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봄이 짧아져 5월은 절반의 봄과 절반의 여름으로 쪼개졌지만 그 반토막으로라도 '싱그러운' 5월은 좋은 계절이다. 좋은 계절에 읽을 만한 책을 고른다.
1. 문학예술
5월은 '젊음'을 위한 계절이기도 한 만큼 문학 쪽으로는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고른다. 올해는 6회째를 맞았고 일곱 작가의 일곱 편의 단편이 뽑혔다. 대상작은 정지돈의 '건축이냐 혁명이냐'다. 작가와 함께 '후장사실주의자'를 자처하는 금정연의 해설을 먼저 읽었는데, 패기만만이다(대상작에 대해서 심사위원이었던 황종연 평론가는 "글로벌 히스토리에 대응되는 글로벌 만담이 이론상으로 가능하다면 '건축이냐 혁명이냐'는 그 실제의 선구 사례일지 모르겠다"고 평했다). 독서만으로도 젊은 기분을 내볼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겠다.
예술 분야에서는 디자인 책을 골랐다. 좀처럼 읽을 일이 없는 분야이지만 북디자인이라면 또 얘기가 다르다. 국내 현역 북디자이너들의 작업과 인터뷰를 소개한 <B컷: 북디자이너의 세번째 서랍>(달, 2015)이 계기인데(A컷보다 좋아 보이는 B컷도 상당수 눈에 띈다), 찾아보니 관련서가 생각보다는 많다. 내가 들어본 쪽으로는 필 베인스의 <펭귄 북디자인 1935-2005>(북노마드, 2010)과 <퍼핀 북디자인>(북노마드, 2013) 등을 같이 읽어봐도 좋겠다.
2. 인문학
미국사 분야의 책 두 종을 고른다. 올리버 스톤과 피터 커즈닉의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들녘, 2015)와 피터 안드레아스의 <밀수꾼의 나라 미국>(글항아리, 2015)이다. 둘다 미국사의 이면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공통적인데, 올리버 스톤의 책은 소개한 적이 있기에 안드레아스의 책 소개만 옮기면 이렇다.
지은이에 따르면, 미국은 영국에 식민 통치 시절을 당하던 시절부터 독립전쟁을 거쳐 산업혁명과 남북전쟁, 대호황 시대와 대공황 시대를 겪고, 오늘날 경제 초강대국이 되기까지 단 한 번도 불법 무역과 연관되지 않은 적이 없다. 미국의 역사를 구성하는 것은 불법 무역의 흐름과 행태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에 관한 이야기이고, 불법 무역을 통해 세계 여러 나라와 어떤 역학관계 및 외교관계를 맺어왔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3. 사회과학
정치학 분야의 책들로만 골랐다. 조슈아 컬랜칙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들녘, 2015)는 민주주의의 후퇴 혹은 퇴행을 다룬 책이다. '경제 위기, 중산층의 배반 그리고 권위주의의 귀환'이 부제. 민주주의가 망가지고 있는 건 우리만의 현실은 아니라는 걸 알게 해주는데, "미국외교협회(CFR)의 연구원인 저자는, ‘민주주의의 후퇴’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며, 우리가 손을 놓고 상황을 지켜보기만 한다면 이 퇴행적인 흐름을 되돌릴 수 없을 것이라 경고한다."
피터 스와이저의 <정치는 어떻게 속이는가>(글항아리, 2015)는 미국 의회에서 법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행정부에서는 이를 어떻게 집행하는가를 추적한 책이다. '갈취당하는 데 신물난 시대를 해부한다'란 부제는 그 내막이 어떤 것인지 어림하게 해준다. 물론 우리라고 별반 다르진 않겠다. 중고등학교의 사회 교과 부교재가 될 만하다.
대학의 정치학 교재가 될 만한 책은 로베르토 웅거의 묵직한 이론적 저작 <정치>(창비, 2015)다. '운명을 거스르는 이론'이 부제. 너무 묵직해서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지만 올해 나온 이 분야의 책으론 로널드 드워킨의 <정의론>(민음사, 2015)과 쌍벽을 이룰 만하다.
하버드대 로스쿨 종신교수 로베르토 M. 웅거의 핵심 저작인 <정치 : 운명을 거스르는 이론>이 한국에서 처음 선보인다. 웅거는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미국 법학계에서 1970년대 진보적인 법학운동을 주도한 인물로,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 등 사회사상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급진적인 사회이론을 전개한 석학이다. 나아가 그는 이론을 현실정치에서 구현할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해온 실천가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오바마의 하버드 시절 스승으로 알려져 있으며, 브라질 룰라 정부의 전략기획장관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정치>는 그러한 웅거 사회이론의 정수를 담은 책이다. 여기서 저자는 정치.경제.법 등 사회과학의 갖은 범주를 넘나들며 '사회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에 관한 구체적인 비전을 들려준다.
4. 과학
과학 분야의 책으론 대니얼 데닛의 <직관 펌프 생각을 열다>(동아시아, 2015)를 고른다. '대니얼 데닛의 77가지 생각도구'가 부제. 생각이란 게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떻게 생각을 잘할 수 있는지를 다룬 책. 만만치는 않지만 도전해볼 만하다. 데닛은 또 "파인만의 자서전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와 <남이야 뭐라 하건>은 생각을 잘하고 싶은 모든 사람의 필독서"라고 추천한다. 오랜만에 상기하게 되는데, 우리에게도 베스트셀러가 됐던 책이다.
덧붙여, 데닛과는 다른 방식으로 두뇌 계발을 다룬 과학 기자 댄 헐리의 <스마터>(와이즈베리, 2015)도 손에 들 만한 책. 다우어 드라이스마의 <마음의 혼란>(에코리브르, 2015)은 "정신의학과 신경학계 질환들의 시조명들을 추적한 일종의 역사서"로 '사람의 이름을 갖게 된 마음의 병들'이 부제다. 파킨슨병이나 알츠하이머병 등이 잘 알려진 예. 앤드루 졸리와 앤 마리 힐리의 <회복하는 힘>(김영사, 2015)은 생태계나 경제, 지역사회의 회복력을 다룬 책. 자메이카의 산호초에서 월스트리트까지 모든 시스템에 공통적인 회복력의 작동방식을 살핀다.
5. 책읽기/글쓰기
이달에는 두드러진 책들이 있어서 편하게 고를 수 있다. 기생충학자 서민의 '오염된 세상에 맞서는 독서 생존기' <집 나간 책>(인물과사상사, 2015)와 이명랑 작가의 현장 인터뷰 <작가의 글쓰기>(은행나무, 2015), 그리고 파워라이터 24인의 인터뷰, <나는 작가가 되기로 했다>(메디치, 2015) 등이다. 지난달의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생각의길, 2015)에 잇대어 읽어볼 수 있겠다.
15. 05. 03.
P.S. 달이 달인 만큼 어린이책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어서 '5월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옛날이야기 책을 고른다. 마침 <그리스 민담>(예담, 2015)이 출간됐다. 알고 보니 다시 나온 책이다.
그리스 민담이 우리말로 처음 소개된 것은 1985년, 그리스어 학자인 고 마은영 박사가 번역한 <그리스 민담>에 의해서였다. 이 책은 현재 절판된 상태다. 이에 마은영 박사의 부군이며, 한국외대 그리스학과 교수이기도 한 유재원 교수는 고인의 유작을 다듬고 당시 번역되지 않은 열 편 정도의 민담을 더 번역한 뒤 덧붙여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고 오래된 이야기, 그리스 민담>을 새로이 펴냈다.
그리스 신화보다도 더 오래된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읽어볼 수 있겠다. 더불어, <서정오의 우리 옛이야기 백가지>(현암사, 2015)도 개정판이 나왔다.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중 하나는 '이야기 나라'로의 초대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