을 동시에 한다. 스마트기기는 인간이 일과 놀이를 함께 즐기는 결정적인 매체이다. 그들은 스마트기기를 이용한 검색으로 인류가 생산한 모든 지식에 접근하고, 언제 어디서나 엄지손가락으로 글을 써서 모든 사람과 소통하며,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기기도 한다.
이런 세상에서 책은 변해야 한다. 머리(이성)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감성)까지 동원해 즉각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을 유혹하려면 하나의 키워드에 합당한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힘 있게 밀고나가는 흡인력이 있는 책이어야 한다.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며 확실한 결론을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 작년에 이어 이런 책들이 수상작이 되고 있다. 벌써 내년이 기대된다.(한기호)
-번역 심사평
심사에서 원저의 가치와 번역의 완성도, 번역출판문화에서 갖는 의의 등을 고려했다.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인 책은 김태완이 옮긴 수징난의 ‘주자 평전’과 노승영이 옮긴 대니얼 데닛의 ‘직관 펌프, 생각을 열다’이다. 두 권 모두 ‘올해의 번역서’로 꼽을 만했다.
무려 2,000쪽이 넘는 ‘주자 평전’은 주자의 생애와 사상을 문화심리학적으로 생생하게 조명한 걸출한 저작이다. 중국에서도 이만한 저작이 드물다는 원저를 역자는 약 5년의 기간 동안 공을 들여 원저의 무게감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번역과정이 얼마나 지난했을지 충분히 짐작되는데 수월하게 읽힌다는 점도 미덕이다. 더불어 편집자와의 협업을 통해 이루어낸 책의 만듦새와 완성도는 번역서의 모범이 될 만하다.
‘직관 펌프, 생각을 열다’는 대표적 인지과학자의 수준 높은 저작을 능숙하게 소화하여 우리말로 옮긴 역자의 노고가 높은 평가를 끌어냈다. 난해하기로 이름난 저자의 책을 역자는 일반 독자가 능히 ‘읽을 수 있는’ 책으로 탈바꿈해놓았다. 원저작에 대한 이해 못지않게 한국어에 대한 많은 궁리와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번역이다. 토론 끝에 ‘주자 평전’이 역자에게는 일생일대의 작업이리라는 판단에서 올해의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후보에 오른 모든 역자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이현우)
15. 1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