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소설가로 돌아온 번역가 김석희,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장정에 나선 역사학자 주명철, 그리고 미국의 인문학자 마사 누스바움, 3인이다.

 

 

먼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쥘 베른 걸작선'(전20권)의 번역자 김석희 선생. 하지만 출발은 소설가였다. 지금은 흔적도 남아 있지 않지만 소설집 <이상의 날개>와 장편소설 <섬에는 옹달샘> 등을 발표한 바 있다(나는 이 책들을 서점에서 만져본 기억만 갖고 있다). 이후에 역자 후기 모음집만을 따로 묶어서 책을 낼 정도로 창작 대신 번역에만 몰두했던 저자가 제주 귀향과 함께 다시 창작으로 돌아온 것.

1988년 '이상의 날개'를 발표하며 등단한 이후 절필 이전까지 10년간 한 권의 장편소설과 한 권의 소설집을 내놓으며 번역가로서의 눈부신 활약과 더불어 꾸준히 창작활동을 해왔던 소설가 김석희가 오랜 침묵을 깨고 그간의 미출간된 아홉 편의 중단편소설과 등단작까지 포함하여 두 번째 소설집을 우리 앞에 선보인다. 다시 소설가로 돌아가겠다는 선언도 함께다.  

현재는 장편소설을 집필중이라는데, 아무래도 번역가로서의 오랜 경험도 소설에 녹아들지 않을까 싶다. 이번 소설집에 붙인 작가의 말에 이렇게 적었다.

“1998년 가을에 중편소설 발표한 것을 끝으로 창작을 접은 뒤 처음 10년은 내 이름 뒤에 (소설가.번역가)라고, 그 후 10년은 미련 때문에 (번역가.소설가)라고 덧붙이다가, 그 뒤로는 ‘소설가’를 아예 빼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한때나마 도타웠던 애인에 대한 그리움이 왜 없었겠습니까.(...) 다시 시작하면서 나는 무척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다시 소설가로 돌아왔다면 번역가 김석희와는 작별인가 싶어 아쉬운 마음도 없지 않다. 대표 번역작으로 어떤 책을 꼽을지 모르겠지만, 첫 번역작인 존 파울즈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와 비로소 읽을 수 있도록 해준 멜빌의 <모비딕>은 반드시 포함될 듯싶다. 작가로서도 그에 못지 않은 활약을 기대해봐야겠다.

 

 

 

프랑스사, 특히 혁명사가 전공인 주명철 교수가 '프랑스 혁명사 10부작'의 첫 두 권으로 <대서사의 서막>과 <1789>(여문책, 2015)를 펴냈다. 그러 고면 재작년에 나온 <오늘 만나는 프랑스 혁명>(소나무, 2013)은 맛보기에 불과했나 보다. 대장정인 만큼 출사표가 없을 리 없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무엇인가.

한국서양사학회 회장을 지낸 주명철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명예교수의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226년 전인 1789년 7월 14일, 무장한 민중이 바스티유 감옥을 '정복'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프랑스 혁명은 그동안 프랑스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논문과 관련서가 나와 있는 역사적 대사건이었다.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저서와 번역서가 나와 있는 편이긴 하지만 이번처럼 혁명이 시작된 1789년부터 테르미도르 반동이 일어난 1794년까지를 무려 10권에 세밀히 다루려는 저작은 아직까지 출판된 적이 없다. 남의 나라에서 오래전에 일어난 혁명을 이렇게까지 자세히 알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프랑스 혁명의 교훈은 언제라도 우리에게 유용할뿐더러 그간 우리는 프랑스 혁명에 대해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해왔다는 것을 자각하고 우리 목소리로 또 우리 시각으로 프랑스 혁명을 총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학자들의 혁명사가 몇 권 소개된 적이 있지만 대부분 절판된 상태다. 안 그대로 내년에 19세기 프랑스 소설들을 강의에서 다룰 계획이어서 겨울에는 프랑스 혁명사에 빠져볼 참이었는데, 말 그대로 '제때' 책이 나와주었다. 무탈하게 10부작이 완결되기를 기대한다.

 

 

<역량의 창조>(돌베개, 2015)는 올 들어 <혐오와 수치심>(민음사, 2015), <감정의 격동>(새물결, 2015) 등이 연이어 소개된 누스바움의 신작이다(또 다른 신작으로 <정치적 감정> 같은 책도 소개됨직하다). 2013년에 나온 책으로 '인간다운 삶에는 무엇이 필요한가?'가 부제. 소개에도 나오지만 누스바움의 역량론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티아 센과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작업의 성과다. 그 핵심 아이디어가 무엇인지 접해볼 수 있겠다.

마사 누스바움이 제안하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척도, 역량 접근법. 저자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티와 센과 함께 20년 넘게 개진해온 역량 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며 자신의 사상적 정수를 과감 없이 펼친다. 역량 접근법은 경제성장이 아닌 개개인의 행복에 초점을 맞춰 삶의 질을 비교 평가하며 사회정의를 실현하려는 이론이다. 단순히 이론에 머물지 않고 당면한 현실 과제를 해결하려는 정책에 개입했으며, 그것이 일정 부분 인정받아 현재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자유라면 '선택의 자유'를 떠올리지만 누스바움과 센의 제안은 '역량으로서의 자유'다. '하고 싶다'로서의 자유를 넘어서 '할 수 있다'의 자유로 이행해가기. 바로 그 역량이 행복의 밑바탕 아닌가. 내 어림으로는 가난한 사람들을 단순히 구호하는 게 아니라 열정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 복지에 대한 역량론적 접근이다. 더 자세한 이해는 <역량의 창조>를 참고해야겠다...

 

15.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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