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시사IN(398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가라타니 고진의 <철학의 기원>(도서출판b, 2015)을 읽고 적었다. <세계사의 구조>(도서출판b, 2012)에 대한 보유로 <자연과 인간>(도서출판b, 2013) 등과 함께 묶일 수 있는 책이다. 그러고 보니 가라타니의 책에 대해서는 매번 서평을 쓰게 되는군...

 

 

 

시사IN(15. 05 02)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숨은 이유

 

인문 독자라면 가라타니 고진의 책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국내에 이미 스무 권이 넘는 책이 출간되었고, 선집 시리즈인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만 하더라도 열세 권에 이르렀다. <철학의 기원>이 그 열세 번째 책이다. 가라타니를 사상가로서도 자임하게 해준 대표작은 <세계사의 구조>였다. 그의 이후 작업은 자신의 주저를 보충하고 심화하는 것인데, <철학의 기원>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사의 구조>에서 자세히 다룰 수 없었던 “그리스의 정치와 철학”에 대해 논한다. 주안점은 이오니아 자연철학의 의의를 새롭게 조명하고 그와 연관하여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재평가하는 것이다. 


흔히 서양철학의 기원을 소크라테스로 간주한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을 ‘자연철학자’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그들의 관심이 주로 자연에 두어졌기에 그 의미를 축소한 것이다. 가라타니는 이러한 통념을 정확하게 뒤집고자 한다. 그는 제자인 플라톤에 의해 소크라테스의 진의가 왜곡되었다고 보며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사상을 분리하고자 한다. 플라톤은 이오니아의 정신과 철학에 대한 비판을 ‘소크라테스’의 이름으로 수행했지만(플라톤 대화편의 주인공이 대부분 소크라테스다) 정작 소크라테스는 이오니아의 사상과 정치를 회복하려고 한 마지막 인물이었다는 게 가라타니의 핵심 주장이다.


이오니아란 소아시아 서부의 좁은 해안과 에게 해 동부의 섬들로 이루어진 지역을 가리키는  고대 지명으로 현재는 터키와 그리스의 일부다. 이오니아의 도시국가(폴리스) 시민들은 아테네와 그리스 본토에서 건너온 이민자들로 구성돼 있었는데, 이들은 씨족과 부족적인 전통에서 떨어져 있었기에 혈연적 유대나 구속에서 자유로웠다. 그래서 자신이 속할 도시를 자발적으로 선택했고, 도시는 이들 간의 사회계약을 통해 성립되었다. 그러면서 시민이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분화되지 않는 ‘무지배’ 형태가 탄생했는데, 이 무지배를 ‘이소노미아’라고 불렀다.


이소노미아는 구성원들의 실질적인 평등에 근거하는데, 이오니아에서 이 평등의 바탕은 시민들의 자유였다. 토지가 없는 자는 타인의 토지에서 일하는 대신에 다른 도시로 이주했기에 대토지소유나 부의 독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말하자면 ‘자유’가 ‘평등’을 강제했다. 이와는 달리 그리스 본토에서는 화폐경제 발달의 심각의 부의 불균형과 계급 대립을 가져왔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스파르타에서는 자유를 희생하는 대신에 교역을 폐지하여 경제적 평등을 강화하고자 했다. 반면에 아테네에서는 시장경제와 자유를 유지한 채 다수인 빈곤층이 소수의 부자로 하여금 부의 재분배를 강제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아테네의 데모크라시(민주정)이다. 우리가 전체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이분법에만 익숙한 것은 또 다른 정치형태로서 무지배(이소노미아)가 억압 또는 망각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가라타니는 철학의 기원으로서 이오니아의 철학이 이오니아의 정치(이소노미아)와 분리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자연철학이란 인간과 세계를 일관되게 ‘자연’으로 파악하려는 것이었고, 이것은 인간을 지배와 피지배 같은 사회적 관계를 배제하고 이해한다는 뜻이다. 가령 히포크라테스는 어떤 집을 방문하든지 자유인이냐 노예냐를 묻지 않고 의술을 행해야 한다고 말했고, 오늘날 이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포함되어 있다. 가라타니가 보기에 이러한 태도는 노예와 외국인을 경시하고 배제했던 아테네 데모크라시에서는 나올 수가 없다. 뒤집어 보면 ‘자연철학’이라고 부당하게 축소되었지만 이오니아의 자연학은 인간에 대한 탐구와 윤리적 물음까지 포함한 것이었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데모크라시에 위협으로 간주돼 사형을 선고를 받은 것은 그가 의식하진 않았더라도 이오니아의 이소노미아를 아테네에 다시금 복원하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게 가라타니의 재해석이다.

 

15. 0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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