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한국 시인/소설가 3인이다. 먼저 마종기 시인의 신작 시집이 나왔다. <마흔두 개의 초록>(문학과지성사, 2015). 시집으로는 <하늘의 맨살>(문학과지성사, 2010)에 이어지는 것이니 5년만이다. 그 사이 루시드 폴과 나눈 서신 교환집 <아주 사적인 긴 만남>, <사이의 거리만큼, 그리운>(문학동네, 2015)이 출간됐었다. 시집 소개만 옮기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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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타국에서 의사의 삶을 살며 뼛속 깊이 새긴 외로움과 서러움, 그리고 조국과 모국어에 대한 그리움을 맑고 투명한 시들에 담아온 마종기 시인이 시력 55년을 맞아 새롭게 시집 <마흔두 개의 초록>을 출간했다. <하늘의 맨살>(문학과지성사, 2010) 이후 5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시집은 특히 어머니와 지인들을 떠나보내는 상실의 아픔을 시인 특유의 간절하고 지순한 목소리로 전하는 한편, 수십 년 만에 이룬 국적회복의 감격과 기쁨을 솔직하고 희망찬 시어들에 담고 있다.
절친이면서 늘 같이 떠올려서 그런지 황동규 시인의 신작도 생각난다. <사는 기쁨>(문학과지성사, 2013)이 가장 최근 시집이었으니 1-2년 더 기다려야 할 듯싶다. 돌이켜보면, 55년전만 하더라도 한국 시단의 가장 젊은 시인들이었다! 그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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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시인 김선우'로 기억되는 김선우의 또 다른 장편소설도 출간됐다. '요석 그리고 원효'를 부제로 단 <발원>(민음사, 2015)이다. 그러고 보니 가장 최근에 낸 책도 시집이 아니라 장편소설이었다. <물의 연인들>(민음사, 2012). 무얼 말하고자 한 소설인가.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는 시인이자 날카로운 산문가 그리고 통찰력 있는 소설가이기도 한 작가 김선우의 네 번째 장편소설. 원효와 요석의 사랑 그리고 당시 신라의 사회상과 원효의 사상을 공중제비를 도는 주령구처럼 균형감 있게 다루고 있다. 원효의 일대기는 후대의 필요에 따라 각색되거나 축소, 과장되었고 이 또한 그 수가 많지 않다. 때문에 원효의 삶은 우리에게 피상적 차원에 머물러 있다. 김선우는 시인 특유의 유려한 문장과 드라마틱한 이야기 전개로 역사 속 인물 원효를 우리 곁에 인간 원효로 탈바꿈시킨다. 또한 원효의 그림자처럼 남아 있는 요석 공주 또한 주변부 인물이 아닌, 운명에 맞서는 당당한 여성으로 그려 낸다.
역사소설이라기보다는 역사 판타지라고 해야 할 텐데(우리가 상상하는 신라) 어떤 동기가 원효와 요석 이야기로 작가를 이끌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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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접어들었지만 아직은 '젊은 작가' 축에 드는 손홍규의 산문집도 나왔다. <다정한 편견>(교유서가, 2015). 장편소설 <서울>(창비, 2014)이 지난해에 나왔으니 신작 장편이 나올 차례는 아니고, "2008년부터 3년 반 동안 일간지에 연재했던 칼럼 '손홍규의 로그인'을 묶은 산문집"이다. 신형철 평론가의 추천사를 참고한다.
긴 글은 실력으로, 짧은 글은 노력으로 씁니다. 짧은 글에는 실력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라, 짧은 글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그만큼 드물다는 뜻입니다. 이제는 남의 것에서도 대충 쓴 것은 알아보겠어서 감히 하는 말이지만, 이 책에 실린 손홍규 형의 글 중에 한두 시간 만에 뚝딱 쓰인 것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순수한 그가 미련할 정도로 최선을 다한 자취들 앞에서 저는 몇 번은 눈물겨웠습니다.
15. 05.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