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말마다 마지막 주말은 성적 처리에 할당된다. 미뤄놓은 채점과 성적 입력에 꼬박 하루가 걸리고 쉬엄쉬엄 하게 되면 이틀걸이다. 어제오늘이 그런 경우인데, 컨디션마저 좋지 않은 탓에 매우 지지부진하다. 그러는 중에도 '이주의 저자'를 골랐다. 이것저것 따져볼 여유도 없어서 눈에 띄는 저자 3인으로. 각각 비평가와 역사학자와 생물학자다.
먼저 소설가와 사회비평가도 겸하고 있는 미술비평가, 특히 사진비평에서 일가를 이룬 존 버거의 <사진의 이해>(열화당, 2015)가 출간되었다. 이제는 국내 독자에게도 이름이 친숙한 제프 다이어가 엮은 선집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1967년부터 2007년까지 사십 년에 걸쳐 씌어진 그의 사진 에세이들로, 예리한 감각을 지닌 작가 제프 다이어에 의해 한자리에 모였다. 존 버거에 관한 비평서 <말하기의 방법>의 저자이자 <존 버거 선집>의 엮은이기도 한 제프 다이어는, 누구보다 버거의 작품세계 전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다른 저서에 포함된 사진에 관한 글 외에, 책으로 묶이지 않았던 전시회 평문, 사진집 서문이나 후기 등, 총 스물네 편의 에세이가 시간 순서에 따라 사진가들의 주요 작품과 함께 실려 있다.
그 자체로 '기념사진' 같은 책, 사진이나 비평 독자들에겐, 여름 선물과도 같은 책이다.
한편 절판된 것인지, 제프 다이어의 <말하기의 방법>은 알라딘에서 검색이 되지 않는다. 1988년작이니까 좀 오래된 책이긴 하다. 표지가 말해주듯이.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글항아리, 2013)로 알려진 역사학자 이언 모리스의 책도 새로 나왔다. <전쟁의 역설>(지식의날개, 2015). '폭력으로 평화를 일군 1만 년의 역사'가 부제. '전쟁의 역설'이라는 번역본 제목은 전쟁의 '공헌'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저명한 역사가이자 고고학자인 저자는 반인륜적 범죄로 여겨지는 전쟁이 실제로 인류를 위해 얼마나 위대한 공헌을 해 왔는지 명확하게 보여 준다. 전쟁은 더 크고 강력한 조직을 만들고, 이를 통해 탄생한 국가 권력은 내부의 폭력을 억제시킨다. 사람을 죽이는 전쟁이 오히려 세상을 안전하게 만들고, 안전한 세상 속에서 인류는 부를 창출하였다. 그러나 1만 년간 이어 온 이 역설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인가? 저자는 과거와 같은 ‘생산적 전쟁’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고 예견한다. 그리고 향후 40년을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한 시기로 규정하고, 이를 안전하게 헤쳐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
매우 논쟁적인 주장을 담고 있어서 열독 거리로 삼을 만하다(최소한 고리타분한 책은 아닌 것).
그리고 이중나선 구조의 발견으로 제임스 왓슨과 함께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던 프랜시스 크릭이 의식의 문제를 다룬 책 <놀라운 가설>(궁리, 2015)이 다시 나왔다. 다시 나왔다고 한 건 <놀라운 가설>(한뜻, 1996)이라고 한번 나왔던 책이기 때문이다. 원저는 1995년에 나왔으니까 바로 소개되었던 책. 20년이 지난 시점에서는 어떤 의의를 가질지 궁금하다.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프랜시스 크릭의 역저. 정신현상의 모든 특성을 다루지는 않는다. 이 책은 ‘시각을 통한 인식’이라는 한정된 주제를 중심으로 의식에 대한 과학적 연구의 서막을 열고 있다. 그동안 철학이나 종교의 영역에서만 언급되던 의식, 정신, 영혼의 문제가 실험을 통한 과학적 접근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더욱이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과학적 업적이라고 일컬어지는 DNA 구조의 발견으로 생명의 신비를 해명하는 데 큰 공로를 세운 크릭이 집필했다는 점에서 과학과 종교, 또는 과학과 신비주의를 애매하게 뒤섞는 식의 접근과는 달리, 철저한 과학적 입장에서 정신과 의식의 문제에 도전했음을 알 수 있다.
크릭의 다른 책으로는 <열광의 탐구>(김영사, 2011), <인간과 분자>(궁리, 2010) 등이 있고, 매트 리들리의 전기 <프랜시스 크릭>(을유문화사, 2011)도 읽을 거리다. 이 전기는 2006년에 나온 것인데, 크릭은 2004년에 세상을 떠났다. 단독 저작을 몇 권 남기지 않아서 <놀라운 가설>은 크릭의 마지막 책이기도 하다...
15. 06.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