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점에서 책을 가장 많이 도둑맞는 작가' 찰스 부코스키의 책이 하나 더 나왔다. 만년의 일기를 엮은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모멘토, 2015). 그간에 '부코스키'란 이름으로 소개됐는데, 이번 책은 '찰스 부카우스키의 말년 일기'라고 돼 있다. 부코스키면 어떻고 부카우스키면 어떤가, 싶은데, 결과적으론 번거로워졌다. 이런 건 누스바움이냐 너스바움이냐 하는 것처럼 소모적이다. 

 

 

<우체국>과 <여자들>(열린책들, 2012) 이후에(<팩토텀>은 그 전에 출간됐고) 좀 뜸하다가 나온 책인데, 부코스키가 어떤 작가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하드보일드류의 압축된 문체로 술과 도박의 삶, 섹스와 폭력, 세상의 부조리와 어리석음 따위를 가차 없이 그려낸 전설적 작가 찰스 부카우스키(1920~94)가 죽음의 문턱에서 쓴 일기 형식의 에세이집이다. 50년간 애용했던 타이프라이터를 매킨토시 컴퓨터로 바꾸고 그는 죽기 직전까지 글쓰기에 대해, 경마의 효용에 관해, 돈과 인간에 대해, 죽음에 관해, 젠체하는 문인들의 행태와 정체에 대해 성찰했다. 부카우스키의 모든 시와 소설이 자전적이라고는 하지만, 그의 내밀한 생각과 느낌들을 이 일기만큼 오롯이 드러낸 글은 없었다. 그 기록에 미국 언더그라운드 만화의 선구자인 로버트 크럼이 그림을 달았다. 이 책은 두 전설의 공동 작업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고상한 말년과는 사뭇 거리가 있다고 할까.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매일 경마장에 가서 죽치고 있는 자신에 대해 부코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난 경마장에 매일 간다. 매일 거기 나타나는 사람은 직원들 빼곤 나밖에 없다. 내게 무슨 병이 있는 모양이다. 사로얀은 경마에 죄다 꼬라박았고, 판테는 포커에, 도스토옙스키는 룰렛에 죄다 꼬라박았다.(...) 난 돈을 좀 더 소중히 여긴다. 거의 평생토록 돈이 너무 없었다. 공원 벤치가 어떤지 집주인의 문 두드리는 소리가 어떤지 난 안다. 돈 문제는 딱 두 가지다. 너무 많거나 너무 없거나.(11쪽)

이런 경력과 심사를 가진 작가에게서 좋은 소리가 나올 리는 만무하다. "작가 치고 다른 작가 작품 좋아하는 사람 별로 없어. 좋아할 경우가 딱 하나 있긴 하지. 그 작가가 막 죽었거나 죽은 지 한참 됐을 경우." 정도의 독설은 예상하고 들어가야 한다. 제목으로 뽑은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는 이런 내력을 갖고 있다.

난 죽음을 왼쪽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때때로 꺼내서 말을 건다. "이봐, 자기, 어찌 지내? 언제 날 데리러 올 거야? 준비하고 있을게."

이 정도면 무더위를 좀 식혀줄 만한 '쿨' 아닌가.

 

 

 

그런 용도로는 <아사디 지로의 처음이자 마지막 인생 상담>(파란미디어, 2015)도 빠지지 않는다. "소설 <철도원>의 작가 아사다 지로가 일본의 <주간 플레이보이>에 연재했던 유쾌하고 발랄한 인생 상담글을 모은 책. AV부터 경마까지, 방사능 오염부터 독도 문제까지 일본 현대 사회를 관통하는 모든 질문에 대해 명쾌하고 거침없는 독설로 상담을 펼쳐보인다."

 

일단 <주간 플레이보이>에 연재했다는 사실에서 질문의 내용과 수준을 가늠해야 한다. <주간 플레이보이>의 편집자인 27세 청년(다로)이 독자 대표로 '61세 영감' 아사다 지로와 대화를 나누는 형식인데, "빈유보다는 역시 거유가 좋을까요?"라는 (수준 이하의) 질문에 대해 지로는 분격해 하며 이렇게 답한다.

"투고자, 당신이 하는 말은 이중으로 이해가 안 가. 먼저 나는 가슴을 안 좋아해. 그리고 이런 '근거 없는 미학'으로 사람을 사랑하지 않아. '거유니까'라는 이유로 고른 여자가 아무리 사악하더라도 가슴만 크면 괜찮다는 각오가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보통 그렇지 않잖아. 알겠나?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삶은 살면 가까운 장래에 반드시 불행해질 거야. 인간의 본질을 제대로 확인하라고. 하아... 그건 그렇고 심하군. 각양각색의 남자가 있지만, 이 놈은 정말 최악이야."(43-44쪽)

물론 좀 진지한 내용의 상담도 있다. 친구가 세상을 떠난 회사원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상담해오자 지로는 이렇게 답한다.

"지금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당신 자신, 자기 자신도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자각을 하는 거야. 갑자기든 예측했든,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아주 쉽게 죽어. 당신도 예외는 아니야. 친구를 잊으라는 소리는 아니야. 그래도 그에 집착하며 고민에 빠진 상황에서는 빨리 벗어나게. 젊을 때는 역시 어렵겠지.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이면 할 수 있게 돼."(284쪽)

역시 부코스키만큼이나 쿨하다. 두 사람 모두 노년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작가라서 그런 태도를 갖게 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다(둘다 도박광이라는 공통점은 있군). 여하튼 읽어도 좋고 안 읽어도 그만인 책들이지만, 뭔가 청량감을 느끼게 해주어서(읽다가 킥킥거리게도 만들고) 같이 묶어보았다...

 

15. 08.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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