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고전'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상학>(길, 2014)을 고른다. 책은 두어 주 전에 나온 듯한데, 일단 첫인상은 '관상학까지?'라는 거였고, '이젠 끝인가?'라는 게 두번째 든 생각이었다. 두 가지 의문에 대해 몇 자 적는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아리스토텔레스와 관상학'이란 해설만으로도 답하기엔 충분하다.
사실 '만학의 제왕'이라는 소리까지 듣는 아리스토텔레스이기에 그가 쓰지 못할 분야의 책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관상학은 어쩐지 잘 연상되지 않았다. 아마 못 들어봐서 그런 것일 텐데, 역자의 해설을 참고하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관상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으로 알려져 있을 뿐 실제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학풍을 이어받은 똘똘한 '짝퉁 아리스토텔레스'가 기원전 3세기경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저작이란다. 이름을 빌려쓴 책인 셈인데, 그럼에도 '아리스토텔레스 저작 모음집'에는 포함돼 있는 모양이다. 이 모음집이 19세기 편집된 판본인데, 해제에 따르면 오늘날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냥 <아리스토텔레스에게로 돌려진 관상학>이다. 하지만 그런 해제/해설에도 불구하고 번역본은 '아리스토텔레스 지음'이라고 못박고 있어서, 그래도 되는 건지 싶다. 개봉해보고 나서야 '유사품'인 줄 알게 된다면, 실망할 독자들도 있지 않을까.
그럼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저작들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역자가 주제별로 정리해놓은 것을 보면(67쪽), 논리적 저작으로 <범주론>, <명제론>, <분석론 전서>, <분석론 후서>, <변증론>, <소피스트적 논박> 등이 있다. 이론철학적 저작으론 <자연학>, <형이상학>, <영혼론>, <생성소멸론>, <기상학>, <천체론> 등이 전해지고, 실천철학적 저술로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정치학>, <에우데모스 윤리학>, <대윤리학>이 남아 있다. 그리고 언어학적-철학적 저작으로 <수사학>과 <시학>이 있고, 생물학에 관련된 작품으로 <동물지>, <동물 부분론>, <동물 운동론>, <동물 생성론> 등 의외로 많다. 전체의 25퍼센트 가량이 '생물학' 저작이라고 하는데('생물학'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말이 아니다) 이에 대한 연구는 아직 초보단계라 한다.
내가 아는 상식으론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장 중요한 3대 저작이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정치학>, 그리고 <형이상학>이다. 거기에 <시학>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저작으로 포함시킬 수 있겠다. 그래서 <영혼에 관하여>나 <에우데모스 윤리학>까지 번역돼 나왔을 때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머지 저작들은 전공자가 아닌 다음에야 '보너스'에 해당한다고 생각해서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관상학>은 보너스에 더 얹어진 덤이다.
아무튼 짝퉁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상학> 때문에 관련서를 검색하다가 설혜심 교수의 <서양의 관상학 그 긴 그림자>(한길사, 2002)도 구입했다(곧 품절될 것 같은 책이다). 사실 19세기 초까지도 유럽에선 관상학이 유행해서 작가들이 인물들의 외모를 묘사할 때 많이 참고한 걸로 돼 있다. 러시아문학에서 이와 관련한 논문을 오래 전에 읽은 기억이 난다. 좀더 자세한 실상을 알고 싶어서 구입한 책. 더 찾아보니 정종진의 <한국 현대문학과 관상학>(태학사, 1997)이란 책도 나와 있다. 그리고 허영만의 만화 <꼴>을 감수했다는 관상학 '대가'의 책도 눈에 띈다. <신기원의 꼴 관상학>(위즈덤하우스, 2010). 직업적인 필요에서가 아니라면 그냥 재미삼아 한번 읽어봐도 좋겠다...
15. 01. 10.
P.S. 언제부턴가 서재에서 '목록보기'가 안된다. '펼쳐보기'로만 고정해놓은 것인지, 에러인지 모르겠다. 뭔가 불편한데, 이런 불편함에도 새해엔 적응해야 하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