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저자'를 골라놓는다. 오랜만에 국내 시인/작가 3인이다. 먼저 정현종 시인의 신작 시집이 출간됐다. <그림자에 불타다>(문학과지성사, 2015). 이미 <정현종 시전집1,2>(문학과지성사, 1999)이 두 권으로 묶인 터라 그 이후에 나오는 시집이란 게 좀 머쓱한 모양새지만(언제부턴가 문단에서는 '전집'이란 말을 특이하게 쓰고 있다) 등단 50주을 맞은 시인이 여전히 현역으로 시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 반갑다.
1965년 '현대문학'으로 데뷔한 정현종 시인이 등단 50주년을 맞는 2015년, 열번째 시집 <그림자에 불타다>를 상자했다. 정현종은 한국의 '재래적인 서정시의 전통을 혁신'하고 현대 시에 새로운 호흡과 육체를 만들어내온, 말 그대로 '한국 현대시가 이룬 가장 중요한 성취' 중 하나로 꼽히는 시인이다. 정현종은 지칠 줄 모르는 시적 열정으로 생동하는 언어, 새로운 시적 영역의 가능성을 무한 확장해왔다. 이번 시집은 시인의 최근작 58편을 묶었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그림자에 불타다>는 다양한 맥락과 의미를 가진 '그림자'들이 등장하여 시집의 분위기를 형성하고 시인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개인적으로는 시집보다 더 반가운 게 이번에 같이 나온 산문집 <두터운 삶을 향하여>(문학과지성사, 2015)인데, "<생명의 황홀> 이후 26년 만에 묶은 산문집"이어서다(내가 <생명의 황홀>을 읽은 지 26년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1987년부터 최근까지 시인이 쓴 삶과 시, 번역, 생태, 동료 문인 등에 대한 에세이, 강연록, 발표문 등이 담겼다."
생각건대 대학 1학년 때 읽은 시선집 <고통의 축제>로부터는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흐른 것인지! 몇달 전에 그맘때 읽은 시집 몇 권을 다시 구입했는데, 그중 하나가 <고통의 축제>였다. 새로 나온 시집, 산문집과 나란히 읽으면, 말 그대로 28년만의 재회가 되겠다. 그 또한 '고통의 축제'일까.
작가 박범신의 장편소설도 출간됐다. <주름>(한겨레출판, 2015). 신작은 아니고 개작이다. "1999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침묵의 집>을 두 번에 걸쳐 전면 개작하여 <주름>이란 제목으로 재출간했다. 이 소설은 50대 남자의 파멸과 또 다른 생성을 그린 작품으로, 죽음을 향해 가는 시간의 주름에 관한 치열한 기록인 동시에 극한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처음 나온 게 <침묵의 집>(문학동네, 1999)이었고 <주름>(랜덤하우스코리아, 2006)으로 한번 개작되었다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 작가가 그만큼 애착을 갖고 있다는 뜻이겠다(물론 만족스럽지 않았다는 뜻도 되겠고). 어찌됐든 장편소설로만 치면 <소금>(한겨레출판, 2013), <소소한 풍경>(자음과모음, 2014) 등 매년 한 권의 페이스를 유지해나가고 있다. 아직 '현역'이라는 확실한 증거다.
문단에서는 여전히 '젊은 작가'로 분류되는 이장욱의 새 소설집이 출간됐다(올해 6회를 맞은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한번도 빠지지 않은 기록을 갖고 있다). <기린이 아닌 모든 것>(문학과지성사, 2015). 소개는 더없이 단출한데, "이장욱 소설집. '절반 이상의 하루오',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식', '올드 맨 리버', '기린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 '우리 모두의 정귀보', '칠레의 세계', '어느 날 욕실에서', '이반 멘슈코프의 춤추는 방' 모두 여덟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소설집으로는 <고백의 제왕>(창비, 2010) 이후 5년만에 나온 것이니까 결코 다작은 아닌 셈. 희소한 만큼 아껴서 읽어야겠다...
15. 05.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