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 전집판으로 나온 일본 작가 두 사람의 책을 '이주의 고전'으로 고른다. '탐미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나가이 가후(1879-1959)의 <강 동쪽의 기담>(문학동네, 2014)과 '서민문학'의 대표자 하야시 후미코(1903-1951, 창비식 표기로는 '하야시 후미꼬')의 <방랑기>(창비, 2015)다. 나가이 가후는 지나쳤었는데, 지난주에 에세이 <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정은문고, 2015)이 출간돼 기억을 더듬었다. '가후의 도쿄 산책기'다.

 

일본 군국주의의 뿌리 메이지시대에 태어난 나가이 가후는, 일본이 제국주의로 치달리는 가운데 차라리 군국주의를 등지고 터덜터덜 산책이나 하련다고 결심한다. 게다를 신고 도쿄 구석구석을 어슬렁어슬렁 둘러보며 가후가 즐긴 산책 코스는 결코 명소가 아니다. 근대화라는 기치아래 에도의 흔적을 무참히 지우는 작업이 한창이던 도쿄에 남은 나무와 잡초와 물과 석양과 산 그리고 가난한 서민의 삶이 펼쳐지는 골목이다.

<강 동쪽의 기담>은 가후의 대표 단편선인데, 소개에 따르면 "가후는 모리 오가이, 우에다 빈 등과 친밀하게 교유하며 문단의 지도적 위치에 있던 당대 최고의 문학가였고, 다니자키 준이치로를 문단의 총아로 끌어올리기도 했다. 근대 문명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했으며, 주로 화류계를 배경으로 사라져가는 에도의 정서를 묘사하는 작품들을 남겼다." 화류계를 다룬 '화류소설의 정수'로는 <묵동기담>(문예춘추사, 2010)도 번역돼 있다. 대략 세 작품 정도면 '나가이 가후 문학'을 어림해볼 수 있겠다.

 

 

하야시 후미코의 <방랑기>는 소화출판사판으로도 나와 있는 작가의 대표작. 소개에 따르면 당대의 베스트셀러였다.

제국주의 침략이 한창이던 1920년대 후반에 연재를 시작, 궁핍에 시달리던 평범한 사람들의 신산한 생활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대공황의 와중에도 60만부나 팔리는 기록적인 인기를 누렸다. 어릴 때부터 행상을 하는 부모를 따라 여러곳을 전전하고, 토오꾜오의 빈민가로 흘러들어 갖가지 잡일로 생계를 꾸리면서도 문학적 열망을 놓지 않았던 작가의 자전적 체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 어려운 시기를 견디던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샀다. 일본 근현대사에서도 가장 혼란스럽던 시기에 의지가지없이 여자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는 '나'는 "바람에 흔들리는 덧문처럼" 불안정하지만, 가난에도 사회적 속박에도 굴하지 않고 "후지 산이여! 너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는 여자가 홀로 여기 서 있다"라고 외치며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추구해나간다.

문단의 평가는 높지 않았으나 1980년대 후반부터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서민문학'이면서 '여성문학'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는 듯하다(강경애 같은 작가와 비교할 수 있을까?). 1920년대 일본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로도 의미가 있겠다...

 

15. 0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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