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달 다솜이친구(179호)에 실린 '감각의 도서관' 꼭지를 옮겨놓는다. 고독을 주제로 한 책 두 권에 대한 소개를 적었다. 사이토 다카시의 <혼자 있는 시간의 힘>(위즈덤하우스, 2015)과 고전적인 저작으로 꼽히는 앤서니 스토의 <고독의 위로>(책읽는수요일, 2011)다.

 

 

다솜이친구(15년 11월호) 고독의 미덕과 힘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라고 김현승 시인은 노래했다. 그 고독의 계절,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늦가을의 고독한 시간을 채워줄 만한 일로 고독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책들을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혼자 있는 시간의 의의와 힘을 안다면 좀더 충실하게 고독을 즐길 수 있을지 모른다. 

 
가장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사이토 다카시의 <혼자 있는 시간의 힘>(위즈덤하우스)이다. 저자의 체험에 바탕하고 있는 책인데,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펴낸 인기 저자이지만 사이토 다카시는 오늘의 자신을 만든 것이 10년의 혼자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대입에 실패한 열여덟 살의 재수생 시절부터 메이지대학의 교수가 된 서른두 살까지 10여 년간의 시간이 그에게는 ‘암흑의 10년’이었다. 지독히도 고독했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의 고독감이 엄청난 에너지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시간이기도 하다.


반드시 누군가와 함께 해야 하는 일들이 있는 반면에 고독 속에서 혼자 해야만 하는 일도 있다. 공부와 독서가 거기에 해당한다. 곧 ‘지적인 생활’이야말로 ‘혼자 있는 시간’의 본질이다. 혼자 있다는 것은 물론 외로움을 동반하지만 지적 성장과 내면의 성숙을 위해서는 그것을 버텨낼 수 있는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실제적인 체험담을 소개하고 있는 만큼 사이토 다카시는 자신이 외로움을 극복했던 방법도 일러주는데, 그것은 세 가지다. 눈앞의 일에 집중한다, 원서를 읽거나 번역을 해본다, 독서에 몰입한다. 저자는 괴테 전집을 읽으며 느낀 기쁨을 고백하는데, 위대한 작가나 사상가를 정신적 멘토로 삼아서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 바로 독서다. 그렇게 독서는 고독의 질을 높여주는 가장 손쉬운 일이면서 가장 중요한 행위다. 그렇다면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이란 달리 독서의 힘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어른의 독서는 인간의 근본적인 고독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레슨”이라는 게 저자의 메시지다. 


독서의 힘에 대한 사이토 다카시의 견해에 공감한다면 고독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저작으로 시선을 돌려보아도 좋겠다. 앤서니 스토의 <고독의 위로>(책읽는수요일)이 고전급에 해당하는 책이다. 고독에 관한 저자의 생각은 그가 인용하고 있는 에드워드 기번의 말에 집약돼 있다. “대화는 서로를 이해하게 하지만, 천재를 만드는 것은 고독이다. 온전한 작품은 한 사람의 예술가가 혼자 하는 작업으로 탄생한다.”

 


첫사랑에 실패하고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지만 기번은 아주 행복하고 편안한 삶을 누렸고 <로마제국 쇠망사>라는 대작을 남겼다. 모두가 기번의 사례를 따를 필요는 없지만 그의 삶과 대비해볼 때 우리는 인간관계에 너무 큰 의미를 두고 있다고 스토는 지적한다. 인간관계에 따라 우리의 행복이 좌우된다고 보는 것이 통념이고 보면 반박하기 어려운 지적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자면 우리는 인간관계뿐 아니라 인간관계 이외의 것에도 끌리며, 저자가 보기에 그것이 우리의 인간조건이다.


가령 생존과 번식이라는 생물학적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여느 동물과 달리 인간은 번식기간을 지나서도 여전히 지속되는 삶을 상당 기간 살아간다. 인간관계 이외의 것에도 흥미와 관심을 갖게 되는 조건이다. 그리고 수많은 창조 활동이야말로 대부분 인간관계 없이 혼자 있을 때 이루어진다. 따라서 공정하게 말하자면, 인간은 다른 이들과 가까이 지내고 싶다는 충동과 함께 독자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충동, 이 두 가지를 모두 갖고 있다. 즉 인간은 고독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듯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독을 필요로 하며 고독을 추구한다. 특히 창조적인 작업에 관심을 둘 경우에 고독은 필수적이다. 새로운 발견이나 통찰은 주로 혼자 있는 순간에 얻어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면을 간과하는 정신분석학의 여러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혼자 있을 때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과소평가한다고 보아서다. 친밀한 애착관계는 삶이 전개되는 한 축일 뿐 결코 유일한 중심축은 아니다.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또 다른 축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고독이다.

 

15. 11.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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