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맞이용으로 오늘 주문한 책들 가운데는 새로 번역된 <안나 카레니나>가 포함돼 있다. 한국어본이 아니라 영어본이다. 올해는 무려 두 종의 새 번역본이 각각 옥스포드대와 예일대 출판부에서 출간됐다(둘다 11월에 나왔는데, <안나 카레니나> 번역사에서 올해는 기념비적인 해일 거라고 혼자 상상한다). 물론 상당히 많은 번역본이 이미 나와 있지만(최초의 영어본은 1901년에 나온 콘스탄스 가넷 여사의 번역판인 듯싶다). 하지만 예전 번역판들이 톨스토이의 문체를 잘 못 살리고 있다는 게 새 번역판 역자들의 판단이다.  

 

 

옥스포드판은 로자먼드 바틀렛(Rosamund Bartlett)이 옮겼고, 예일판은 매리언 슈워츠(Marian Schwartz)가 옮겼다. 둘다 베테랑 번역자이자 저술가로서 영어권 러시아문학 번역계의 중견으로 보인다. <안나 카레니나>만 놓고 보자면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셈이라고 할까. 예일판에는 원로 러시아문학자 게리 솔 모슨의 서문도 붙어 있는데, 모슨은 <우리시대의 안나 카레니나>(2007)의 저자로서 그간에 <안나 카레니나> 번역이 상당히 미흡하다고 지적해온 바 있기에, 그의 기대를 충족시킨 번역본은 과연 어떤 수준인지 궁금하다. 예일판만 구입하려다, 아마존에서 미리보기로 조금 읽은 대목에서는 옥스포드판도 가독성이 좋아서 같이 주문했다. 영어본으로도 <안나 카레니나>는 두어 종 갖고 있는데, 이제 그 수가 한국어판과 비슷하게 됐다(한국어판으로는 다섯 종의 번역본을 갖고 있다).

 

 

<안나 카레니나>는 거의 매학기 강의에서 다루게 되는데, 주로 이용하는 건 문학동네판이다(몇 차례 강의할 기회가 있었고, <한국 작가가 읽은 세계문학>(문학동네, 2013)에 해제도 쓴 인연이 있다). 안정감 있는 번역이긴 하지만 몇몇 고유명사 표기와 유명한 첫 문장 번역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로쟈의 러시아문학 강의>(현암사, 2014)에서 인용본으로 쓴 건 펭귄클래식판이다. 문학동네판이 원로 학자의 번역이라면 펭귄클래식판은 젊은 세대 연구자의 번역이다. 더 낫다, 못하다와는 무관하게 언어적 감각에서 그런 세대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단점은 이 번역판으로 읽은 독자가 많지 않아서 강의에서 쓰는 게 부담스럽다는 점이다.

 

 

민음사판도 많이 읽히는 번역인데, 좀 투박한 느낌을 준다. 세 번역본을 자세히 비교해본 건 아니지만(그럴 만한 시간적 여유를 갖기 힘들다) 아무래도 나로선 좀더 잘 읽히는 번역본을 선호하게 된다. 새로운 기준이 될 만한 영어판 두 종을 입수하게 되면 영어 번역에서 어떤 차이들이 있는지 비교해보는 김에, 한국어판에 대해서도 검토해보고 싶다(그럴 여유가 생길까?).

 

 

여하튼 묵직한 하드카바본의 두 영어본을 주문해놓고 잠시 기분을 내느라 페이퍼를 적었다. 리뷰 기사를 몇 개 읽어보다가 다시금 1935년작 <안나 카레니나>의 주연을 맡았던 그레타 가르보의 사진과 마주하게 됐는데, 개인적으로는 가장 맘에 드는 안나의 이미지다(러시아 영화에서도 만날 수 없는 안나다. 참고로 가르보는 스웨덴 출생이다). 그간에 안나 역을 맡았던 비비언 리나 재클린 비셋, 소피 마르소, 키이라 나이틀리도 비교가 안 된다. 실제 영화에서는 대부분의 장면에서 이 이미지를 살려내지 못해 유감스럽지만. 게다가 브론스키 역의 배우가 최악의 캐스팅이었고(키가 작고 머리가 벗겨진 브론스키!).

 

아무튼 겨울은 <안나 카레니나>를 포함해 러시아문학 작품과 만나기에 좋은 계절이다. 당신이 그런 기회를 놓치겠다면 하는 수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 인생을 저렴하게 만드는, 최소한 마흔 일곱 가지 방법을 알고 있으니까. 러시아문학을 읽지 않는 건 그 가운데 하나다...

 

14.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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