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눈 뜨고 처음 읽은 글이 (문자 메시지와 메일을 제외하면) 중앙일보에 실린 소설가 김훈의 '새해 특별 기고'다(http://joongang.joins.com/article/265/16832265.html?ctg=). 제주에 있는 선배가 새해 안부와 함께 읽어보라는 문자를 보내와서 찾아 읽은 글이다. 세월호 사건과 그 이후를 다루고 있어서 <눈먼 자들의 국가>(문학동네, 2014)를 바로 떠올리게 했다. 유민이의 유품으로 돌아온, 물에 젖은 6만원 얘기는 유민 아빠 김영오의 <못난 아빠>(북앤리브로, 2014)에 나온다고. 여러 대목에서 작가의 통탄에 공감하게 되는데, 특별히 개인적으로는 '골든타임'에 대한 지적을 반복하고 싶다. 그래서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2014년 4월 16일의 참사 이후로 사태를 바라보는 이 사회의 시각은 발작적인 분열을 일으키며 파탄되었다. 슬픔과 분노를 온전히 간직해서 미래를 지향하는 동력으로 가동시켜야 한다는 시각과 그 슬픔과 분노를 매우 퇴행적인 소모적인 것으로 여겨 혐오하는 시각이 교차했다. 거칠게 말하자면 4월, 5월까지는 전자의 시각이 우세했으나 6월 4일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적지 않은 재미를 보고, 이어 7월 30일 재·보선에서 여당이 압승하자, 후자의 시각이 주류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슬픔과 분노에 오랫동안 매달려 있는 것은 경제 살리기에 해롭다는 것이 그 혐오감의 주된 논리였다. 세월호에서 놓친 골든타임이 경제회복의 골든타임으로 살아났고 거기에 이념의 날라리들이 들러붙기 시작했다. 사실 4·16참사 이후에 경기는 장기 침체에 빠졌고, 정부의 부양책은 힘을 쓰지 못했다. 모두들 슬프고 분하면 경기는 침체되는 것이니까. 슬픔과 분노가 경기침체의 원인이라는 말도 결국은 동어반복이다. 어찌 헌 옷을 벗듯이, 헌신짝을 벗어버리듯이 마음의 일을 벗어 던질 수 있을 것인가. 돈 많고 권세 높은 자들이 큰 죄를 저질러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형량을 줄여서 선고하고, 형기 중에도 특별사면, 일반사면, 집행정지, 가석방, 병보석으로 풀어주는 무법천지를 나는 자유당 때부터 보아왔고 자유당은 지금도 특별사면 중이다. 죄형법정주의는 무너졌고 경제는 합리적이고 규범적인 토대를 상실했다.

 

재벌의 불법을 용인해야 경제가 살아나고, 정당한 슬픔과 분노를 벗어 던져야만 먹고살기 좋은 세상이 된다는 말은 시장의 논리도 아니고 분배의 정의도 아니다. 그것은 정치적인 속임수일 뿐이다. 법치주의가 살아 있어도 법이 밥을 먹여줄 리는 없고, 밥은 각자 알아서 벌어먹어야 하는 것인데, 법치주의를 포기해야만 밥을 벌어먹기가 수월해진다면 이 가엾은 중생들의 밥은 얼마나 굴욕적인 것인가.

"세월호에서 놓친 골든타임이 경제회복의 골든타임으로 살아났고"란 대목이다. 인명구조에서 쓰던 '골든타임'이 (다분히 의도적인) 용도전용 결과 경제회복이나 정치개혁 같은 말과 어울려 쓰이는 조어가 돼버렸다. 어느 사이엔가 관련 기사들에 자주 등장하는 '골든타임'이 그래서 내겐 가장 역겨운 시사용어가 되었다. '지금밖에 없는 이 기회를 놓치시겠습니까?'라고 미소를 지으며 겁박하는 게 '골드타임'론이다. 놓치면 후회할 거라는.('마지막 기회!'란 말은 홈쇼핑 전용어이기도 하군.)

 

<눈먼 자들의 국가>의 표제글에서 소설가 박민규가 잘 정의한 대로 세월호는 "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밝혀져야 하는 것은 이 사건과 사고의 진상이다. 혹은 그 둘 사이의 관계다. 김훈의 표현으론 이렇다. "세월호가 침몰한 사건과 그 모든 배후의 문제를 다 합쳐서 세월호 제1사태라고 한다면, 제1사태 직후부터 이 나라의 통치구조 전체가 보여준 붕괴와 파행은 세월호 제2사태다. 이것은 또 다른 난파선이다. 제1사태와 제2사태는 양태는 다르지만 뿌리가 같아서 어느 것이 원인이고 어느 것이 결과인지 구분할 수 없는데, 과거의 제2사태가 오늘의 제1사태로 터져 나오고, 오늘의 제2사태가 미래의 제1사태를 예비하고 있다."

 

세월호특별법에 따른 위원회가 사고/사건의 진상과 책임을 어디까지 밝혀낼 수 있을지 미지수이지만, 나는 그 조사결과가 박근혜정부의 마지막 기회, 곧 골든타임이라고 생각한다. 김훈의 바램은 이렇다.

우리는 새로 생기는 위원회를 앞세워서, 세월호를 끝까지 끌고 가야 한다. 위원회가 동어반복으로 사태를 설명하지 말고 그 배후의 일상화된 모든 악과 비리, 무능과 무지,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공생관계를 밝히는 거대한 사실적 벽화를 그려주기 바란다. 그리고 유민이의 젖은 6만원의 꿈에 보답해주기 바란다. 나는 사실 안에 정의가 내포되어 있다고 믿는다.

왠지 결과가 눈에 다 보이는 듯하지만, 그들에게도, 눈먼 자들에게도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국민지지 회복의 '골든타임'이 어떤 것인지 그들도 여실히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 2015년이 그렇게 밝았다...

 

15. 01.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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