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먼저, 기다리던 책 가운데 하나였던 가라타니 고진의 <철학의 기원>(도서출판b, 2015)이 드디어 선을 보였다. <말과 활>에 연재된 걸 일부 따라 읽다가 단행본으로 읽어보려고 미뤄둔 터였다. <세계사의 구조>에 대한 '보유'의 하나로도 읽어달라는 게 저자의 주문인데, <자연과 인간>, <'세계사의 구조'를 읽는다>를 포함하면 세번째 보유다.

 

 

한편으로 <철학의 기원>은 가라타니의 소크라테스론으로 읽을 수 있는데, 한국어판 서문에 따르면 꽤 오래 벼르던 책이기도 하다. 이미 10대 중반에 소크라테스와 데카르트, 칸트가 그의 영웅들이었는데("자명하게 보이는 것을 근본적으로 의심한 사람들"이라는 이유에서다), 데카르트는 <탐구>에서, 그리고 칸트는 <트랜스크리틱>에서 다뤘지만(가라타니에 따르면 현대철학의 비판으로부터 그들을 구출하고자 했다) 소크라테스에 관해서는 <세계사의 구조>를 발표한 이후에야 비로소 발상을 얻게 되었다는 고백이다.  

 

 

아무려나 철학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계발적 관점을 제공하고 있기에 인문 독자라면 필독해볼 만하다.

 

 

한문학자 안대회 교수도 흥미로운 저작을 내놓았다. <담바고 문화사>(문학동네, 2015). 이제껏 이 주제를 다룬 책이 없었다는 게 새삼 놀라운데, 여하튼 이제는 갖게 됐다. 저자의 주저로는 시학서 <이십사시품>의 요체를 짚은 <궁극의 시학>(문학동네, 2013)의 뒤를 잇는 것으로 보아도 되겠다.

조선에 처음 담배가 들어왔을 때, 혹자는 이를 신선의 풀이라 했고, 어떤 이들은 이것이 부모를 멀리하게 하고 이성을 유혹하며 남녀노소와 상하 간에 유별해야 할 질서를 무너뜨리는 못된 물건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담배에 관한 많고 많은 논란을 떠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1610년 어름 처음 조선에 상륙한 이 풀을 사랑한 사람이 너무도 많았다는 점이다. 군왕 정조는 애민정신에서 이 풀이 만백성에게 미치길 바랐고, 기생의 손에는 어김없이 늘 담뱃대가 들려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담바고'라는 키워드 하나로 숨 가쁜 변화를 겪어내고 있던 조선시대부터 구한말까지의 단면을 생생하게 목도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담바고의 모든 것'을 담은 문화사다.

 

 

그리고 전직 신문기자이자 절필한 문필가 고종석도 신작을 펴냈다. 아니 정확하게는 신작이 아니라 선집이다. 소설을 가려서 묶은 <플루트의 골짜기>(알마, 2013)에 이어서 언어학에 관한 글들을 묶은 <언어의 무지개>(알마, 2015)가 출간됐다.

고종석 선집의 둘째 권으로서, 작가 고종석의 사유 세계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언어학 에세이를 엄선해 담았다. 고종석의 단행본 <감염된 언어> <말들의 풍경> <국어의 풍경들> <자유의 무늬> 중에서 선집의 위상에 걸맞은 글 20편을 가려 수록했다. 1998년부터 2007년에 이르는 약 10년의 기간 동안 생산해온 글들이다.

선집인 만큼 대부분의 글을 이미 읽었을 테지만 나로선 이번 기회에 재독해볼 생각이다. <감염된 언어>(개마고원, 1999/2007)는 특히 좋아했던 책이었던 만큼 물리지 않고 읽을 수 있을 듯싶다. 언어학 전공자들의 학술서들을 제외한다면, 아마도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가장 깊이 있는 생각들을 읽을 수 있다는 게 최대 장점이지 않을까 싶다. 더 깊이 들어간다면, 국내 저자의 책으론 어떤 책들이 있는지 떠오르지 않지만, 가령 소쉬르나 에밀 벤베니스트, 로만 야콥슨의 책들이 '깊이 읽기'의 대상이 될 만하다.

 

 

대부분 절판된 야콥슨의 책을 제외하면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나 벤베니스트의 <일반언어학의 여러 문제>가 전공서 범주에 드는 듯싶다. 인문학 전공자라면 필히 읽어볼 만한 공구서들이다...

 

15. 04.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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