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가장 애정하는 독문학 작가라면 단연 헤르만 헤세일 것이다(괴테와 토마스 만, 카프카 등이 경쟁 후보겠지만 '대중성'에 있어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덕분에 '온갖' 헤세의 책들이 나오는데(상대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헤세의 서평과 에세이 선집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김영사, 2015)도 그런 경우다. 단출하게 <헤세가 사랑한 책들>이란 제목이었다면 더 좋았겠다.
말 그대로 서평과 에세이들 가운데 추린 것인데, 이 갈래의 글들은 독어판 헤세 전집 전20권 가운데 무려 5권을 차지한다. 전체의 1/4인 셈이고 숫자로는 무려 3000여 편이다. 이 가운데 73편을 뽑았으니 고르는 것도 일이었겠다 싶다(그렇게 '헤세 프리미엄'을 업고 출간된 책으로 <헤세의 여행>이나 <헤세의 문장론>도 더 꼽아볼 수 있겠다). 소개는 이렇다.
20세기 가장 사랑받는 작가이자 평생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던 애서가 헤르만 헤세. 그가 쓴 3천여 편의 서평에서 가려 뽑은 가장 빼어난 73편의 글.스물한 살인 1898년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들>을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00년 스위스 일간지 「알게마이네 스위스 신문」에 처음으로 서평을 쓰기 시작했다. "시인이 아니면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아" 명문 마울브론 신학교에서 도망친 후, 서점에서 조수로 일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그는 서점 직원으로 얼마 되지 않는 임금을 받는 것 말고는 이런 문필작업의 고료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스물세 살인 1900년부터 죽음에 이른 1962년까지 평생에 걸친 헤세의 서평작업이 시작되었다. 이 책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은 그가 쓴 3천여 편의 서평과 에세이 가운데 가장 빼어난 글을 가려 뽑은 것이다.
헤세 같은 작가도 무지막지한 분량의 서평을 남겼다니 '서평계' 종사자로서 조금은 위안이 된다. 하릴없이 쓰는 글은 아닌 것이다. " J. D 샐린저, 카프카, 토마스 만 등 세계문학의 고전들부터 공자, 노자, 붓다, <우파니샤드>와 <바가바드기타> 등 동양의 걸작들에 이르기까지" 두루 다루고 있는 가운데, 개인적으로는 카프카에 대한 리뷰들이 눈에 띈다. 카프카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고 있어서이기도 한데, 일단 유작으로 <소송>(1925)이 출간되자마자 그 가치에 주목한 안목이 돋보여서다. 헤세의 서평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베를린의 슈미데 출판사에서 최근에 죽은 보헤미아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이 나왔다.
카프카는 1924년 6월에 결핵으로 사망하고 막스 브로트가 편집한 <소송>은 그 이듬해 출간된다. 헤세의 서평은 9월 9일자 '베를린 일간지'에 실린다. <소송>을 두고서 헤세는 "얼마나 이상하고 마음을 흥분시키는, 경이로운, 그야말로 기쁨을 주는 작품인가! 이 작가의 모든 작품이 그렇듯이 이것은 가장 섬세한 꿈의 실들로 직조한 것으로, 매우 순수한 기법을 동원하여 강력한 환상의 힘으로 만든 꿈 세계의 구조물이다"라고 평한다.
슈미데 출판사에서는 <소송>과 함께 <단식술사>와 다른 세 편의 단편을 묶어서 같이 출간한 모양인데, <단식술사>에 대한 헤세의 평가도 인상적이다(<단식광대>나 <단식 예술가>로도 번역되는 작품).
꿈같은 분위기와 대수(對數) 같은 정밀함이 결합된 <단식술사>는 카프카의 가장 아름답고 가장 감동적인 작품의 하나이다. 벌써 여러 해 전에 우리가 귀를 기울였던 저 걸작 <시골의사>와 <유형지에서> 이후로, <단식술사>는 꿈꾸는 사람이며 경건한 사람인 이 작가의 가장 내적이고 향기로운, 가장 진짜배기 작품이다. 이 작가는 도이치 언어의 감추어진 대가이자 왕이다.
이후에 문학사는 헤세의 평가대로 카프카의 자리를 정확히 그렇게 매김한다. 90년 전의 서평이지만 동시대의 글로 반갑게 읽을 수 있는 이유다...
15. 0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