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책이나 저자를 고르려고 하다가 '이주의 발견'을 먼저 고른다. 알랭 쉬피오의 <법률적 인간의 출현>(글항아리, 2015)은 아무래도 따로 다루어야 할 것 같아서다. 부제는 '법의 인류학적 기능에 관한 시론'. 제목과 부제가 책의 내용을 어림하게 해주는데, 소위 법인류학 분야의 책이 국내에 희소하기 때문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저자는 국내 처음 소개되는 줄 알았더니 <필라델피아 정신: 시장 전체주의를 넘어 사회적 정의로>(한국노동연구원, 2012)가 먼저 나와 있었다(지금은 절판된 상태). 1949년생으로 보르도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2012년부터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로 재직중이라고 하니까 프랑스의 석학이다.
"쉬피오의 연구는 법학, 인류학, 사회학 등 인문사회과학 전반에 걸쳐 있으며, 특히 사회적 관계의 교의적 기초에 관한 분석을 중요한 주제로 삼고 있다"고 소개된다. 책소개도 간단하다.
인간사회의 삶은 과학적 연구의 결과에 따라 그 방향이 제시될 수 없다. 이에 서구에서는 법률에 교리적 힘을 실어줌으로써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성적 소통의 관계로 이어주었다. 인간이란 존재의 의미에 대한 믿음, 법률의 절대적 권위에 대한 믿음 혹은 뱉어진 말의 힘에 대한 믿음이 모두 법전에 담겨 있다.
법률적 인간의 출현 시기를 언제쯤으로 잡고 있는지도 언급이 없으니 직접 읽어보는 수밖에 없겠다. 사사키 아타루의 책 때문에 알게 된 르장드르도 같은 분야의 학자일 텐데, 더 번역되면 좋겠다.
특기할 만한 것은 책을 낸 출판사다. 글항아리에서는 매주 묵직한 인문사회 분야의 책을 두 권씩 펴내고 있다. 대단한 속도이자 열정이다. 연말까지는 100권이 넘어갈 듯싶은데, 단일 출판사로선 기록을 세우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이것도 피케티 효과일까?). 독자 입장에서는 한껏 응원을 보낸다...
15. 03.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