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갑작스레 제기된 신경숙 작가의 표절 시비가 더 확산될 조짐이다. 어찌된 영문인지 오늘은 나한테까지 두 곳의 언론사에서 전화가 와서 간략하게라도 내 입장을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가운데 KBS 기자의 질문에 답한 내용은 이렇게 나갔다(http://news.kbs.co.kr/news/NewsView.do?SEARCH_NEWS_CODE=3097051&ref=A).

 

이현우 문학평론가는 “많은 작가와 작가 지망생이 롤모델이 되는 유명 작가나 그들의 작품을 베끼면서 습작을 한다”며 “신경숙 작가 역시 이런 방식으로 연습했던 만큼, 표절에 대해 둔감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습작과정에서 베끼기가 만연한 만큼, 신 작가뿐 아니라 문학계 전반적으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에 시비거리가 된 작품은 <감자 먹는 사람들>(창비, 2005)에 수록된 단편 '전설'과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이란 단편이다(이응준 작가의 표절 문제 제기는 http://www.huffingtonpost.kr/eungjun-lee/story_b_7583798.html?utm_hp_ref=tw). 미시마의 '우국'은 주우 세계문학전집에 김후란 번역으로 수록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이문열 세계문학산책2>(살림, 2003)에서만 읽어볼 수 있다(나는 수년 전에 미시마 유키오에 대해 강의하면서 '우국'을 읽었더랬지만 신경숙의 '전설'은 읽지 않아서 두 작품의 관계는 이번에 알게 됐다). 표절 논란을 불러온 대목은 이렇다.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밤뿐만 아니라 훈련을 마치고 흙먼지투성이의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와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코도 잘 응했다. 첫날밤을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을까 말까 할 때 벌써 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 중위도 그런 레이코의 변화를 기뻐하였다.’ (미시마 유키오)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여자의 청일한 아름다움 속으로 관능은 향기롭고 풍요롭게 배어들었다. 그 무르익음은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 속으로도 기름지게 스며들어 이젠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노래가 여자에게 빨려오는 듯했다. 여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남자였다.’ (신경숙)

누가 보더라도 베껴온 부분이고, 에둘러 말할 것도 없이 이런 행위를 가리켜서 표절이라고 부른다. 나는 이런 결과가 빚어진 게 작가가 산문집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롤모델이 되는 작품을 베껴쓰면서 오랜 기간 습작을 해온 탓이라고 생각했다. 정상 참작의 여지는 있지만(의도적인 표절이라면 좀더 교묘하게 했을 것이기에), 명백한 잘못이고 이에 대한 인정과 사과는 당연해 보였다. 하지만 내가 너무 순진하게 생각했다.  

 

인터뷰에 응했던 때만 하더라도 신경숙 작가의 반응이 나오지 않았었는데, 오후 늦게 보니 작가의 입장과 함께 창비의 입장이 나왔다. 예상과 전혀 달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조금 침묵하더라도, 나는 작가가 표절에 대해 사과하고(실수나 불찰을 이유로) 출판사에서는 해당 작품을 작품집에서 빼는 수순을 밟으리라고 짐작했는데, 내가 한국 문단을 전혀 몰랐다는 게 돼버렸다. 작가와 출판사의 대응은 예상 밖일 뿐더러 상식 밖이다. 어떤 입장인가.

신경숙 표절 의혹 제기에 창비 측과 함께 해명을 했다17일 신경숙은 출판사 창비에 이메일을 통해 "오래전 '금각사' 외엔 읽어본 적 없는 작가로 해당 작품('우국')은 알지 못한다. 이런 소란을 겪게 해 내 독자분들께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풍파를 함께 해왔듯이 나를 믿어주시길 바랄뿐이다"라고 밝혔다이어 신경숙은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일은 작가에겐 상처만 남는 일이라 대응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전했다이에 출판사 창비 측도 "표절로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다""일상적인 소재인데다 작품 전체를 좌우할 만큼 비중도 크지 않다"고 주장하며 논란을 일축하려 했다.(세계일보) 

나는 작가나 출판사가 오판, 내지 상식 이하의 판단을 했다고 생각한다. 우선 작가의 예기치 않은 반응에서 도출할 수 있는 것은 다음 둘 중 하나다. ('우국'을 읽어본 적이 없다고 하므로) (1)작가가 미시마의 작품을 베낀 것이 아니라 미시마를 베낀 누군가의 글을 다시 베꼈거나, (2) '전설'이란 작품을 아예 작가가 쓰지 않았거나(곧 그 자체가 다른 이의 글이거나). 어느 쪽이건 면책 사유는 되지 못한다(작가의 반응은 어쩌면 이런 표절이 신경숙 문학의 주변이 아니라 핵심이지 않을까라는 새로운 의혹을 낳는다. 이응준 작가가 먼저 제기한 의혹이지만). 더불어 출판사의 판단을 그대로 되돌려주자면, 이젠 이 정도 베끼기는 얼마든지 허용 가능하며, 신경숙 소설뿐 아니라 창비에서 나온 허다한 문학 작품도 다 그렇고 그런 작품이라는 뜻으로 이해해도 될는지?

 

메르스 사태에서 우리가 확인했듯이,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식 문화는 늘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일로 만들어버린다. 결국 '신경숙 사태'가 빚어진다. 도대체 작가나 출판사는 문학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15. 06. 17.

 

 

P.S. 과거에 표절을 '패스티쉬(혼성모방)'라고 우겨댄 몰염치한 사례도 갖고 있는 터라 이 참에 문단이나 출판계에서는 표절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하고 이에 대한 처리 관행도 새롭게 마련하는 게 좋겠다. 다들 알면서도 쉬쉬할 뿐 표절이 만연하다는 게 내부의 증언이고 보면 사태는 자못 심각하다. 문학의 몰락 이유를 다른 데서 찾을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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