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루스의 작가로(작품은 러시아어로 쓴다) 올해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올해의 수상자는 내일 발표된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또 다른 '목소리 소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문학동네, 2015)가 출간됐다.

 

 

전작 <체르노빌의 목소리>(새잎, 2011)에 이어서 국내에는 두번째로 소개되는 책인데, 원작은 그보다 먼저 나왔다. 노벨문학상 후보라지만 전통적인 의미의 문학작품은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주로 제2차 세계대전, 소련-아프간 전쟁, 소련 붕괴, 체르노빌 사고 등 극적인 사건을 겪은 목격자들과의 인터뷰를 기술해온 게 알렉시예비치의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의 책들은 22개 언어로 번역되고, 수십 편의 연극과 다큐멘터리의 대본으로도 사용되었다 한다. 문학이란 무엇인가란 질문도 겸하여 던지는 작가라고 할까.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도 마찬가지다. 말 그대로 참전 여성들의 목소리를 모은 책이다(그래서 '목소리 소설'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백만 명이 넘는 여성이 전쟁에 가담하여 싸웠다. 하지만 그들 중 그 누구의 이름과 얼굴도 기억되지 못한다. 이 책은 전쟁에 참전했던 수백 명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여성들은 참전하여 저격수가 되거나 탱크를 몰기도 했고, 병원에서 일을 했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전쟁의 일부가 되지 못한다. 전쟁을 겪은 여성들에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들은 전쟁 이후 어떻게 변했으며, 사람을 죽이는 법을 배우는 건 어떤 체험이었나? 이 책에서 입을 연 여성들은 거의 대부분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전쟁 가담 경험을 털어놓는다. 여성이 털어 놓는 전쟁 회고담은 전쟁 베테랑 군인이나 남성이 털어 놓는 전쟁 회고담에서는 철저히 배제되어온 이야기이다.

 먼저 읽고 내가 붙인 추천사는 이렇다.

이 책은 전장에서 직접 총을 쏘고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 책에 담긴 압도적인 목소리와 함께 ‘전후세대’라는 말은 의미를 잃는다. 우리는 아직 전장의 포연과 비참 속에 있다. 전쟁이 없는 세상이 어떻게 가능한지 여전히 알지 못하지만, 우리는 알렉시예비치와 함께 이렇게도 말해야 한다. “전쟁은 인간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알렉시예비치의 작업에 관심을 갖게 돼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영어본을 구하고(러시아어본은 절판됐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외 몇 권의 다른 책은 러시아어본을 주문했다. 올 겨울은 알렉시에비치의 목소리 소설과 함께 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15. 10. 07.

 

P.S. 예측대로, 혹은 예감대로 알렉시예비치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추천사를 썼다는 이유로 여러 매체에서 의견을 물어왔는데, 그중 한국일보에 기사화된 내용을 옮긴다.

서평가 로쟈는 “알렉시예비치의 작품이 전통적 의미의 문학작품은 아니지만 노벨위원회가 사회적 문제의식이나 책임의식을 담는 작업에 적당한 주목이 주어져야 한다고 판단을 내린 것 같다”며 “알렉시예비치의 작품은 기록된 사실이 허구적 상상력을 압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사회적인 문제의식을 담은 책을 지속적으로 내는 작업에 정당한 주목이 주어져야 한다는 판단에서 노벨문학상이 주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지난해 작가주의 성향의 작가인 모디아노에게 노벨문학상이 돌아갔는데, 다시 방향이 바뀐 이번 수상은 작가로서의 책임의식이 중요하다는 사인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15. 10.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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