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도서관에서 발행하는 월간 '오늘의 도서관'(234호)에 실은 글을 옮겨놓는다. '디지털 시대의 책 추천, 서평쓰기'라는 특집의 한 꼭지다. 아무래도 서평에 관한 글이어서 <글쓰기의 힘>(북바이북, 2014)에 실린 '서평 쓰기는 품앗이다'와 내용이 일부 중복된다. 그밖에 <나는 작가가 되기로 했다>(메디치미디어, 2015)에 실린 인터뷰도 참고할 수 있다. 최근에 나온 서평 쓰기 가이드북으로는 김민영, 황선애의 <서평 글쓰기 특강>(북바이북, 2015)이 있다.

 

 

오늘의 도서관(15년 7-8월호) 독자를 위한 서평, 독자에 의한 서평

 

비평과 서평, 그 간격에 대하여
어떻게 하면 좋은 서평을 쓸 수 있을까. ‘좋은 서평’의 기준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터인데, 그러자면 먼저 서평이란 무엇인가부터 정의해야 할 듯싶다. 서평은 책에 대한 품평을 이르는 말로 비평의 한 갈래에 속하지만, 용도에 있어서 비평과는 구분된다. 비평이 독자들이 같은 책을 두 번 읽게끔, 다시 읽게끔 하는 것이라면, 서평은 어떤 책을 한번 읽을 것이냐 말 것이냐를 판단하는 자료를 독자에게 제공하는 것에서 그치기 때문이다. 즉 비평이 재독의 권유라면, 서평은 일독의 제안이다. 비평과 서평은 상대하는 독자가 다르다고 해야 할까.


비평은 어떤 책을 이미 읽은 독자를 상대한다. 반면에 서평은 아직 읽지 않은 독자를 대상으로 쓰인다. 아직 읽지 않은 독자에게라면 비평은 서평으로 읽히고, 한번 읽은 독자에게 서평은 비평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뜻도 된다. 그렇게 독자에 의해서 비평과 서평이 나뉜다면, 비평의 한 갈래에 속하면서도 오늘날 비평의 점차적인 위상 하락과 대비되어 서평의 역할이 부상하고 있는 것은 나름대로 해명이 가능한 현상이다. 비평을 떠받쳐야 할 독자층이 점점 엷어지고 있는 현실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책을 읽은 독자들이 점점 줄고 있다면 비평이 상대할 독자가 엷어지는 것이니 그 역할이 축소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서평의 부상은 비평의 쇠퇴의 이면이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는 독자라 하더라도 해마다 읽은 책보다 읽지 않은 책의 숫자가 훨씬 더 많을 수밖에 없는 게 현재의 독서 현실이다. 점점 많은 책들에 대해 우리는 ‘읽지 않은 독자’가 될 수밖에 없다. 책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지만 우리의 독서량은 산술급수적으로만 증가할 뿐이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최대한 가려서 읽되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가늠해두는 게 최선일 것이다. 서평은 바로 그러한 필요에 대응한다.

 

좋은 서평의 기준을 이야기하다
서평의 기능은 이러한 필요에서 도출된다. 어떤 책을 읽고 싶도록 하거나, 읽은 척하게 하거나, 안 읽어도 되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서평의 기준은 이러한 기능에서 찾아볼 수 있겠다. 즉 어떤 책을 읽고 싶거나 안 읽어도 되도록 하는 데 기량을 발휘하는 글이 좋은 서평이다. 또 어떤 책을 안 읽어도 읽은 척할 수 있을 만큼 핵심을 잘 짚어준다면 이 역시 좋은 서평으로 분류할 수 있겠다.


먼저 ‘이건 읽어보고 싶다’거나 ‘이건 안 읽어도 되겠어’라는 판단이 가능하게끔 하는 것이 서평의 중요한 역할이라면, 서평의 가치는 독자에 의해서 결정된다. 독자가 처분권을 갖는다는 점에서 서평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것이다. 서비스(봉사) 정신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철저한 독자 지향성이 서평의 핵심이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말해, 서평의 효과를 유발하는 한 서평은 어떤 종류이건 무방하다. 어떻게 써도 좋다는 말이다. 단 한두 문장의 언급으로도 좋은 서평이 될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줌으로써 독서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거나 그 반대로 독서의 필요로 제거해준다면(수준 미달의 책까지 우리가 억지로 읽을 필요는 없으므로) 서평으로서는 충분하다.


어떻게 써도 무방하다면, 서평 쓰기의 노하우가 따로 있을 리 없다. 독자의 반응을 끌어낼 수만 있다면 주관적 서평이건, 객관적 서평이건 상관이 없다. 하지만 읽은 척하게 해주는 용도라면 몇 가지 요건은 생각해볼 수 있겠다. 가장 우선적인 것은 서평자가 책을 제대로 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평은 책에서 자신이 읽고 소화한 것을 글로 적는 것이니 일차적으로는 독서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읽고 소화한 만큼 쓸 수 있으며, 서평의 몫은 그것을 다른 독자에게 요령껏 전달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이 어떤 주제의 내용을 어떤 시각에서 다루고 있으며 주요한 메시지는 무엇이고 이것이 우리에게 갖는 의의는 또 무엇인가를 짚어주어야 한다. 물론 모든 서평이 그러한 요건들을 꼼꼼하게 다 갖춰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책의 성격이나 필요, 그리고 서평의 분량 등을 고려하여 적당하게 조절할 수 있다.

 

디지털 시대, 서평의 다양화와 다변화
바야흐로 디지털 시대이고, 책의 형태가 변화하는 만큼 독서의 방식도 변화하고 있다. 디지털화된 책, 곧 전자책을 단말기나 스마트폰을 통해서 읽는 독자도 늘어나고 있다. 디지털 시대 달라진 독서 풍경일 텐데, 서평 역시 지면에 실리는 ‘오프라인 서평’의 형식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이미 인터넷 서평은 일반화되어 있으며, SNS를 통한 독서정보의 공유도 서평과 그 역할이 겹친다. 그뿐 아니다. 글이 아닌 말로 이루어진 서평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 방송이나 팟캐스트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책 소개도 서평에 포함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서평이 다양화, 다변화되고 있다.


하지만 형식은 다양화될지언정 서평의 핵심 역할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는 건 아니지 싶다. 독서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거나 책에 대한 균형 있는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독서를 가장하게 해주는 게 그 역할이라면 말이다. 다만 서평의 구성이나 주안점에는 변화가 있을 수 있다. 글로 된 서평이 어느 정도 체계와 일관성을 갖추어야 하는 것에 비하면 SNS나 말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서평은 그러한 요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구성방식에서도 선조적(순차적)이지 않고 병렬적인 방식이 채택될 수 있다. 책의 인용에 있어서도 훨씬 넓은 허용범위를 가질 수 있다.


그렇게 자유로운 방식 속에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책이 놓여 있는 맥락이다. 책이 놓여 있는 자리, 혹은 책들 둘러싼 맥락은 다양한 층위를 가진다. 저자에게서 그 책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 전작과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 다음 시대. 책이 발표된 시점이 오래전이라면, 그 시점에서 가졌던 의의와 현재적 의의를 구분해서 살펴볼 수 있겠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나온 다른 책들과의 연관성 속에 자리매김함으로써 책이 갖는 시의성도 부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주제. 전무후무한 책은 세상에 많지 않다. 대부분은 앞뒤의 책들과 연결돼 있으며 주제에 따라 계보를 형성한다. 흥미로운 주제의 책을 읽었다면 같은 주제를 다룬 책을 두세 권 더 떠올려보는 것도 좋겠다. 독자에게 유익한 정보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일 수 있지만 좋은 서평은 서평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 서평을 쓰는 일 자체에 대해 과도하게 흥분할 필요가 없으며 너무 많은 기대를 갖는 것도 좋지 않다. 멋진 문장보다는 간결하고 명료한 문장이 바람직하며 화려한 수사에 대한 고민도 자제하는 게 낫다. 예술적인 글을 쓰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읽을 만한 책을 감별하고 권장하는 게 서평의 주된 역할이라면 그것은 한두 사람의 몫으로 돌릴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독자라면 모두의 일이고 모두가 나서서 자기 몫을 거들어야 하는 일이다. 서평은 자발적인 품앗이에 가깝다.


서평쓰기에 대한 부담은 줄이는 대신에 더 자주 서평을 쓰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비평과 달리 서평은 그 질 못지 않게 양이 중요하다. 한편의 공들인 서평도 의미가 있겠지만 그 공을 나누어 여러 편의 서평을 작성하는 일이 더 권장할 만하다. 간혹 불멸의 가치를 갖는 일들이 있다지만 서평은 예외이며 ‘불멸의 서평’이란 말은 모순이다. 우리에겐 늘 읽어야 할 또 다른 책이 있다는 사실을 언제나 명심해야 한다. 서평은 독자로서 우리가 책의 바다에서 익사하지 않기 위해 벌이는 생존투쟁이다.

 

15. 0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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