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 건너뛴 '이주의 저자'를 골라놓는다. 국내 저자 3인인데, 각각 역사학자와 번역가, 그리고 문학평론가이다. 먼저 10권의 '해방일기'를 드디어 완간한 역사학자 김기협. 1945년 8월부터 48년 8월까지 3년의 기간, '해방공간'이라고도 불리는 이 시기를 꼼꼼하게 다룬 책으로 독서가 아니라 '경험'을 제공한다. 2011년 4월에 첫권이 나왔으니 만 4년의 여정이었다(다른 일에 손놓고 이 책들만 완독하는 데도 한달은 걸릴 법하다). 기록 이상의 가치는 어떤 것을 찾을 수 있을까.

 

'해방일기 시리즈'는 내용 면에서는 해방 공간의 한국 정치 지형을 '좌우 대립'이 아니라 중간파와 좌우 양극단의 갈등으로 파악하자는 '중극(中極) 대립'으로 학계의 주목을 끌었다. <해방일기 10권>에서 48년 5월 14일 북한 전력의 이남 공급 중단을 적대적 공생관계의 한 사례로 언급한 것처럼 저자는 '적대적 공생관계'로 맺어진 극좌와 극우가 함께 중도파를 억압하고 침식하고 봉쇄하던 상황과 근거를 밝혀낸 것이다.

어느덧 해방동이 세대가 70대가 되었다. 현대사의 원점을 다시 회고하고 되짚어보는 일은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의 경험을 추체험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역사적 인간'으로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재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줄 것이다.

 

 

<해방일기>에 뒤이어, 해방 이후의 현대사, 이후 세대의 현대사에 대해서는 고경태의 <대한국민 현대사>(푸른숲, 2013), 이근원의 <아빠의 현대사>(레디앙, 2013), 그리고 유시민의 <나의 한국현대사>(돌베개, 2014) 등을 더 참고할 수 있다.

 

 

이어서 인문서 독자라면 이름이 낯설지 않을 번역가 이종인. 올해 나온 번역서만 해도 4권에 이르지만, 단독서도 출간됐다. <살면서 마주한 고전>(책찌, 2015). '전문번역가 이종인이 추천하는 시대의 고전 360'이 부제. 신뢰할 만한 번역자의 고전 가이드북이라고 할까. "서양의 정치학 서적에서부터 현대 영미소설, 한국의 문학작품, 에도시대 하이쿠까지 지역과 시대를 망라한 작품을 두루 소개한 책이다. 어떤 책을 왜 읽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 본 도서는 고전에 대한 참신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같이 나온 책으로 <기독교 고전으로 인간을 말하다>(알에치코리아, 2015)도 소위 '기독교 고전'을 망라하고 있어서(단테의 <신곡>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독서욕을 부추기는 책이고, 채플린의 소설(!) <풋라이트>(시공사, 2015)도 꽤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이다. "사후 40년 만에 공개되는 채플린의 유일한 소설 <풋라이트>와 그것이 후기 걸작 <라임라이트>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복원해낸 기록적인 작품이다." 공저자로 이름이 올라가 있는 데이비드 로빈슨의 노고를 기억해둘 만하다.

 

 

주로 시비평쪽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비평가이자 '시민행성' 공동대표이기도 한 함돈균의 <사물의 철학>(세종서적, 2015)은 비평집이 아니라 에세이다. '질문으로 시작하여 사유로 깊어지는 인문학 수업'이란 부제가 붙었는데, 평범한 사물들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동료 평론가 신형철은 추천사에서 이렇게 평했다.

이 책에서 함돈균은 마치 처음인 듯 사물 하나하나를 다시 사용하면서 세계를 근원적으로 경험해보려 노력한다. 이런 책을 쓰는 데 응당 필요한 꼼꼼함과 기발함도 그는 갖고 있지만, 그보다 더 도드라지는 것은 과감함이며, 그것이 이 책의 개성을 이룬다. 과감한 사유는 고만고만한 동의를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어리둥절한 자극을 준다. 무뚝뚝하게 예리한, 함돈균다운 책이다. 

 

역시나 신형철의 추천사를 따르자면 장석주, 권혁웅, 로제 폴 드루아의 사물에 대한 책들과 함께 나란히 꽂아둘 만하다(신형철은 김선우 시인과 박영택 평론가의 책도 보탰다)...

 

15. 0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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