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완연하여 저녁 외출 때 긴팔을 입었다. 몸도 그렇지만 마음도 이제 추운 날들을 준비해야 할 듯. 그 전에 낙엽들이 지는 걸 보게 될 터이다. 어김없이... 페이퍼 거리가 밀렸는데, 아무래도 피로가 쌓이다 보니 예전만큼 활발한 포스팅은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주말이니 만큼 '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이번주에는 철학/고전 분야에서 3인이다.
먼저 프랑스 철학자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의 주저 <쟁론>(경성대출판부, 2015)이 번역돼 나왔다. 얼마 전 <리오타르, 왜 철학을 하는가?>(북노마드, 2015)가 번역된 것도 사실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포스트모던의 조건>(민음사, 1992)으로 널리 알려진 철학자이지만, 사실 '보고서' 성격의 책이었기에 철학적 주저라고 하기엔 어색했다. <쟁론>은 그래도 철학자로서 그의 존재감을 확인시켜줄 듯싶다. 오래 전에 영역본만 구해놓았었는데, 읽어볼 기회가 생겨 다행이다. 출판사의 책소개는 이렇다.
쟁론은 두 가지 논의 모두에 적용될 수 있는 판단 규칙의 결여로 인해 공정하게 해결될 수 없는, 두 당사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한 경우이다. 이러한 쟁론을 계쟁인 양 간주하여 동일한 판단 규칙을 양쪽에 적용한다면, 둘 중 적어도 한 쪽에 대해 잘못을 범한 게 된다. 잘못은 우리가 판단의 준거로 삼는 어떤 장르의 담론 규칙들이, 판단되는 담론/들의 장르 또는 장르들의 규칙들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생겨난다.
책소개라고 하기에도 멋쩍다(학출판부 책이라서 그런가).. 리오타르의 어떤 저작이다, 라는 내용이 빠져 있기에. 그냥 제목 '쟁론'에 대한 설명으로 읽으면 되겠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의 신작도 나왔다. <에로스의 종말>(문학과지성사, 2015). 보통 일년에 한권씩 나왔는데, 지난 봄에 <심리정치>(문학과지성사, 2015)가 나왔으니 올해는 두 권이다. 게다가 제목에도 변화가 있다(네 글자 제목에서 여섯 글자로). 어떤 의미에서, 에로스의 종말인가.
오늘날 왜 에로스적인 경험이 불가능하게 되었는지를 열정적으로 증명해 보인다. 저자는 사랑의 위기가 타자의 침식 과정과 자아의 나르시시즘 경향의 확산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설명한다. 자기애를 지닌 주체는 자기 자신을 위해 타자를 배제하는 부정적 경계선을 긋는다. 그는 타자의 타자성을 인식하고 인정할 줄 모른다. 이러한 나르시시즘의 지옥 안에서 타자의 실존에 대한 근원적인 경험인 에로스는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나르시시즘의 지옥'이 에로스의 종말을 낳았다고 하면 수긍을 하겠는데, 사회역사적 상황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지 않나 싶다. 우리의 경우는 '에로스의 포기'라고 해야 할까.
동양 정치사상 전공자로 활발한 저술과 강연활동을 펼치고 있는 신동준 (21세기 정경연구소) 소장의 책들도 연거푸 나오고 있다. 이번에 나온 건 <동서 인문학의 뿌리를 찾아서>(인간사랑, 2015). 동서 인문고전을 비교/대조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대표적인 동서고전의 정수를 뽑아 그 이동을 밝혀 놓았다. 공자와 소크라테스, 맹자와 플라톤, 순자와 아리스토텔레스, 한비자와 마키아벨리, 사마천과 헤로도토스, 진수와 플루타르코스를 비교하면서 고금동서를 관통하는 진정한 영웅의 난세리더십을 추적하고 있다. 춘추전국시대와 삼국시대를 방불 하는 21세기 G2시대의 난세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략을 독자들 스스로 찾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서이다. 이 책을 통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임기응변의 지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공맹과 플라톤 정도는 읽어본 독자들이 고전에 대한 이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데 요긴할 듯싶다...
15. 10.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