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강의할 책을 먼저 손에 들다 보니 읽어야 할 책들을 제때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런 책들 가운데 두 권을 같이 묶는다. 필립 길버트 해머튼의 <지적 생활의 즐거움>(리수, 2015)과 파리드 자카리아의 <하버드 학생들은 더이상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는다>(사회평론, 2015)이다.

 

 

해머튼의 책은 몇 차레 번역본이 나왔고, 나도 <지적 즐거움>(베이직북스, 2008)을 갖고 있다(당장 눈에 보이지 않을 따름이다). 한데, 핵심은 '즐거움'이 아니라 '지적 생활'에 있다. 지적 생활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이가 1873년에 <지적 생활>이란 책을 펴낸 해머튼이기 때문이다. 검색되는 원저의 분량은 500쪽이 넘는 걸 고려하면 완역본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번에 나온 <지적 생활의 즐거움>만 하더라도 <지적 생활>과 저자의 기타 명문들을 한데 추려모은 것이라는 설명이다. 원저도 그런 방식으로 편집된 책인지. 여하튼 '지적 생활'의 원조라 할 책이니 만큼 '지적 생활'이란 말의 용례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일독해봄직하다.

해머튼은 지적 생활이란 무엇인가를 이룩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순수하게 삶의 진리를 찾아나서는 아름다운 여정이라고 표현했다. 그것은 가장 위대한 진리와 작은 진리 사이에서, 또 반드시 따라야 하는 정의와 개인의 생활 사이에서 늘 꿋꿋하고 당당하게 고귀한 쪽을 선택해나가는 것이라고 한다. 흔히 지식의 축적이나 성공의 도구, 학문적 성과 이상의 명예와 부를 기대하는 방법으로 지적 생활을 추구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한다. 지적 생활에 관한 모든 영역을 통틀어 들여다봄으로써 본래의 의미와 본질을 탐색하고 있다.

 

반면에 인도 출신 미국 저널리스트 파리드 자카리아의 <하버드 학생들은 더이상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는다>는 올해 나온 최신간이다(자카리아의 책은 <흔둘리는 세게의 축>과 <자유의 미래>가 번역돼 있다). <지적 생활의 즐거움>과 같이 묶은 것은 비슷한 시기에 나왔다는 것 말고는 달리는 이유를 대기 어렵다. 원제는 <교양교육의 옹호>. 이게 어떻게 <하버드 학생들은...>이란 제목을 달 수 있는지는 아직 확인해보지 못했다. 교양교육의 내용과 체제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일까. 아무려나 그걸 확인해보는 게 독서의 일차적인 의의가 되겠다.  

21세기의 가장 주목받는 외교정책 자문가이자 언론인인 저자 파리드 자카리아는 현 시기를 세계화의 가속화, 자본주의의 극단화,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정의한다. 저자는 기능 위주의 인도 교육 시스템과 교양 학문을 엄격하게 가르쳤던 미국의 대학 커리큘럼을 모두 거쳤던 자신의 학문적 경험을 바탕으로, 모든 것이 유동적이고 불확실한 시대에 우리를 지켜줄 지식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현재 아시아와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식과 산업계의 변화 속에서 교양 교육과 인문학의 목적과 내용을 구체적인 현실과 접목하여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시대 지식의 현실과 지향점에 대한 가장 충실한 보고서라 할 수 있다. 

아마도 저자는 전통적인 교양교육과는 다른 내용과 방식의 교양교육을 옹호하고자 하는 듯한데, 역시나 확실한 것은 읽어봐야 알겠다. 분량은 만만한 편이나 좀처럼 읽을 짬을 내지 못하는 게 요즘 실정이다 보니 왠지 '지적 생활의 즐거움'에서 한 발짝 동떨어진 느낌이다. 조만간 그 근처로 다시 가봐야겠다...

 

15. 12.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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