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질문은 아니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절반의 인류, 곧 남성이 나머지 절반에 대해서 한번쯤은 던졌을 법한 질문이니까. 크리스티안 자이델의 <지구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지식너머, 2015)을 펼쳐서 조금 읽어보다가 두 가지 사실을 발견했는데, 하나는 저자의 '여성 체험' 실험이 생애 처음으로 (추위 때문에) 밴드 스타킹을 구입하면서 우발적으로 떠올린 발상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책에 여성 분장 사진이 한 장도 실려 있지 않다는 것.

 

 

독어판 원서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독자에 대한 서비스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또 검색을 해봤다. 그리고 물론 손쉽게 찾았다.

 

 

여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이델이 보여주는 한 가지 방법은 여자-되기다. 여자처럼 입고 말하고 행동하다 보면, 여자다운 생각이 떠오를지 누가 알겠는가. 그리고 다른 한 가지 방법은 같은 제목의 영화 원작 소설인 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푸른숲, 2013)에서 남편이 아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떠올리는 생각.

마치 아이처럼, 나는 그녀의 두개골을 열고 머릿속을 이리저리 헤집으며 그녀의 생각들을 잡으려고 애쓰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에이미, 무슨 생각 하고 있어? 내가 우리의 결혼 생활 중에 제일 자주 했던 질문이다. 비록 대답해줄 수 있는 사람에게 소리 내어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나는 다음의 질문이 세상의 모든 결혼 위에 먹구름처럼 떠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 무슨 생각 하고 있어? 뭘 느끼고 있어? 당신은 누구지? 우리가 서로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 앞으로 무슨 짓을 하게 될까?

영화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데이비드 핀처의 <나를 찾아줘> 역시 그런 질문들과 함께 시작한다. "당신, 무슨 생각 하고 있어? 우리가 서로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라는 질문.

 

 

이런 질문을 속으로 던질 때 아내 에이미(로자먼드 파이크)의 정확한 응시가 마음에 든다(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 가운데 하나다). 초점이 없는 듯하면서 복잡한 심경과 사랑에 대한 갈망, 그리고 회의까지도 담은 듯한 시선이다(소설도 빨리 읽어야 하는데, 꽤 두껍다).

 

여장 남자라는 설정 때문에 떠올린 건 프랑수아 오종의 영화 <나의 사적인 여자친구>다. 원작은 루스 렌들의 단편 <나의 사적인 여자친구>(봄아필, 2015).

 

 

죽은 절친의 남편(데이빗)의 비밀이 복장도착자라는 것인데, 그는 여성처럼 옷을 입고 행동할 때 행복해 한다. 크리스티안 자이델과 만나서, 두 사람이 '여자로 산다는 것'을 주제로 대담을 나눠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책으로 돌아오면, <지구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은 제목과 달리 내용이나 편집이 썩 어필하는 책은 아니다. 어쩌면 "여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란 질문 자체가 별로 대단찮은 질문인지도 모른다. 여자들은 그런 질문이나 품고 있는 남자들이 오히려 딱해 보일지도 모를 일이므로...

 

15. 02. 19.

 

 

P.S. 여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남자들은 무슨 딴생각을 하는지 궁금한 독자라면 앨런과 바바라 피즈 부부가 쓴 책들이 유익할지도 모르겠다. 몸짓언어(보디 랭귀지) 전문가들인데, 이들은 남녀의 몸짓을 넘어 생각까지도 대충 알아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게 가능한 것은 물론 남자나 여자나 뻔하기 때문이다. 뻔하지 않은, 예외적인 남녀를 제외하면 대개 저자들의 사정권을 벗어나지 않는다. 뻔한 남자나 여자를 만날 때는 꽤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