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첫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골라놓는다. 직장인들이야 상관이 없지만 방학을 맞은 학생들에겐 독서하기에 좋은 달이다. 혹은 좋은 달이어야 한다. 실상도 그러한지는 모르겠지만...

 

 

1. 문학예술

 

문학 쪽에서는 합본판으로 다시 나온(그래서 값도 더 내려갔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까치, 2014)을 포함해 세 권을 골랐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표지에는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이란 문구가 붙어 있는데, 이 문구를 덧붙이려고 표지갈이를 한 건가 싶기도 하다(물론 세 권짜리보다 더 낫긴 하다). 한 인터뷰에선가 지젝은 이 책을 어린시절에 가장 인상적으로 읽을 책이라고 꼽기도 했다(다시 찾아보니 인터뷰가 아니라 칼럼에서였다. 가디언지에 실린 '내 인생을 바꾼 책' http://www.theguardian.com/commentisfree/2013/aug/12/agota-kristof-the-notebook-slavoj-zizek 참조). 생각해보니 지젝의 책들에도 실린 내용이다.

 

그리고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작가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알에이치코리아, 2015). 1965년작으로 시골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셰익스피어 전공의 문학교수의 삶을 산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의 일생을 그린다. 한국소설로는 젊은 작가 박솔뫼의 신작 장편 <도시의 시간>(민음사, 2014). "박솔뫼 소설에서 특징적인 것은 서사를 압도하는 개성적 문체와 그런 와중에도 놓치지 않는 사회적 의식이다. 이번 작품에서도 박솔뫼 문체의 매력과 사회문제에 대한 예민한 의식은 여전한 가운데, 친구 관계에 있는 네 인물 사이의 미묘한 감정 선을 따라 진행되는 서술의 힘, 그 사이사이 드러나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감각적 사유가 돋보인다"는 소개다.

 

 

예술 쪽은 영화 관련서로 세 권을 골랐다. 허문영 평론가의 <보이지 않는 영화>(강, 2014), 그리고 이혜정, 한기일의 <명화남녀>(생각정원, 2014), 한국영화감독조합에서 펴낸 <데뷔의 순간>(푸른숲, 2014) 등이다. <데뷔의 순간>은 "이준익, 박찬욱, 봉준호, 류승완, 최동훈, 변영주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17명의 영화감독이 들려주는 데뷔의 순간들"이다. 한국영화 팬들에겐 흥미로운 읽을 거리. <명화남녀>는 들어보진 못했지만 팟캐스트 '명화남녀'의 시즌1 방송을 재구성해 엮은 책이라고 한다('팟캐스트 책'은 앞으로 더 자주 보게 될 듯하다. '팟북'이라고 불러야 할까?). "영화가 친절하게 안내하는 미술의 세계, 그림이 향기롭게 더해주는 영화의 깊이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2. 인문학

 

인문학 책으론 역사분야의 묵직한 책들로 골랐다.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지만 농업이 주업인 사회에서는 토지(농토) 소유 문제가 사회구성체의 성격을 규정하는 핵심 사안이다. 실제로 농사를 짓는 농민(민중)이 바라는 건 '경자유전(耕者有田)'인데, 농경사회의 모든 개혁과 혁명의 목표는 이 원칙의 실현으로 모아진다. 유용태 교수가 엮은 학술논문모음집인 <동아시아의 농지개혁과 토지혁명>(서울대출판문화원, 2014)는 이런 전제하에 동아시아 국가들의 사례를 비교했다. "경자유전의 실행 방안에는 자본주의 공업화의 길을 닦은 경우(한국, 일본, 대만)로 지주의 농경지를 유상매수한 방식과 사회주의 공업화의 길을 닦은 경우(북한, 중국, 북베트남)로 지주의 모든 토지를 무상몰수한 방식이 있다." 각기 다른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비교해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다.

 

황보영조 교수의 <토지, 정치, 전쟁>(삼천리, 2014)는 '1930년대 에스파냐의 토지개혁'을 다룬 책이다. "1930년대 에스파냐에서 전개된 토지개혁을 역동적인 현실 정치 속에서 분석한 연구서이다. 사회경제는 기본적으로 정치 구조의 토대가 되지만 한편으로 이 시기 에스파냐에서는 특히 정치 활동을 통해 진보와 후퇴를 거듭했다. 토지개혁이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거나 기존 헌법을 과감하게 수정하는 형태로 진행되기도 하고 정부 형태의 변화와 더불어 나타나기도 했다. 공화국의 가장 큰 역사적 사명은 토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고, 토지개혁법을 만들고 시행하는 과정에서 끝내 프랑코 쿠데타와 내전으로 치닫게 되는 발단이 되었다." 동서양의 사례를 통해서 토지 문제의 보편성을 확인할 수 있겠다. 덧붙여 조너선 펜비의 <장제스 평전>(민음사, 2014)도 중국 현대사를 이해하는 데 긴히 도움이 될 만한 책.

 

 

철학 분야도 좀 하드한 책들로 골랐다. 현상학을 주제로 한 책들인데, 일본 학자 닛타 요시히로의 <현상학이란 무엇인가>(도서출판b, 2014)는 후설 후기 사상을 주로 다루고 있는 현상학 입문서이다. 일본에서는 기본서에 속한다고 하니까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가늠해볼 수 있겠다. 그리고 국내 학자들이 쓴 <프랑스 철학의 위대한 시절>(반비, 2014)은 "현상학의 흐름을 중심으로 전개된 프랑스 현대철학의 흐름을 깊고 넓게 다룬다. 책을 쓴 열한 명의 현상학 전문가들은 후설 현상학이 탄생한 1900년부터 한 세기에 걸쳐 프랑스 현상학자 열 명의 사상을 살펴본다." 단독 연구서로는 김태희의 <시간에 대한 현상학적 성찰>(필로소픽, 2014)도 관심도서 목록에 올려놓을 수 있겠다. 원로 철학자 소광희 교수의 <시간의 철학적 성찰>(문예출판사, 2001)과 비교해볼 수도 있겠고.

 

 

3. 사회과학

 

사회비평 분야의 책으로 박노자의 <비굴의 시대>(한겨레출판, 2014)와 이병민의 <당신의 영어는 왜 실패하는가?>(우리학교, 2014)를 고른다. <비굴의 시대>는 언급한 바 있고, <당신의 영어>는 '대한민국에서 영어를 배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파헤친 책. 한국사회에서 영어 스트레스는 개인적 스트레스일 뿐더러 사회적 증상이기도 한데, 그 해법은 무엇일지 저자와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다. <인간 없는 세상>(랜덤하우스, 2007)의 저자 앨런 와이즈먼의 신작 <인구 쇼크>(알에이치코리아, 2015)는 개인적인 기대작. 인구문제를 다룬 책들을 여럿 읽어왔기에 이 '완결판' 같은 책에 구미가 당긴다. "4.5일마다 100만 명씩이라는, 무서운 속도로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인류는 과연 건강한 미래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인류는 지속 가능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앨런 와이즈먼은 이러한 의문을 품고 2년 넘게 전 세계 20여 개 국가의 인구 문제 현장을 직접 탐사해 이 책을 썼다"고 하니까 더더욱.

 

 

4. 자연과학

 

자연과학 분야의 책은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 '인터스텔라'가 키워드. 영화에 자문역을 맡았던 물리학자 킵 손의 <인터스텔라의 과학>(까치, 2015)이 번역돼 나왔고, 그보다 앞서 <이종관 교수의 인터스텔라>(동아시아, 2014)도 선보였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나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만큼 화제를 모을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청소년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읽어주면 좋겠다. 항성간 여행이 언제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젊은 세대에게 기회가 있을 테니까.

 

 

 

5. 책과 전자책

 

책읽기/글쓰기 파트에서도 신간 가운데 세 권을 골랐다. 윤성근의 <책이 좀 많습니다>(이매진, 2014)는 "내 옆에 있고 우리 동네 사는 평범한 애서가 23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알라디너라면 자기 얘기이거나 바로 주변 사람들 얘기이지 않을까. '21세기 출판 키워드 연구'란 부제의 <책은 책이 아니다>(꿈꿀권리, 2014)는 출판학 교재다. "출판이라는 화두의 숲과 나무를 한꺼번에 조명할 수 있도록 입체적으로 구성한 21세기형 출판학 기본서이다. 출판의 과거, 현재, 미래와 인쇄출판과 전자출판까지 총망라했다." 출판에 관심이 있거나 편집자를 지망하는 이들이 읽어볼 만한 책. 책동네 주민이다 보니 나도 거기에 속한다. 세계 전자책 시장의 흐름을 다룬 류영호의 <세계 전자책 시장은 어떻게 움직이는가>(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14)도 업계 종사자들에겐 필독서가 되겠다.

 

15. 01. 04.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폴란드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헨릭 시엔키에비츠의 <쿠오 바디스>(민음사, 2005)를 고른다. 영화로도 유명하고 번역본도 여러 종 나와 있지만 폴란드 원전 번역판으로 다시 읽어볼 만하다).

 

네로 시대 말기인 AD 63~68년 로마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에는 역사적 플롯과 낭만적 플롯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몰락해 가는 구시대 로마의 세계관과 새롭게 부상하는 신흥 종교 사상인 기독교 사이의 팽팽한 갈등과 대립, 그리고 그 변화의 양상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사치와 향락으로 점철된 구(舊) 로마 문명을 대표하는 인물들과 이에 맞서 사랑과 자비, 고요한 신앙을 통해 새 세상을 꿈꾸며 기독교 사상을 전파하려고 애쓰는 인물들이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기독교가 고대 문화로부터 탈피하여 새로운 가치관으로 정립되어 가는 과정, 그리고 숱한 박해와 수난에도 불구하고 결국 인류의 보편적 종교로 자리 잡는 이유가 설득력 있게 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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