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기 전에 '이주의 저자'를 골라놓는다. 한 명의 시인과 두 명의 소설가다. 먼저, 정현종 시인. 새로 나온 건 창작시집이 아니라 번역시집이다. '정현종 문학 에디션' 시리즈로 릴케, 네루다, 로르카 시집이 <정현종 시인의 사유 깃든 릴케 시 여행>(문학판, 2015) 하는 식의 제목으로 출간됐다. 네루다와 로르카의 시집은 이미 나온 적이 있기에 새롭지 않지만 릴케 시도 번역한 적이 있던가 싶어 궁금하다. 소개를 보니 역시나 첫 번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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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시인 김춘수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 그는 20세기의 인상적 시인이자 독일의 뛰어난 서정 시인이다. 릴케에게 시를 쓴다는 것은 세계를 내면적으로 들여다보고 삶을 극복하는 하나의 예술이 된다. 이처럼 세계 시문학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릴케의 시가 이번에 정현종 시인의 번역본으로 문학판에서 처음으로 간행된다. 네루다와 로르카 시의 번역가로 유명한 정현종 시인이 릴케의 시 한 편 한 편을 심혈을 기울여 우리말로 옮기고 감상을 덧붙였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시 '가을날'을 비롯해, 평소 정현종 시인이 좋아하고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릴케 시 20편이 담겨 있다.
시 번역에 감상까지 덧붙인 것이 이 시리즈의 특징인 듯하다. 아무려나 몇몇 릴케 시들이 어떻게 옮겨졌을지 궁금하다(특히 '두이노의 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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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꾼 김중혁 작가도 새 소설집을 냈다. <가짜 팔로 하는 포옹>(문학동네, 2015). <메이드 인 공장>(한겨레출판, 2014)의 잔상 때문인지 이번에도 산문집을 펴낸 줄 알았다. 창작소설로는 장편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문학과지성사, 2014)에 이어지는 책.
김중혁 소설집. 숫자로 치자면 네번째 소설집이고, 작가의 입을 빌리자면 첫번째 연애소설집이다. 총 여덟 편의 소설이 실린 이번 작품집에서 그는 그만의 장기인 빠른 읽힘의 힘을 여지없이 발휘하고 있다. 일부러 쉬어가라는 듯 찍어둔 쉼표 사이사이 그만의 군더더기 없는 문장들은 여전히 젊다. 특유의 재치도 양껏 잘 녹여냈다.
특별히 '첫번째'를 강조한다는 것은 연애소설에 좀더 공력을 기울이겠다는 뜻일까. 두번째 연애소설집으로도 이어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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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영국의 간판 작가 이언 매큐언의 신작 소설 <칠드런 액트>(한겨레출판, 2015). 전작으로 <토요일>(문학동네, 2013), <이노센트>(문학동네, 2014) 등이 번역됐지만 '핫한' 신작이 바로 소개된 건 오랜만이지 싶다. 이번에는 출판사가 바뀐 것도 특이점. 어떤 작품인가.
동시대 최고의 작가 중 하나로 꼽히며 한 세대에 걸쳐 팬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아온 독보적인 작가 이언 매큐언. <칠드런 액트>는 2014년 9월 발표한 최신작으로 그의 13번째 장편소설이다. "머리와 가슴으로 말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다시 한 번 증명해냈다"는 언급처럼 법과 종교 간 대립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최고의 이야기꾼으로서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이다. 제목 The Children Act는 1989년 제정된 영국의 유명한 '아동법'에서 따온 것으로 이는 법정이 미성년자(아동)와 관련한 사건을 판결할 때 최우선적으로 '아동의 복지'를 고려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영국 고등법원의 가사부 법정을 무대로 한 이 책의 아이디어를 매큐언은 친구이자 전직 항소법원 판사인 앨런 워드에게서 얻었다. 그는 판사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우연히 워드가 쓴 판결문을 접하고 그 어떤 소설 못지않게 생생한 인간 드라마를 소설화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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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입만 해놓고 아직 매큐언의 <속죄>를 읽지 않았고 영화도 보지 못했는데(이런 작가들은 시간도둑이기 때문에), <칠드런 액트>로 방어선을 쳐야 할까 고민해봐야겠다. <속죄>와 마찬가지로 원서도 구입해볼까 한다...
15. 08. 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