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비다운 비가 오는 주말에 '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넓게 보자면 세 명의 철학자다. 먼저, 교육부장관까지 지낸 프랑스의 철학자 뤽 페리. <철학의 다섯 가지 대답>(더퀘스트, 2015)와 <사랑에 관하여>(은행나무, 2015), 두 권이 한꺼번에 나왔다. 지난달에는 <철학으로 묻고 삶으로 답하라>(책읽는수요일, 2015)가 재번역돼 나오기도 했으므로(<사는 법을 배우다>(기파랑, 2008)이란 제목으로 나왔던 책이다) '쏟아졌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이번에 나온 두 권은 모두 동료 철학자 클로드 카플리에가 질문을 던지고 뤽 페리가 답하는 대담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철학의 다섯 가지 흐름을 정리해주는 <철학의 다섯 가지 대답>은 미리 읽어볼 기회를 가졌는데, 내가 쓴 추천사는 이렇다.

2천5백 년 서양철학사는 한 권에 집약하기가 만만치 않으며, 대개 너무 딱딱하거나 너무 가볍게 다뤄진다. 그런데 일찍이 프랑스의 신철학 3인방으로 불렸으며 일반 대중에게 철학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빼어난 재주를 지닌 뤽 페리는 ‘철학이란 무엇이고, 철학사는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명쾌한 대답을 내놓는다. 지금껏 위대한 철학사조들은 예외 없이 ‘무엇이 진리인가’ ‘어떻게 살아야 옳은가’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세 가지 질문을 중심축으로 전개되어 왔다. 결국 철학은 언제나 ‘무엇이 더 나은 삶인가’에 대한 모색이었으며, 궁극적으로 필멸자인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였다. 그리스인들은 두려움이 지혜의 가장 큰 적이라고 했다. 신과 이성이 사라진 시대, 두려움 없는 삶을 위한 아름다운 철학 이야기가 여기에 있다.

<사랑에 관하여>에서는 21세기를 설명하는 철학으로 '사랑'을 제시한다. "19세기, 연애결혼이 가문 간의 결합인 타산적 결혼을 대체하면서 부각된 ‘사랑’이 가족관계뿐 아니라 정치, 교육, 예술 등 공적 분야의 새로운 동력이 되었는데 이를 뤽 페리는 ‘사랑 혁명’이라 말한다. ‘사랑 혁명’은 새로운 시대에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데에 대한 단 하나의 기준이 된다." 흥미를 끄는 주장이라 일독해봄직하다.

 

 

두번째는 1975년 스위스 태생의 철학자로 현재는 한국에서 수행중인 알렉상드르 졸리앵이다('졸리앙'이란 이름으로도 소개된 바 있다). 1999년에 발표한 데뷔작 <약자의 찬가>(새물결, 2005)가 국내에도 제일 먼저 소개되었는데, 이후에 <고마워요, 철학부인>(푸른숲, 2010),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책읽는수요일, 2013) 등의 책이 차례로 나왔고, 이번에 나온 <인간이라는 직업>(문학동네, 2015)은 네번째로 번역된 책이다. 부제가 고통에 대한 숙고'라고 붙여졌는데, 졸리앵의 경우엔 과장이 아니다. "탯줄이 목에 감겨 질식사 직전에 기적적으로 태어나 뇌성마비를 갖게 된" 장애인 철학자여서다. 그가 바라보는 인생은 어떤 것인가. 내가 읽어본 감상은 이렇다. 

‘인간이라는 이 망할 직업!’ 이렇게 말하는 저자라면 어떤 이야기라도 들어줄 용의가 있다. 그리고, 여기 ‘장애인 철학자’ 알렉상드르 졸리앵의 인생론이 있다. 면밀한 사색과 유연한 성찰을 통해서 그는 ‘인간이라는 직업’을 살아낸다는 것의 의미를 이모저모 밝힌다. ‘동업자’로서 여러 번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다. 당분간 이 직업을 떠날 수 없는 모든 이를 위한 훌륭한 ‘직업 안내서’다.

 

그리고 미국의 여성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표기는 '너스바움'과 '누스바움"을 오가고 있다). 지난봄에 <혐오와 수치심>(민음사, 2015)이 소개된 데 이어서 또 다른 대작이 번역돼 나왔다(번역본으로는 1,350쪽에 이른다). 3권으로 분권돼 나온 <감정의 격동>(새물결, 2015)이다. "칸트의 '이성' 3비판서에 버금가는 '감정' 3비판서"라고 뒷표지에는 적혀 있다. 한권의 책을 세 권으로 분권한다고 해서 3부작이 되는 건지는 의문이지만, '누스바움 감정철학의 집대성'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책의 의의에 대한 출판사의 소개는 이렇다.

왜 감정 철학인가? 감정은 나의 행복과 세계의 행복이 일치하는 행복한 합일을 꿈꾼다. 따라서 감정을 중심으로 인간을 바라보면 지금까지 ‘이성 중심’으로 생각하고 만들어온 모든 이념과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리하여 감정 철학은 ‘연민과 상상력의 정치학’이다. 인간의 ‘슬픈 열대’였던 감정에 대한 장대한 탐구를 통해 우리의 사랑과 법과 제도 그리고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혁신할 것을 촉구하는 우리 시대의 사상서!

분량상 번역되기 어려울 걸로 생각했는데, 출간은 뜻밖이어서 반갑다. 원서도 바로 주문했다...

 

15. 0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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