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배송받은 책의 하나는 올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의 <위대한 탈출>(한국경제신문, 2015)이다. 그리고 어제 알라딘으로부터 받은 문자는 바로 이 책과 관련한 것이었다. "구판 구매자 중 새 번역본으로 교환을 원하는 분들께서는 2015년 12월 31일까지 고객센터 또는 1:1문의를 통해 연락 주시면 무료로 교환해 드립니다." 오역과 악의적인 서문의 해제 때문에 항의를 받고 다시 나온 개정판을 구입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이 '교환'과 관계가 없다, 가 아니라 관계가 있다. 작년 9월에 나온 초판도 이미 구입한 독자이기 때문이다. 물론 노벨상 발표 이후에 궁금해서 구입한 터였다.
무엇이 달라진 것인가는 번역본의 부제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수상 이후에는 똑같이 '201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 사실을 띠지로 둘렀지만, 초판의 부제는 '불평등은 어떻게 성장을 촉발시키나'였고, 개정판의 부제는 '건강, 부 그리고 불평등의 기원'이다. 달라도 많이 다르다. 그건 초판본이 저자의 원의를 악의적으로 왜곡해서 빚어진 일이다.
소득 불평등 문제를 제기한 토마 피케티 교수의 <21세기 자본>이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우리가 현재 목격하고 또 경험하고 있는 이 불평등이 인류 역사 300년 동안 처음 경험하는 수준이라 한다. 하지만 프린스턴대 경제학자 앵거스 디턴의 책 <위대한 탈출>을 보고 나면 세계가 그 어느 때보다 평등해졌다고 결론지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견해가 맞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각 국가를 하나씩 살펴보느냐, 아니면 세계 전체를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국가 내의 불평등, 특히 부유한 국가들 내에서의 불평등은 지난 몇 십년간 개발도상국에 있는 수십억 명의 극심한 수준의 빈곤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빈곤으로부터 탈출하게 만들었다. 미국 혹은 부유국에서의 불평등을 증가시킨 요인이 다른 국가에서는 수십억 명에게 더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게 되었단 뜻이다.
디턴의 이 책을 이런 식으로 이해한 장본인은 서문을 실은 현진권 자유경제원장이고, 이에 따라 책의 내용을 편의적으로 생략하거나 뜯어고쳤다. 이에 대해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이 블로그를 통해 비판하고(http://socialandmaterial.net/?p=33921) 이것이 기사회되었다(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713967.html). 급기야는 원저를 펴낸 프린스턴대학 출판부에까지 이 사실이 전달되고 프린스턴대 측은 이에 대한 시정을 요구했다(한 언론은 이를 '글로벌 망신살'이라고 표현했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의 <위대한 탈출>(한경BP) 한국어 번역본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위대한 탈출> 번역본이 원서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고(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출판사는 일부 축약·생략은 있었지만 의도적 왜곡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고맙게도 원서를 출판한 프린스턴대 출판부가 논란에 쐐기를 박았다. 프린스턴대 출판부는 “한국어판은 원문을 정확히 반영하지 않는다”며 기존 번역본의 판매 중단을 요구했다. 특히 디턴을 <21세기 자본>의 토마 피케티와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묘사한 현진권 자유경제원장의 한국어판 서문의 삭제를 콕 집어 요구했다. 해외 출판사가 국내 번역서의 오류를 직접 지적하며 판매 중단을 요구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디턴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을 때부터 일부 언론은 “불평등은 되레 긍정적 경제성장에 도움”(매일경제), “‘위대한 탈출’은 피케티의 허구 드러낸 역작”(한국경제)식으로 보도했다. 디턴이 불평등이 경제 성장을 자극한다고 주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소득 불평등이 정치적 불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 역시 깊이 우려했다. 해외 학계에서는 디턴과 피케티가 대립한다기보다는 상호 보완적이라고 보고 있다.(경향신문)
이것이 부랴부랴 개정판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그리고 내가 원서와 함께 두 가지 판본의 <위대한 탈출>을 갖게 된 이유다. 그렇지만, 먼저 구입한 초판을 개정판과 교환하고 싶지는 않다. 이미 개정판을 구입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초판은 악의적이고도 졸렬한 왜곡 번역본으로서 '기념비적' 의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올해의 오역서'를 꼽자면 따 놓은 당상이다(무려 노벨경제학상의 후광을 거느린 오역서다). 그러니 어찌 쉽사리 교환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초판은 액면가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는, 개정판보다도 훨씬 '가치 있는' 책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자료적 가치, 먼훗날 사료적 가치까지 가질 터이니 말이다.
거기에 덧붙이자면, 이것이 출판계만의 스캔들은 아니라는 점. 국정교과서 논란을 비롯해서 요 몇년 간 한국사회에서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수작의 한 징후일 뿐이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 국정원을 필두로 하여 왜곡과 조작이 이 정부의 주특기가 되었다는 건 상식 있는 국민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다. 바야흐로 이 거대한 조작과 졸렬한 왜곡의 구렁텅이에서 '위대한 탈출'이 필요한 시기다...
15. 11.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