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비가 내린 고즈넉한 주말이면서 파리 테러 소식으로 뒤숭숭한 주말이다. 오전에 한 여고에 강의를 다녀와서 낮잠으로 피로를 씻고 저녁 나절이 되어 정신을 차린다. 먼저 '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국내외 작가 3인이다.
우선 이승우 작가의 책 두 권이 같이 나왔다. 두 권 모두 재간본이다. 예담출판사에서는 '이승우 컬렉션'의 첫 권으로 데뷔작 <에리직톤의 초상>(예담, 2015)을 다시 펴냈고, <내 안에 또 누가 있다>(고려원, 1995)도 <독>(예담, 2015)으로 제목을 바꾸어 개정판을 냈다. 원래 잡지 연재시 재목이 '독'이었다고. '이승우 컬렉션'은 작가에 대한 새로운 독서와 재평가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겠다.
지성의 언어로 한국 소설의 토대를 넓힌 이승우의 <에리직톤의 초상>이 '이승우 컬렉션'의 첫 번째 작품으로 출간됐다. 작가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이 소설은 우리나라 관념 소설, 형이상학 소설, 종교 소설의 새 지평을 마련하여 작가와 평론가 모두에게 격찬받은 작품이다. 1981년 발표한 중편 '에리직톤의 초상'에 1990년 2부를 추가해 완성한 장편소설 <에리직톤의 초상>은 1981년 교황 저격 사건과 에리직톤 신화를 모티프로 하여 기독교적 신념을 둘러싸고 각자 다른 거리에서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네 인물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신과 인간, 그리고 사회의 관계를 밀도 높게 탐구하면서 인간의 의미를 치열하게 성찰하고 삶의 구원에 관한 문제로 나아간다.
프랑스와 일본 등 국외에서 오히려 더 주목받는 이승우 문학의 시원인 셈. 작가의 이십대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승우 컬렉션'이 어떤 목록으로 더 채워질지 모르겠지만, 그의 대표작은 <식물들의 사생활>(문학동네), <생의 이면>(문이당), <지상의 노래>(민음사) 등이다.
작가 김영하의 산문 3부작이 완결되었다. <읽다>(문학동네, 2015)가 마지막 권으로 출간됐기 때문이다. 부제는 '김영하와 함께하는 여섯 날의 문학 탐사'. "김영하 산문 삼부작의 완결편 <읽다>는 그가 오랫동안 읽어온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문학이라는 '제2의 자연'을 맹렬히 탐험해온 작가 김영하의 독서 경험을 담은 책이다. <읽다>는 우리는 왜 책을 읽는가, 문학작품을 읽을 때 우리에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위대한 작품들을 위대하게 만드는 특질은 무엇인가 등을 주제로 6회에 걸쳐 열린 문학 강연을 토대로 쓰였다." <읽다>라고 하니까 <보다>와 <말하다>보다 왠지 더 친근하게 여겨지는군...
영국령 트리니나드 토바고 출신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V.S. 나이폴의 책이 한 권 더 출간되었다. <도착의 수수께끼>(문학과지성사, 2015). 지난해 말에 <비와스 씨를 위한 집>(문학과지성사, 2014)이 번역된 바 있어서 '거푸' 출간된다는 느낌이다. 그 이전에 나온 책이 <미겔 스트리트>(민음사, 2003)인 걸 고려하면 그렇다. 나이폴은 1990년대 말에 노벨문학상 후보로 유력하게 거명되다가 2001년에 수상했다. 국내에서도 그맘때 많이 소개된 작가.
문학세계사에서 나왔던 <자유국가에서>, <세계 속의 길> 등이 노벨문학상의 후광에도 불구하고 별로 읽히지 않은 탓인지 절판된 지 오래다. 그럼에도 인도 출신의 살만 루슈디와 함께 가장 대표적인 '식민지 출신 작가'로서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도착의 수수께끼>에 대한 루슈디의 평은 이렇다. "이 책은 내가 근래 읽은 책 중 가장 슬픈 '전원시'다." 1987년작.
15. 1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