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저자'를 골라놓는다. 역사학자, 정신분석가, 소설가, 3인이다. 먼저 <서울은 깊다>(돌베개, 2008)의 저자 전우용의 <우리 역사는 깊다>(푸른역사, 2015)가 2권으로 출간되었다. '역사학자 전우용의 한국 근대 읽기 3부작' 가운데 첫 권에 해당한다.

 

무의미한 듯한 '오늘'들의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역사'들을 되살려 '2015년 대한민국'을 곱씹는다. <서울은 깊다>, <현대인의 탄생> 등 여러 저서를 통해 말해지지 않은 역사를 소개하고 그것을 통해 현재를 성찰하는 데 힘써온 역사학자 전우용이 '역사학자 전우용의 한국 근대 읽기 3부작' 중 첫 번째인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바로 '오늘들의 역사'다. 저자는 귀성 풍습의 기원, 예방 접종의 시작, 전등 시대의 개막, 위생 관념의 확산, 대중교통 수단의 도입 등 주로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오늘'의 작은 사건들을 소개하고, 성찰의 재료로 삼을 만한 요소들에 대해 나름의 의견을 덧붙인다.

"주로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오늘'의 작은 사건들을 소개하고, 성찰의 재료로 삼을 만한 요소들에 대해 나름의 의견을 덧붙인" 책이라는 건데, 말 그대로 역사 속으로 깊숙이 들어간다는 느낌을 준다. 더불어 역사의 기억과 흔적이 지워진 오늘의 현실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신랄하다. 동대문시장의 기원에 대해 소개한 후에 저자는 이렇게 덧붙인다.

나는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새로 들어선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건물을 볼 때마다 속이 쓰리다. 그 장소의 역사적 맥락을 전혀 모르는 외국인에게, 그 역사에 대한 기초적 정보도 주지 않고 설계를 맡겨버린 당시 서울시정 담당자들의 무소견과 무지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 자국민도 모르는 '명품시장'의 역사를 다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 건물의 역사성을 담아내고, 동대문시장의 역사를 제대로만 알려도 시장의 국제적 가치를 더 끌어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역사와 문화의 흔적을 지우는 개발이 아니라 그 자취와 함께하는 개발이어야 '국격'이든 '도시 디자인의 품격'이든 살릴 수 있는 법이다. 그렇게 세계 여행을 많이 하면서도 아직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 그저 한심할 따름이다.

한심함도 오래 축적되면 우리의 문화가 될지 모른다.

 

 

라캉 정신분석 전공자로 활발한 임상과 강의 활동을 하고 있는 맹정현의 신작이 나왔다. <멜랑꼴리의 검은 마술>(책담, 2015)과 마찬가지로 서울정신분석포럼(SFP)의 강연을 엮은 <프로이트 패러다임>(위고, 2015)이다. '프로이트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가 부제.

무의식, 억압, 성욕,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환상, 나르시시즘, 죽음 충동 등 프로이트가 제시한 모든 정신분석 개념들은 완결된 개념이 아니라 그의 사유를 구성하는 패러다임의 구성 요소들이다. 따라서 프로이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념들에 현혹될 것이 아니라 프로이트의 저술을 구성하는 다양한 패러다임들, 그리고 그 패러다임 속 개념들의 네트워크를 이해해야 한다. 저자는 프로이트의 사유에 존재하는 ‘도약’과 ‘단절’의 지점에 주목하면서 프로이트를 네 개의 패러다임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프로이트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읽기'를 제안하는데, 읽고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보다 안 읽고도 이해하는 것이 최악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프로이트를 읽는다는 것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지점까지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읽으려는 독자에게 가이드가 되는 책이다.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작가 편혜영의 세번째 장편이 출간됐다. <선의 법칙>(문학동네, 2015).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의 수다한 수상 경력들과 십오 년간의 작품활동을 통해 더할나위없이 충분하게 자신의 소설세계를 보여준 작가 편혜영의 장편소설. 아버지의 죽음과 동생의 죽음을 시작으로 엇갈리듯 만나는 두 주인공의 생의 곡선을 추적하는 소설이다.

빼어난 단편을 발표한 젊은 작가들이 장편에도 안착할 것인가가 한때 문단의 관심사였는데(그건 지금도 새로 등단한 작가들에게 공통적이다. 대개 단편을 통해 데뷔하고서 장편으로 넘어가므로), 세번째 장편이라면 '편혜영 스타일'이란 게 어떤 것인지 가늠해볼 수 있겠다.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을까란 관심을 갖고서 읽어봐도 좋겠다. 

 

15. 06. 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