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다솜이친구(177호)에 실은 '감각의 도서관' 꼭지를 옮겨놓는다. 독성 생물의 진화를 다룬 EBS 다큐프라임, <독한 것들>(Mid, 2015)을 다루면서 다윈의 <종의 기원>(한길사, 2014)을 간단히 훑었다. 양자오의 <종의 기원을 읽다>(유유, 2013)도 참고한 책이다.

 

 

다솜이친구(15년 9월) 더 독해진 진화를 만난다

 

생물과 그 진화만큼 놀라운 미스터리가 있을까. 생활환경의 변화, 기생생물 먹이의 변화 등 생물의 진화는 다양하다. 그중 가장 경이로운 부분은 바로 독(毒)이다. <독한 것들>은 맹독을 가진 생물들의 생태를 관찰하고 독이란 무엇인지, 독과 자연선택의 상관관계는 무엇인지 등을 살피고 있다. 진화생물학의 시초가 된 고전 <종의 기원>과 함께 읽어본다. 

 

생물 진화의 대표적 미스터리 중 하나는 독의 진화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으로도 10만 종이 넘은 생물이 독을 사용하고 있다. 왜 생물들은 독을 가져야만 했을까. EBS 다큐프라임 <진화의 신비, 독>을 단행본으로 엮은 <독한 것들>(엠아이디)는 이 문제를 다룬다.


먼저 알아두어야 하는 것은 수많은 화합물과 단백질로 구성된 독을 생산하기 위해서 많은 에너지를 희생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가령 독을 가진 뱀의 경우 독이 차지하는 무게는 몸무게의 0.5% 이내이지만, 다 쓰고 난 독을 재충전할 때 기초대사량이 11% 이상 증가한다. 만만찮은 비용이기에 사냥할 때도 가급적이면 독을 아껴 써야 한다. 그럼에도 독을 가지게 된 사연이 있다.


대표적인 독성생물로 뱀이 독을 갖게 된 건 약 6,000만년 전부터라고 한다. 원래는 아나콘다처럼 거대한 몸짓으로 먹잇감을 제압했으나 생태계의 격변으로 공룡 같은 대형 생물이 멸종하던 시기에 뱀도 그런 몸집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뱀은 커다란 몸집 대신에 독을 갖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흥미로운 건 이러한 뱀의 진화가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의 진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아프리카나 아시아에 서식하는 구세계 원숭이와 아메리카 대륙에 서식하는 신세계 원숭이 간의 차이점 중 하나는 시각 능력의 차이인데, 구세계 원숭이들이 가시광선을 모두 볼 수 있는 데 반해서 신세계 원숭이들은 붉은색과 주황색을 잘 보지 못한다. 이런 차이가 빚어진 유력한 원인은 구세계의 원숭이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뱀의 위협에 시달려온 데 반해서 신세계 원숭이들에게 그 위협은 상대적으로 최근의 일이었다는 데서 찾아진다. 독사가 없는 마다가스카르에 사는 여우원숭이가 영장류 가운데 시력이 가장 나쁘다는 사실도 뱀과 영장류의 시력 간의 상관성을 말해준다. 독사는 주로 화려한 색깔을 띠고 있기 때문에 색상을 구별할 수 있는 시각의 발달은 뱀을 피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이렇듯 한 종의 진화는 생태계에서 관계를 맺고 있는 다른 종 생물들의 진화를 자극하고 촉진한다. 독의 진화도 마찬가지여서 고추의 매운 맛을 나게 하는 캡사이신은 대표적인 식물독의 하나이지만 포유류와 달리 조류는 이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고추는 캡사이신을 통해 설치류나 포유류는 피하면서 자기 씨앗을 가장 널리 퍼뜨릴 수 있는 조류와 함께 진화해온 것이다. 물론 캡사이신을 너무 좋아하여 독특한 음식문화로까지 만든 한국인에 대해선 미처 고려하지 못한 전략이긴 하다.


생물의 진화와 그 미스터리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다윈의 <종의 기원>(한길사)에 손길이 가도 좋겠다. 독의 진화와 같은 주제도 따지고 보면 <종의 기원> 이후에야 가능해진 발상이다. 그렇지만 <종의 기원>은 많이 읽히지 않는 고전이다. 이미 진화론이 기본 상식이 된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1859년 처음 출간된 <종의 기원>이 던진 충격파로부터 훌쩍 벗어나 있는 셈이랄까. 그럼에도 <종의 기원>을 읽는다는 것은 ‘다윈 혁명’의 기본 발상이 어떤 것이고, 그것이 어떠한 근거를 바탕으로 제기되었는지 ‘원전’을 통해서 확인해본다는 의미가 있다.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서 자연선택을 다윈은 이런 식으로 설명한다. 자연계에는 많은 변이가 출현하며 이 중에는 개체에게 유리한 변이도, 해로운 변이도 있기 마련이다. 거기서 “유리한 변이가 보존되고 해로운 변이가 제거되는 것”을 다윈은 자연선택이라고 부른다. 자연에서는 사소한 차이도 생존경쟁에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으며 이 차이는 오랜 시간동안 축적된다. 그런 차이를 보존하고 축적하는 과정이 자연선택의 과정이다.


다윈은 다른 한편으로 성선택이라는 개념도 도입하는데, 성선택은 생존을 위한 투쟁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수컷들 사이의 투쟁에 따른다. 성선택의 결과는 개체가 죽는 것이 아니라 후손을 남기지 못하는 것 정도이기 때문에 자연선택보다는 덜 가혹하다는 게 다윈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자면 후손을 남기지 못하는 개체는 결국 그 존재가 지워질 것이기에 덜 가혹한다는 판단에는 이견도 가능하겠다. 자연선택과 성선택, 이 두 개념이 자연계의 온갖 미스터리를 설명하는 다윈의 특별한 도구이다.

 

15. 09.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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