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가 잘 안 돼 새벽에 잠을 설치고 늦잠을 잤더니 하루 일과가 늦어졌다. 주말의 서재 일로 먼저 '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우선 네이버 열린연단에서 사회자로서도 자주 얼굴을 비치는 문광훈 교수의 묵직한 책이 나왔다. <심미주의 선언>(김영사, 2015). 단독 저서로는 <사무사>(현암사, 2012)와 <가면들의 병기창>(한길사, 2014)에 이어지는 것인데, 제목이 시사하듯 저자가 가장 욕심을 낸 책으로 보인다('선언'이란 제목을 아무 데나 갖다 붙일 수는 없으므로).
하지만 부제는 뜻밖에도 '좋은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이다. 통상 심미주의는 유미주의, 탐미주의와 같이 떠올리게 되고, 이는 예술을 도덕이나 정치와 분리된 자족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심미적 경험을 '좋은 삶'을 산다는 윤리적 과제와 분리시키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좋은 삶의 전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심미적 경험은 어떻게 미와 추,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정의와 부정의를 분별하게 하는가? 시와 그림과 음악은 어떻게 인간의 삶을 더 진실하고 선하고 아름답게 만드는가? 문학, 역사, 철학, 예술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심미주의적 삶의 기술을 탐색, 개인과 공동체, 지식인 집단과 사회문화 전반의 심미적 각성을 촉발한 문제작.
곧바로 떠올리게 되는 건 저자가 사숙하는 김우창 선생의 '심미적 이성'론이다. 심미적 이성의 문광훈 버전이 '심미주의' 내지 '심미적인 것'이 아닐까 싶기에. 그런 점에서 보면, <사무사>도 그렇지만, 저자의 김우창과의 대화나 김우창론 연장선상에서 읽을 수 있을 듯싶다. <세 개의 동그라미>(한길사, 2008), <김우창의 인문주의>(한길사, 2006), <아도르노와 김우창의 예술문화론>(한길사, 2006) 등을 염두에 둔 것인데, <김우창의 인문주의>를 제외한 나머지 두 권은 절판된 상태라 도서관에서 대출해볼 수 있겠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논픽션 작가 제프 다이언의 책도 한권 더 나왔다. <베니스의 제프, 바라나시에서 죽다>(사흘, 2015). '제프 다이어의 모든 책'이라고 생각하고 나오는 책마다 긁어모으고 있으니 <베니스의 제프>도 예외는 아니다('작가들의 작가'라는 게 제프 다이어에 대한 평판인데, 그의 글이 와 닿는다면 자기 안의 '작가'가 반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되겠다). 이번엔 에세이가 아니라 소설이로군.
작가들이 사랑하는 작가, 제프 다이어 소설. '타임' 선정 올해의 10대 소설, '뉴요커', '가디언' 선정 올해의 책이다. 섹스, 예술, 마약, 바나나, 그리고 가슴 뭉클한 영적인 체념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행자와 순례자들의 성지 베니스와 바라나시에서, 에로틱한 사랑 이야기와 인생의 어쩔 수 없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대담하게 펼쳐진다.
<그러나 아름다움>(사흘, 2014)의 개정판까지 포함하면 다이어의 책은 다섯 차례 출간됐다. 출판사가 다변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올해도 두어 권은 더 나오지 않을까 싶다.
끝으로 <감각의 박물학>(작가정신, 2004)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저술가 다이앤 애커먼의 신작도 번역돼 나왔다. <새벽의 인문학>(반비, 2015). <천 개의 사랑>(살림, 2009)까지가 내가 기억하는 책인데, 그 사이에 <사랑의 백가지 이름>(뮤진트리, 2013)이 더 있었다.
<감각의 박물학>, <천 개의 사랑>, <뇌의 문화지도> 등의 책으로 잘 알려진 다이앤 애커먼은 이 책에서 탐미주의자이자 자연주의자이자 빼어난 이야기꾼으로서의 능력을 놀라울 정도로 집약해서 보여준다. 하루하루를 의미있게 살아가기 위해서 매 순간의 감각과 사고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과 내 몸과 내 몸이 일부를 이루고 있는 자연의 흐름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다양한 분야의 정보와 구체적인 묘사를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나아가 새벽에 대한 성찰은 필연적으로 내 삶과 내 삶을 둘러싼 시간에 대한 성찰과 이해로 이어진다.
찾아보니 <새벽의 인문학>은 2009년작으로 <사랑의 백가지 이름>(2011)보다 두 해 먼저 나온 책이다.
<사랑의 백가지 이름> 이후에도 세 권의 책을 더 펴낸 것으로 보아 꽤 부지런한 편에 속한다. 가장 최근작인 <인간의 시대>는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다...
15. 02. 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