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문학평론가와 사회학자, 그리고 물리학자, 3인이다. 먼저 작고한 1990년에 세상을 떠난 문학평론가 김현의 유작 <행복한 책읽기>(문학과지성사, 1992)의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올해가 문학과지성사 창사 40주년이어서 이를 기념하는 책이 몇 권 나왔는데, 이 개정판 역시 그런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행복한 책읽기>는 전집판까지 포함하여 세 가지 판본을 갖게 되었는데, 1986-1989년 사이에 쓰인 저자의 일기를 묶은 것이다. 당대의 평론가에게 일기란 곧 읽기의 기록이었다. 감회를 얹자면, <행복한 책읽기>는 초판을 읽었을 때 나는 아직 20대였다. 이제 23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 그 개정판을 읽는다. 어느덧 저자만큼의 나이가 되어. 89년에 강의실에서 저자의 육성을 들은 것이 마지막 기억인데, 그로부터는 26년의 시간이 흘렀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일도 아니란 걸 다시금 알겠다.

 

 

창사 40주년과 관련해서는 '문지의 논리 1970-2015'라는 부제의 평론선 <한국문학의 가능성>(문학과지성사, 2015)이 출간되었는데, 표제가 된 글이 바로 김현이 1970년에 발표한 평론이다. 그리고 1980년 가을호였던 창간 10주년 기념호의 복각본도 이번에 나왔다. 옛 표지와 활자를 대하니 마치 시간여행이라도 하는 기분이다. 계간 <문학과사회>는 이번 겨울호가 112호인데, 편집진의 세대 교체가 이루어져(엊저녁 2015년 문학동네 시상식 겸 송년회를 가졌던 <문학동네>도 마찬가지다) 내년 봄호부터는 다른 색깔의 잡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새월은 이 모든 것을 강제한다.

 

 

아나키즘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진행해온 사회학자 김성국 교수가 묵직한 분량의 '아나키스트 자유주의 문명전환론'을 펴냈다. <잡종사회와 그 친구들>(이학사, 2015). 저자는 이미 <한국의 아나키스트, 자유와 해방의 전사>(이학사, 2007)과 공저 <지금, 여기의 아나키스트>(이학사, 2012)를 출간했고, 내년에는 아나키스트 3부작을 완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무엇을 주장하고자 하는가.

한국의 대표적인 아나키스트 사회학자인 김성국이 필생의 학문적 열정을 쏟아부은 역작이자, 그의 새로운 이념적 출발을 알리는 책이다. 저자는 '잡종'이라는 핵심 키워드를 바탕으로 아나키스트 자유주의, 잡종사회와 탈근대 문명전환 그리고 개인의 사회학을 논의한다. 구체적으로 고유한 특성을 지닌 유일무이의 존재인 개인에 주목하는 독특한 잡종사회론과 문명전환론을 구상하며, 아나키즘의 실용화와 자유주의의 급진화라는 양 날개를 추구하는 아나키스트 자유주의를 주창하고 있다.

연말이라 두툼한 문제작의 출간은 해를 넘기는 경우가 많은데, <잡종사회와 그 친구들>은 똑같이 이번주에 나온 찰스 테일러의 <자아의 원천들>(새물결, 2015)과 함께 '가는 해'의 자존심을 끝까지 지켜주는 책으로 도드라진다. 

 

 

하버드 대학교의 물리학 교수로 <숨겨진 우주>(사이언스북스, 2008)의 저자 리사 랜들의 최신작이 번역돼 나왔다.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사이언스북스, 2015). 중간에 나온 <이것이 힉스다>(사이언스북스, 2013)까지 포함하면 세번째 책이다. 교양과학서 독자들에게는 올해의 크리스마스 선물감이다. 책의 내용을 어디까지 따라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로서도 반갑다.

저자는 전작 <숨겨진 우주>에서 비틀린 시공간 기하를 이용해 숨겨져 있는 차원과 우리 우주의 3차원 세계를 연결했듯이, 이번에는 입자 물리학과 우주론을 연결 짓는다. 저자는 이번 책을 <숨겨진 우주>의 후속작이지만 동시에 프리퀄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만나는 물체들을 이루고 있는 원자나 쿼크 같은 가장 근본적인 구성 요소들이 우리가 직관적으로 알고 있는 일상적인 물리 법칙과는 완전히 다른 법칙의 지배를 받고 있음을 강조한다. 입자 물리학에서 우주론까지의 현란한 도약과 융합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물음에 답하면서 저자는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종교와 갈등을 빚어 가면서까지 연구를 계속했던 갈릴레오를 불러 내며 물리학과 과학의 가치, 역사, 기초를 탐구하고 있다.

 

리사 랜들의 최신작이라고 했지만,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는 2011년작이고, 그보다 나중에 나온 책으로는 <암흑물질과 공룡>(2015)이 있다. 짐작에는 이 또한 번역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저자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번역돼 나온다면 리사 랜들 3부작으로 부름직하다...

 

15.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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