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고른다. 벚꽃과 목련이 피는 계절이니 4월이다. 바쁘게 한달을 보냈다 싶었는데, 돌이켜보니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서 좀 힘들게(라기 보다는 불편하게) 보낸 듯싶다. 일이 전혀 줄지 않고 남아있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이달에는 형편이 좀 나아지길 기대한다.

 

 

1. 문학예술

 

문학 쪽으로는 단편집이 동시에 나온 로베르트 무질의 책들을 고른다. <특성없는 남자>가 완간되길 기다리고 있는 작가인데, 이번에 나온 건 <사랑의 완성>(북인더갭, 2015)와 <생전 유고/어리석음에 대하여>(워크룸프레스, 2015)다. 단편 <지빠귀>와 <생전의 유고>는 공통적으로 포함돼 있고, <사랑의 완성>에는 <세 여인>이 더 실려 있다. 문학과지성사에서 처음 번역돼 나왔지만 현재는 절판된 작품이다.

 

 

무질의 대표 장편으론 <특성 없는 남자1,2>(북인더갭, 2013)와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울력, 2001; 지만지, 2011)이 있다. <특성 없는 남자>는 3권이 근간으로 돼 있는데, 그로써 완간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영어본이 두 권인 걸 고려하면 4권까지 나와야 되는 것 같기도 한데, 아무려나 조만간 완간되기를 기대한다.

 

 

예술 쪽으론 현재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마크 로스코 책 두 권과 함께 사진책으로 비비안 마이어의 <나는 카메라다>(월북, 2015)를 고른다. 비비안 마이어가 누구인가?

일생을 보모와 가정부로 살아간 비비안 마이어는 40여 년간 거리로 나가 수십만 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은 채 생을 마감했다. 무려 하루에 필름 한 통씩 50년을 찍어야 하는 분량의 어마어마한 사진들. 그녀의 사진이 SNS를 타고 흐르며 전 세계인들과 언론의 열광을 받은 건 사후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임대료를 내지 못해 경매로 400달러에 거래된 창고의 네거티브 필름 상자들은 이제 감히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미국의 보물이 되었다.

이달 말에는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도 개봉되는 것으로 안다. 겸사겸사 4월에 만나볼 만하다.

 

 

2. 인문학

 

인문 분야의 철학서로는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을유문화사, 2015)를 고른다. 최근 번역 개정판이 나왔고, 쇼펜하우어의 <인생론> 읽기로, 이동용의 <지극히 인간적인 삶에 대하여>(동녘, 2015)도 출간됐다. 전작인 <쇼펜하우어, 돌이 별이 되는 철학>(동녘, 2014)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읽기'였다. 토마스 하디나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같은 쇼펜하우의 영향을 받은 작가들을 읽다 보니 자연스레 일독의 욕심을 갖게 된다(예전 세로읽기 번역판은 잘 읽게 되지 않았다). 이달에 다 읽지는 못하겠지만 일단은 시도해보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어야겠다.

 

 

역사 쪽으로는 동아시아사 책들을 고른다. 김시덕의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메디치미디어, 2015)는 '임진왜란부터 태평양전쟁까지 동아시아 오백년사'를 개관한 책이다. 오늘의 현실을 읽는 데도 유익한 시사를 던져주지 않을까 싶다. 김항의 <제국일본의 사상>(창비, 2015)은 “과연 제국일본은 청산되었는가”를 묻는다. 부제대로 '포스트 제국과 동아시아론의 새로운 지평을 위하여' 반드시 묻고 넘어가야 할 질문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국일본에 대해서 우리가 무얼 알고 또 모르는지 먼저 검토해볼 필요가 있겠다.

 

덧붙여 <동아시아 기억의 장>(삼인, 2015)는 "피에르 노라의 '기억의 장' 프로젝트를 '동아시아 관점'에서 풀어본 책"이다(피에르 노라의 작업은 <기억의 장소>라는 제목으로 5권이 소개되었다). "동아시아 국가 '사이'의 넘나듦의 문제, 제국과 식민지의 문제 등에 대해 고민하면서 역사를 '기억'의 차원에서 살펴본 작업이다." 역사학계의 최근 동향이 어떤 것인지도 살펴볼 수 있겠다.

 

 

3. 사회과학

 

사회과학 쪽에서는 일단 1주기를 앞두고 있는 세월호 관련서들을 고른다.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현실문화, 2015), <세월호를 기록한다>(미지북스, 2015), <금요일엔 돌아오렴>(창비, 2015) 등이다.

 

 

더불어, 우리의 정치문화와 선거, 그리고 국가를 되돌아보게 하는 책들을 골랐다. 주로 미국을 다룬 책들이긴 하지만 충분히 참고할 만하다.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와이즈베리, 2015), 리처드 솅크먼의 <우리는 왜 어리석은 투표를 하는가>(인물과사상사, 2015), 라이샌더 스푸너의 <국가는 강도다>(이책, 2015) 등이다.

 

 

4. 과학

 

자연과학 쪽은 좀 묵직한 책들이다. 에른스트 페터 피셔의 <과학한다는 것>(반니, 2015)은 "과학의 인간성과 예술성을 회복하기 위한 성찰 "로 과학자들이 먼저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은 책. 에드워드 슬링거랜드의 <과학과 인문학>(지호, 2015)은 중국사상 전공자가 왜 인지과학과 행동신경과학 공부를 하는지 알려주며, 인문학과 과학은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시범을 보인다. 원로 생물학자 이병훈 교수의 <유전자 전쟁의 현대사 산책>(사이언스북스, 2015)는 한 생물학자의 회고이면서 동시에 "사회 생물학과 진화 심리학이라는 젊은 기초 과학 분야가 우리 사회에 전파되고, 진화하고, 발전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5. 글쓰기

 

글쓰기 쪽으론 단연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생각의길, 2015)이 화제인데, 김영하의 <말하다>(문학동네, 2015), 장석주의 <글쓰기는 스타일이다>(중앙북스, 2015)까지 두루 살펴보면, 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대략 어림해볼 수 있겠다. 글을 쓰고 싶어하는 것, 더 좋은 글을 쓰고픈 욕심을 갖는 것, 일단은 그게 시작이다...

 

15. 04. 05.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카프카의 마지막 장편소설이자 미완성작 <성>을 고른다. 열린책들판이 새로 나와서 인데, 번역본으론 솔출판사의 전집판과 서울대출판부판이 품절된 상태라 펭귄클래식판과 범우사판까지 3파전 형세가 아닌가 싶다. 조만간 창비판도 가세할 것으로 아는데, 그 정도면 이 문제적인 작가의 수수께끼 같은 작품세계로 들어가는 '입장권'은 확보되는 셈이다. 새번역본들을 갖고서 나도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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