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주만에 '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국내 시인, 소설가, 평론가 순이다. 먼저, 이성복. '이성복 시론'으로 세 권이 한꺼번에 출간됐다. 분량으로는 한권으로 합본해도 될 만하지만 글의 양식이 달라서 따로 묶은 듯하다.

 

시인 이성복이 오래전부터 시에 대한 사유는 물론이요, 동서양 철학과 수학, 천체물리학 등 여러 학문을 넘나드는 깊은 독서와 공부의 흔적을 자신의 문학적 거울로 삼아온 내력이 2013년 벽두 10년 만에 출간된 시집 <래여애반다라> 이후 치러진 인터뷰와 대담 등을 통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의 시를 찾고 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공부의 궤적을 좇아 들여다보고 싶은 열망을 함께 키워온 셈이다. 그의 시집 출간은 결코 잦은 편이랄 수 없었고, 그의 행보 역시 거처한 대구에서 학생들과 공부하고 자신의 글에만 집중하는 두문불출에 가까웠기에 그 열망의 크기는 줄지 않고 궁금증만 더해갔을 뿐이다. 이번에 나온 시론집 3권은 바로 이런 독자들의 궁금증과 갈망에 화답하는 책이다.

그 가운데 <무한화서>는 2002년에서 2015년까지 이루어진 대학원 시 창작 강의를 아포리즘의 형식으로 정리한 것인데, 아포리즘에 대한 그의 여전한 선호를 확인할 수 있다(가령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문학동네, 2001)도 바로 떠올릴 수 있다). 이런 식이다.

우리는 망망대해의 물거품 하나에도 못 미쳐요. 문학이란 건 허망한 존재가 자기 허망함을 알고 딴짓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에요. 비참하게 깨져도 한심하게 무너지지는 않겠다는 것. 모든 것이 허망해도, 허망하지 않은 게 꼭 하나 있어요. 일체가 허망하다고 말하는 이것! 이 공부를 오래 해야 독하게 벼려져요.

그의 시와 시론을 허망함의 교재로 삼아도 좋겠다.

 

 

소설가 김원우가 새로 펴낸 책은 소설이 아니라 소설 작법서다.<작가를 위하여>(글항아리, 2015). 작가로서는 <산책자의 눈길>(강, 2008), <일본 탐독>(글항아리, 2014)에 뒤이은 또 하나의 외도라고 할까. '소설 잘 쓰기의 모든 것'이 부제로 700쪽이 넘는 두툼한 책이다.

'재미없다'는 독후감이 통설로 굳어진 국내 소설에 대한 작가의 의구심과 반성에서 시작해 좋은 소설, 그럴듯한 소설, 읽히는 소설, 진지한 소설을 왜 써야만 하고, 어떻게 쓰는가에 대한 기초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문장 하나하나에 저자의 사유가 체계화되어 있다. 저자가 사유의 완결성을 좇으며 문장을 조립해나가는 과정은 소설가로서 어떻게 언어와의 사투를 벌여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소설작법서'란 띠지의 문구가 궁금증을 부추긴다. 한번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이어령의 '시 문학 수업'으로 <언어로 세운 집>(아르테, 2015)이 출간됐다. 그의 수많은 책들 가운데 나의 관심은 주로 문학론에 한정되는데, 다시 찾으니 평론집 <저항의 문학>(문학사상사, 2003), 청마 유치환 시의 기호론적 분석으로 <공간의 기호학>(민음사, 2000) 등이 모두 절판된 상태다. <언어로 세운 집>에 수록된 글들도 19년 전에 한 일간지에 연재되었던 것이라니까 1996년의 글이다. <공간의 기호학>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을 듯하다. 부제 역시 '기호학으로 스캔한 추억의 한국시 32편'. 시 분석의 바탕에 기호학이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그저 시에 대한 주관적 감상평을 나열한 뻔한 해설서가 아니다. 한국 문학 비평의 신기원을 열었던 이어령 교수는 시의 시대적 배경이나 시인의 전기적 배경에 치우쳐 시를 오독해온 우리에게 시어 하나하나의 깊은 의미를 일깨워주며, 문학 텍스트 속에 숨겨진 상징을 기호학으로 분석함으로써 일상의 평범한 언어에 감추어진 시의 아름다운 비밀을 파헤쳐 보여준다.

이어령이라는 한 시대의 지성이 한국 현대시와 만나는 장면이 궁금하다면 일독해봄직하다...

 

15. 0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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