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아침에 '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성탄절과는 무관하게 최근에 나온 철학교양서 저자들을 골랐다. 먼저 플라톤 역주서로 유명한 박종현 선생의 책이 출간됐다. 석학연속강좌 시리즈의 하나로 나온 <적도(適度) 또는 중용의 사상>(아카넷, 2014). 학술적 업적은 플라톤 역주서에 집중돼 있어서 단독 저작은 드문 편이다. 절판된 <희랍 사상의 이해>(1983)를 제외하면 <헬라스 사상의 심층>(서광사, 2001)이 가장 최근 것이다. 가장 최근에 나온 역주서는 <프로타고라스/라케스/메논>(서광사, 2010)이다. 저자는 헬라스(고대 희랍) 최고의 덕이 '적도' 곧 '알맞은 정도'를 지키는 것이었다고 본다.

 

평생 플라톤을 연구한 노교수가 꼽은 헬라스 사상의 정수. 저자는 플라톤철학, 나아가 그리스철학의 정수가 “그 어떤 것도 지나치지 않게”, 즉 ‘적도’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플라톤이 <국가> 등의 여러 대화편을 통해 집요하게 천착하는 것은 ‘덕’이다. 대화편 <국가>는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플라톤의 구상일 텐데, 실상 대화편의 내용은 사람들의 ‘생활방식’ 또는 ‘삶의 방식’이다. 이런 입장에서 접근한 저자는 플라톤의 덕은 이데아로 대표되는 형이상학적인 그 무엇이라기보다 제몫 이상을 챙기는 과욕을 버리고 ‘알맞은 정도’를 지키는, 실질적인 덕의 실현이라고 보았다.

중용의 덕이 아리스토텔레스의 핵심 사상이란 건 상식에 속한다. 저자는 그것을 헬라스사상 일반의 확장하고 있는 듯한데, '중용'이란 역어가 'to metrion'의 번역으로는 미덥지 않다는 생각에서 새로 '적도'라는 용어를 제시한다. 하지만 흔히 적도란 말은 '적도(赤道)'를 떠올리게 하기에 통용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학계에서는 어떤지 궁금하다. 아무튼 책은 플라톤의 여러 대화편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두 저작(<니코마코스의 윤리학>과 <정치학>)에 대한 해설로도 읽을 수 있겠다.

 

 

주로 독일 철학자 악셀 호네트의 인정투쟁론을 번역, 소개해온 문성훈 교수가 인정이론을 사회분석에 적용해본 <인정의 시대>(사월의책, 2014)를 펴냈다. 저서로는 <미셸 푸코의 비판적 존재론>(길, 2010)에 뒤이은 책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를 잇는 ‘인정이론’의 창시자 악셀 호네트의 제자인 문성훈 교수는 오랫동안 인정이론과 현대사회의 인정관계에 관해 연구해왔다. 이 책 <인정의 시대>는 오랜 기간의 연구 성과를 한데 종합한 결과물인 동시에 신자유주의적 변화가 불러온 사회적 양극화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사회관계가 무엇인지를 밝히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특히 저자는 한국을 비롯한 현대 사회를 인정관계 구조변화라는 새로운 틀로 분석하고 이에 따라 새로운 진보의 비전을 제시한다. 

'사회적 갈등의 도덕적 형식론'이란 부제를 가진 <인정투쟁>(사월의책, 2011)과 같이 읽어도 좋겠고, 그 입문서로 읽어도 좋겠다. 저자가 인정이론의 핵심 내용을 책의 서두에서 간추려놓고 있다.

 

 

<멜랑콜리 미학>(문학동네, 2010)의 저자 김동규 박사도 후속작으로 <멜랑콜리아>(문학동네, 2014)를 펴냈다(번역서까지 포함하면 <모든 것은 빛났다>(사월의책, 2013)에 이어지는 책이다). 부제는 '서양문화의 근원적 파토스'.

이번 책 <멜랑콜리아>는 <멜랑콜리 미학>의 후속편으로서, 멜랑콜리 담론을 학문적으로 집대성한 저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멜랑콜리를 서양문화의 특이성으로 규정하고, 그것의 한계 및 한국적 변용 과정을 고찰한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은, 첫째, 지금까지 진행된 서양의 ‘멜랑콜리’ 담론을 철학적으로 재구성하고, 둘째, 멜랑콜리라는 코드로 읽힌 서양문화의 기본 얼개와 그 한계를 보여주며, 셋째, 멜랑콜리한 서양문화를 우리가 어떻게 수용하고 변용했는지를 성찰하는 것이다. 특히 서양 멜랑콜리의 한계와 그 한국적 변용에 대한 논의에서는 박동환, 김상환, 김상봉 같은 우리 철학자와 한용운, 이성복, 기형도, 진은영 같은 우리 시인들이 주요한 텍스트로 다루어진다.

요컨데 멜랑콜리는 '서양문화의 근원적 파토스'이기에, 우리로선 '수입품'이며 그 수용 과정에서 변용이 일어났다는 게 기본 착상으로보인다. 거기서 더 나아가 저자는 '멜랑콜리 4체론'도 주장한다. 소개에 따르면, 저자는 "고대의학의 4체액설에 빗대 서양철학사를 ‘멜랑콜리 4체론’으로 새롭게 규정한다. 여기서 단일한 체질의 네 가지 양상을 뜻하는 4체란 곧 “실체實體, 일체一體, 주체主體, 매체媒體”다. 서양철학은 단일한 멜랑콜리 체질을 가지고 있으며, 4체란 그 체질의 네 가지 역사적 양상이라고 저자는 밝힌다." '멜라콜리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모아놓았다고 할까. 멜랑콜리에 친숙한 독자라면 일독해볼 만하다...

 

14.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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