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기 전에 '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재일 에세이스트 서경식과 소설가 복거일, 그리고 미국의 여성 작가 도나 타트, 3인이다.
'미술 순례'로 잘 알려진 서경식의 신작은 뜻밖에도 <시의 힘>(현암사, 2015)이다. '절망의 시대, 시는 어덯게 인간을 구원하는가'가 부제. 뜻밖이라고 적었지만 막상 낯설지는 않다. 진작에 나오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
<시의 힘>은 그의 첫 문학 에세이이자, 시대의 격류와 그 흐름에 휘말린 개인사를 아우르는 '언어'에 관한 비평집이다. 제목은 '시의 힘'이지만 그의 사유는 '시'와 '문학'을 넘어서서 '언어'의 바다에 닿는다.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습득하기 시작하는 '말'과 학습을 통해 배우는 '글'이 어떻게 개인의 사상을 구축하는지, '모어'와 '모국어'의 틈새에 갇힌 디아스포라의 외로움은 이해받을 수 있는지, '시'와 '문학'이 주는 힘은 무엇이며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진지하게 탐구한다.
여느 책에서와 마찬가지로 저자의 탄탄한 사유와 섬세한 감수성을 만나볼 수 있다. 저자와 함께 한국 현대시, '조선의 시인들'을 다시 읽는 경험은 보너스다.
데뷔 장편소설 <비명을 찾아서>(1987)의 작가로 기억되지만 분량으로 치자면 소설가 복거일의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작품이 완간되엇다. <역사 속의 나그네>(전6권, 문학과지성사, 2015).
<역사 속의 나그네>는 1989년에 연재를 시작해 1990년에 연재를 중단하고 한 권 정도의 분량을 더해, 1991년 세 권을 출간한 뒤 25년의 시간이 흐른 작품이다. 그사이 후속 권을 기다리는 독자들의 기대가 높았지만 공백기가 길어졌다. 자신이 남길 수 있는 몇 권의 책 중 이 책의 마무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작가는, 죽음과 경주한다는 마음으로 집중하여서 한 해 동안 세 권을 더 보태 완간하게 되었다. <역사 속의 나그네>는 21세기(2070년대) 인물 이언오가 26세기에서 날아온 시낭 '가마우지'를 타고 다시 백악기 탐험을 떠났다, 16세기 조선사회에 좌초하여 살아가는 이야기다.
21세기의 인물이 16세기의 과거로 돌아가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설정 자체가 '복거일 소설'을 인증한다. 국내에서는 워낙 희소한 갈래에 속하는지라 흥미로운 독서거리로 삼을 만하다.
2014년 퓰리처상 수상작 <황금방울새>(은행나무, 2015)를 통해서 문학 독자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고 있는 작가 도나 타트의 출세작 <비밀의 계절>(은행나무, 2015/ 문학동네, 2007)도 다시 나왔다. 이번에는 독자를 재발견할 수 있을까.
1992년 출간 전부터 세계 각국에 판권이 체결되며 화제의 중심에 올라섰고, 계약금 45만 달러, 초판 부수 7만 5천 부를 기록하며 순식간에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다. 영미권 유수 매체와 평단의 극찬, 대중의 열렬한 호응을 불러일으키며 현재까지 전 세계 500만 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하며 스테디셀러가 되었고, 도나 타트는 <비밀의 계절>을 발판으로 미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로 당당히 자리매김했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독특하고 신비로운 분위기와, 인물의 섬세한 심리 묘사를 그대로 살리되, 이윤기 선생의 딸이자 고전 전문번역가인 이다희 씨의 도움을 받아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그리스어, 라틴어를 비롯한 외국어 표현 및 문장을 매끄럽게 다듬었다.
올 여름 읽을 거리가 몇 권 더 추가된 기분이다...
15. 07.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