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겨울옷을 입고 다녀서 깜박했는데, 날짜로는 오늘부터가 봄이다. 명실상부한 봄이 오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테지만, 없는 봄기운이라도 빌려서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고른다.

 

 

1. 문학예술 

 

문학 쪽으로는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을 고른다. 한국문학사의 한 세기를 정리하는 의미도 있어서 매달 한권 정도씩 읽으면 연말까지 10권을 읽는 게 된다. 3월이면 시작하기 좋은 달이다(막 새학년이 되거나 새 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읽어도 좋겠다).

 

 

외국문학으로는 계절감에 맞을 거 같아서 제인 오스틴이 소설들을 골랐다. 마침 지난 연말부터 주요 작품들의 새번역본이 나왔기 때문인데, 이미 읽은 독자라면 다시 읽기에 도전해봐도 좋겠다. <노생거 사원>(을유문화사, 2015), <이성과 감성>(펭귄클래식, 2015), <오만과 편견>(현대문학, 2014) 등이다.

 

 

예술 분야의 책으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관장 필립 드 몬테벨로와 저명한 미술평론가 마틴 게이퍼드가 세계 각지에 있는 유명 미술관과 예술 작품을 찾아가 그들이 눈으로 보고 느낀 솔직한 감정을 담은 책", <예술이 되는 순간>(디자인하우스, 2015)과 재즈 거장의 평전으로 개정판이 다시 나온 존 스웨드의 <마일즈 데이비스>(그책, 2015), 찰리 채플린의 유일한 자전소설과 그 뒷이야기를 담은 <채플린의 풋라이트>(시공사, 2015) 등을 고른다. 미술, 음악, 영화에서 골고루 한권식 골랐다.

 

 

 

2. 인문학

 

역사 분야의 책으론 드라마 방영을 계기로 쏟아지다시피 한 <징비록> 관련서를 일단 골랐다. 김기택 시인이 옮긴 <징비록>(알마, 2015)과 배상렬의 <비열한 역사와의 결별 징비록>(추수밭, 2015), 그리고 이종수의 <류성룡, 7년의 전쟁>(생각정원, 2015) 등이다. 재작년의 시대정신이 '정도전'에 응축돼 있었다면, 지난해와 올해는 (<명량>)의 '이순신'과 (<징비록>)의 '유성룡'이다(조선은 건국하자마자 파국이로군). 나라의 명맥은 이어지게 됐지만 폐허 속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결코 과거의 고뇌로 여겨지지 않는다.

 

 

3월에는 새삼 마르크스와 조우해봐도 좋겠다. 이진경의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하였다>(꾸리에, 2015)를 계기로 삼거나 가이드로 삼아도, 혹은 대화 상대로 삼아도 좋겠다. 실제로 마르크스와 이진경의 가상대화로 구성돼 있다. 초심자라면 혹은 신입생이라면 '끝까지 읽자' 시리즈로 나온 오준호의 <공산당 선언, 마르크스의 안경을 빌려드립니다>(이매진, 2015)부터 읽는 게 나을지 모르겠다. <공산당 선언> 가이드북이다. <공산당 선언>을 하이네의 <독일, 어느 겨울동화>와 같이 읽는 판본도 나와 있으므로 기꺼이 챙겨놓으시길.

 

 

3. 사회과학 

 

최근 한국은 수명이 다한 월성 원전 1호기를 재가동하기로 결정했다. 안전기준을 강화해도 모자랄 판에 여전히 '희박한 확률'론에 기대 무사안일하게, 원전마피아의 안녕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일을 밀어붙인 셈이다(그 위험성에 대해서는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680302.html 참조). 후쿠시마 사고로부터 아무런 교훈도 얻어내지 못한 것이기에, 하는 수없이 또 복습하고 분노하는 수밖에 없다. <안전신화의 붕괴>(미세움, 2015), <관저의 100시간>(후마니타스, 2015), <원전 화이트 아웃>(오후세시, 2014) 등이 그 교훈을 다시 상기시켜주는 책들이다. 세계 수준의 안전불감증을 자랑하는 우리에겐 소용이 없는 책들일지도 모르겠지만...

 

 

사회학 분야의 책으론 한병철의 (한국에 소개되는) 다섯번째 책 <심리정치>(문학과지성사, 2015), 그리고 마크 주커버그의 추천으로 화제가 되기도 한 모이제스 나임의 <권력의 종말>(책읽는수요일, 2015), 저널리스트 두 명이 공저한 <제4의 혁명>(21세기북스, 2015) 등을 고른다. <제4의 혁명>의 부제는 '우리는 누구를 위한 국가에 살고 있는가'인데, <권력의 종말>과 마찬가지로 권력의 다극화, 다변화 양상을 전제로 한다.

빠르게 급변하는 스마트한 현대 사회의 변화에 맞게 정부가 변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발전이 없다는 것을 여러 사례를 통해 증명한다. 정보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이전의 민간기업들이 겪은 슬림화, 집중화, 조직 계측의 단순화를 통해 변신해야 한다. 또한 정부의 미래는 기존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과 상관없이 얼마나 올바른 정부이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이 역시 우리와는, 우리 정부와는 무관해 보이는 책이로군.

 

 

4. 과학

 

과학분야의 책으론 이번에 창간호가 나온 잡지 <스켑틱>(바다출판사, 2015)를 먼저 꼽게 된다. 먼저 잡지에 대한 소개가 필요하겠다.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지성인들을 위한 새로운 교양 과학 잡지 <스켑틱>이 드디어 한국에 소개된다. <스켑틱>은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의 저자이자 마이클 셔머에 의해 창간된 이후, 미국 사회에 합리적 회의주의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지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과학을 중심으로 심리학, 인류학, 통계학, 종교학 등 현대의 지식을 총망라하며 폭넓은 지성, 참신하고 논쟁적인 소재, 명쾌한 해설과 재기발랄한 문체로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스켑틱>은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에도 소개되어 현재 5만여 명의 구독자들과 함께하고 있다.

그런 잡지의 한국판이 나왔다는 것. 계간지로 나오는 듯싶은데, 좀더 합리적인 사회로 가기 위해서 국내에서도 독자층이 생기면 좋겠다. 거기에 추가해 일본 저자들이 쓴 책으로 '대멸종의 원인에서 블랙홀 관찰까지, 과학사의 12가지 미제'를 다룬 <과학의 미해결 문제들>(반니, 2015), 그리고 지난주에 소개한 팀 버케드의 <새의 감각>(에이도스, 2015) 등을 읽을 만한 책으로 꼽는다.

 

 

5. 글쓰기

 

글쓰기 분야에서는 여러 주제의 책을 모았다. 리사 크론의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웅진지식하우스, 2015)는 '사람의 뇌가 반응하는 12가지 스토리 법칙'을 다룬 책이고, 이번에 다시 나온 빌렘 플루서의 <글쓰기에 미래는 있는가>(엑스북스, 2015)는 디지털 시대 글쓰기의 향방을 묻는 책이며, 남형두의 <표절론>(현암사, 2015)는 '표절의 모든 것'을 일러주는 책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표절사전'이라고 생각하고 꽂아두면 되겠다.

 

15. 03. 01.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새번역본이 나온 김에 보들레의 <악의 꽃>을 고른다. 특히 아티초크판 <악의 꽃>에는 번역어 선택에 대한 역자의 상세한 해명이 제공되어 있어서 시번역 공부에도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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