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는 아니더라도 영화를 안 본 건 아닌데, 영화 얘기가 뜸했다. 연말 결산 기사를 보다가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했던(그래서 나도 볼 뻔했던) 안드레이 즈뱌긴체프의 <리바이어던>(2014)이 내겐 올해의 영화로 유력했겠다 싶어 몇 자 적는다. 올 칸느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하고 런던영화제에서는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이다(예고편은 http://www.youtube.com/watch?v=agMj9DNUuRo). 홍상우 교수의 소개를 일부 옮긴다.
2014년도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각본상을 받은 <리바이어던>은 개인의 이익과 국가 이익의 충돌을 소재로 하여 서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작품에 대한 해외 언론의 반응은 "러시아에서 날아온 새로운 걸작", "즈뱌긴체프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할까?", "타르코프스키의 충실한 신봉자로 간주되는 즈뱌긴체프는 질감이 풍부하고 긴장감이 넘치는 선굵은 강렬한 영화를 창조했다" 등과 같은 호평이었다.
이 작품의 주요 사건은 바렌츠 해 부근의 한 마을에서 일어나지만, 개인의 이익과 권력의 이익이 충돌하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항상 그렇듯이 이 양자의 갈등에서 누가 승자가 되는지는 분명하다. 영화에서 시장은 평범한 가정의 집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빼앗으려 한다. 이 집에서 주인공 니콜라이는 아내와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데 이 집을 빼앗으려는 시장은 이미 마피아 두목과 다를 바 없다. 그는 경찰, 법원 등 모든 권력 기관을 개인의 권력 유지를 위해 사용한다. 그는 지시에 순응하지 않는 자들을 능숙하게 처치한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칸에서 시사가 끝난 후 이 영화에 대한 평단의 반응에는 당혹감도 섞여 있었다. 그들은 즈뱌긴체프 감독이 이러한 급진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하리라고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러시아 포커스가 지적한 바에 의하면 이 영화에는 "뿌리 깊은 부정부패, 관리 앞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보통 사람, 불법적인 국가 사업 동업자들 사이에서 횡행하는 뒤봐주기,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축성에 나서는 교회 등 현대 러시아의 병폐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이다.(홍상우)
유가 하락으로 인한 루블화 약세로 러시아 경제가 어려운 처지에 있고, 내년 전망도 밝지 않다. 정치사회적으로 푸틴 시대에 별로 기대할 게 없다 싶었는데(사정은 우리도 별로 다르지 않다) 즈뱌긴체프의 러시아는 다소나마 위안이 된다. 현실을 구제하지는 못할지라도 증언은 될 터이니까.
1964년생인 즈뱌긴체프의 장편영화 데뷔작은 <리턴>(2003)이었다. 2003년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으로 2000년대 가장 중요한 러시아 영화의 한 편이다. 필모그래피를 보니 이후에 <추방>(2007), <엘레나>(2011), 그리고 <리바이어던>(2014)까지 네 편을 찍었다(국내에는 <추방>만이 '즈비야긴체프'란 감독 이름으로 출시돼 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나 알렉산드르 소쿠로프의 템포를 떠올리게 한다. 그가 계속 영화를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내친 김에 올해 나온 러시아 관련서 가운데, 두 권만 언급한다. 토머스 레밍턴의 <러시아 정치의 이해>(한울, 2014)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정치에 대한 개관이다. 교과서에 해당하는 책인데, 사실 너무 비싸서 구입은 보류하고 있지만 구성상으로 보자면 욕심을 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러시아의 역사와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한 폭넓은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일차적으로 이에 대한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준다. 또한 러시아 정치의 역사적 연원에서 시작해 소련 시기 정치체제의 유산, 푸틴과 메드베데프의 리더십, 행정부와 의회, 러시아 정당체제의 성격, 러시아의 정치문화, 러시아 시민사회와 이익집단, 러시아 경제의 변화와 현황, 러시아 사법체계의 속성, 러시아의 국제관계 등을 폭넓게 다룬다.
그리고 또 한권은 안나 폴릿콥스카야의 <러시안 다이어리>(이후, 2014). 절망적인 세계를 보여주지만 내가 사랑하는 러시아는 즈뱌긴체프와 폴릿콥스카야의 러시아다. 그들의 정신으로 지탱하는 러시아...
14. 12.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