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적어야 하는 페이퍼 거리는 많지만 간식을 먹는 김에(커피와 크래커) 간식용 페이퍼를 적기로 한다. 아주 가끔씩 보게 되는 그래픽 노블에 대해. 정확하게 그걸 주로 펴내는 두 출판사에 대해. 최근에 나온 제프 르미어의 <수중 용접공>(미메시스, 2015)과 어반 코믹스에서 엮은 <배트맨 앤솔로지>(세미콜론, 2014)가 계기인데, 두 출판사가 각각 '미메시스 그래픽노블'과 '세미콜론 배트맨 시리즈'를 펴내고 있다.
제목부터 뭔가 어필하는 <수중 용접공>은 미스터리 그래픽노블이라 한다. 이게 하위장르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소개는 이렇다.
제프 르미어의 미스터리 그래픽노블. 육체노동자의 성격 탐구와 흥미진진한 수수께끼라는 두 가지 소재를 결합시킨 <수중 용접공>은 아버지와 아들, 탄생과 죽음, 기억과 현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수면 아래 깊은 곳에 남몰래 묻어 두고 있는 보물에 관해 이야기하는 그래픽노블이다.
그래픽노블의 애독자는 아니라도 이 정도 소재와 이야기라면 독서의 동기로는 충분하다. 찾아보니 제프 르미어의 책으론 <에식스 카운티>(미메시스, 2011)도 번역돼 있는데, 저자가 캐나다 에식스 카운티 출신이라 한다. 1976년생.
캐나다 시골 마을인 에식스 카운티 사람들의 고독한 일상과 내면을 흑백 그림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올해 서른다섯인(지금은 마흔이 됐겠다) 제프 르미어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캐나다를 대표하는 만화가로 우뚝 섰다. 특히 만화로서는 이례적으로 캐나다 리즈에서 '2000년대 최고의 소설'로 선정될 정도로, 그 탄탄한 스토리와 구성을 인정받았다. <농장 이야기>(2008), <유령 이야기>(2008), <시골 간호사>(2009) 세 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세 편의 만화는 각각 단행본으로도 출판되어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이 정도면 대표작으로 꼽아야 할 듯싶다. 그래픽노블 작가의 지명도나 랭킹(?)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지만 캐나다의 대표 작가쯤은 되겠다.
그럼 <포르투갈>(미메시스, 2014)의 시릴 페드로사는 포르투갈 작가? 이름도 얼추 그래 보이지만, 1972년생의 프랑스 작가다. <세 개의 그림자>(미메시스, 2012)로 명성을 얻었는데, 자전적인 <포르투갈>에서는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자신이 포르투갈 이민자 가계 출신이다.
전작 <세 개의 그림자>라는 참신하고 감동적인 작품을 선보였던 작가 시릴 페드로사가 이번에는 <포르투갈>로 새로운 놀라움을 자아낸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삼대에 걸친 한 이민 가정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바로 ‘시몽’과 그 아버지 ‘장’, 그리고 시몽의 할아버지 ‘아벨’의 이야기이다. 일과 연애,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던 만화가 시몽은 리스본에서 열린 한 만화 행사를 통해 자신의 포르투갈 쪽 뿌리를 찾아 나간다. 등장인물들의 미묘한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해낸 작가 시릴 페드로사는 이 작품을 통해 매우 보편적인 문제 하나를 건드린다. 바로 자신의 기원에 대한 문제, 하나의 가족 혹은 한 국가에 대한 소속감의 문제이다.
아무튼 제프 르미어와 시릴 페드로사 두 작가의 작품을 일별해보는 것만으로도 그래픽노블의 현단계를 어림해볼 수 있겠다.
'배트맨 앤솔로지'를 검색하니까 영화 배트맨 시리즈의 박스세트까지 <배트맨 앤솔로지>로 같이 뜨는데, 세미콜론에서 나온 건 '탄생부터 현재까지, 배트맨의 역사를 만든 20편의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원저는 불어판. "지난 70여 년 동안 DC 코믹스에서 발행된 배트맨 원작 만화 가운데 배트맨 역사상 전환점이 되었거나 화제를 불러 모았던 작품 20편을 선정하고, 탄생부터 현재까지 배트맨의 역사를 연대기별로 살펴보는 해설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배트맨의 역사를 한 권에 담고 있기에 '배트맨 마니아라면 꼭 소장해야 할 최고의 컬렉션'이라지만 나처럼 '배트맨'이 읽기엔 너무 많다고 생각해온 독자들에게 더 유익한 책이 아닌가 싶다(세미콜론의 배트맨 시리즈만 해도 20권이 넘는다). 한권으로 정리해준다니까. 대신에 마크 화이트가 엮은 <배트맨과 철학>(그린비, 2013)과 같이 읽는 게 여러 모로 유익하겠다...
15. 0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