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군 2014-12-26  

로쟈 선생님.

선생님께서 12월 23일에 쓰신 ’종의 기원과 인간의 유래’란 글을 읽었습니다.

http://blog.aladin.co.kr/mramor/7297877


전 선생님께서 쓰신 이 글의 마지막 문단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 문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실 자연과학의 고전은 인문고전과는 달리, 한 문장 한 문장 꼼꼼히 따져가며 읽어야 하는 건 아니다. 전체적인 대의를 간취했다면, 나머지 대목에선 편안하게 책장을 넘겨도 좋은 것. 장서용의 의미가 크다는 것이다. 더 바란다면 다윈에 관한 이차문헌에서 인용할 만한 번역본이 나왔기를 기대한다.”


고전이든 최신이든 과학 논문의 모든 문장은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쓰입니다. 이런 근거들은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때론 곡해되기도 하죠. 그러기에 독자는 타당한 이유로 저자가 논지를 펼치는지 더 따져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왜 <종의 기원> 초판본이 다시 번역되었는지 전혀 이해 못 하시는 것 같습니다. 과학서의 초판본을 본다는 것은 전체적인 대의를 취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저자의 의도 또는 주장을 제일 잘 살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예로 ’종의 기원’ 초판본에는 ‘evolution’이라는 단어가 없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대신에 ’descent with modification’란 용어가 쓰였죠. 큰 틀에서는 두 용어 모두 같은 뜻이지만 ’descent with modification’를 사용해야만 했던 다윈의 의도는 오직 초판본을 읽어야만 알 수 있죠.

 
 
로쟈 2014-12-26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에 대한 생각이 다르신 거 같습니다. 제가 염두에 둔 건 언어 의존성입니다. 문학이 가장 의존적이라면 과학은 덜 그렇죠. 언어보다는 지시대상에 방점이 가 있으니까. 그래서 문학작품은 패러프레이즈하거나 요악할 때 많은 걸 잃게 됩니다. 반면에 철학은 그보단 손실이 좀 적고, 과학은 더 적고 하겠죠. 거꾸로 보자면 그게 제가 생각하는 과학 텍스트의 강점입니다. 사상이 언어로부터 독립해 있는 것. 얼마든지 패러프레이즈 할 수 있는 것. 만약 그런 패러프레이즈나 대체가 불가능하다고 하면 <종의 기원>을 하나의 작품으로 읽는 것입니다. 전체가 하나의 완결성을 가진. <일리아스>나 <파우스트> 같은(철학에서도 <존재와 시간> 같은 걸 그런 `작품`으로 보기도 하지요). 그렇게 보실 수도 있겠다 싶지만, 과학을 전공하시면서 그렇게 보신다면 의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