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사진가이자 르포르타주 작가 이상엽의 사진책 <변경지도>(현암사, 2014)가 출간됐다. '2008~ 2014 변경을 사는 이 땅과 사람의 기록'이 부제. "2008년부터 최근까지 대한민국의 지리적 변경인 DMZ, 서해 5도, 새만금, 제주 강정 등과 정치· 사회적 변방인 4대강 등의 재개발 지역, 시위 현장, 그리고 밀양, 진도 팽목항 등 자본과 욕망의 경계를 수차례 답사· 취재한 여정의 결산을 담은, 조세희의 <침묵의 뿌리> 이후 30년 만에 반갑게 만나는 진진한 포토 르포르타주다."



사진가로서의 성찰을 담은 <사진가로 사는 법>(이매진, 2010)과 <최후의 언어>(북멘토, 2014) 이후에 펴낸 저작이어서 그간의 작업에 대한 중간결산의 의미도 갖는 것처럼 보인다. 의당 저자의 사진론도 포함돼 있는데, '타인의 고통 앞에서' 같은 글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시작한다.
내가 처음 사진을 찍던 무렵인 1990년대 초반은 민주와 독재 중간 어디쯤이었다. 이런 시대에 사진을 찍던 자들은 '사회적 책무'를 회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모두들 아스팔트를 스튜디오 삼아 작업했다. 낮에는 방독면을 챙겨 돌과 화염병이 난무하는 거리에서 사진을 찍었고, 밤이면 암실에서 필름을 현상하며 사진사 책을 읽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회 사진가로 분류된 자들을 제외한다면 아마 사진 역사상 가장 적극적으로 사회변혁을 꾀했던 이는 루이스 하인(1874-1940)이었을 것이다.



루이스 하인이란 이름이 입에 익어서 찾아봤지만 국내에는 출간된 사진집이 없다(일부 사진 관련서에서만 언급이 된다). 어떤 작업을 했던가.
사회학자였던 루이스 하인은 대학에서 강의할 때 필요한 교재를 만들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뉴욕 항 앞에 있는 앨리스 섬으로 들어오는 이민자들의 초라한 모습에서부터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건설하는 위험천만한 노동자들의 모습까지 그의 관심은 도시의 최하층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이중에서도 루이스 하인의 대표작은 노동하는 아동들을 찍은 사진이다. 석탄을 캐는 광산에서, 실을 뽑는 방직공장에서, 그는 셔터를 눌렀다. 당시 뉴욕 주민들에게 그것이 일상이었다 해도 그것은 고쳐야 할 사회적 문제였고 변화해야 할 시대였다. 결국 그의 사진은 미 의회에서 아동노동금지법으로 만들게 하는 근거가 되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건설하는 위험천만한 노동자들의 모습'이란 말에서 떠오르는 사진, 아하, 그게 바로 루이스 하인의 작품이었다. 언젠가 인상적으로 보고 루이스 하인이란 이름을 몇번 중얼거려 보았을 터였다. 바로 아래 사진이다.

도대체 어떻게 찍었으며, 사진에 찍힌 노동자들은 어떤 상태에 있는 건지 궁금하면서도 놀라게 하는 사진. 최근에 본 영화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에서도 이 사진을 오마주한 장면이 들어 있다(물론 영화에서는 컴퓨터 그래픽이나 특수효과를 이용했을 터이다). 르포르타주 사진작가의 작업이 어떤 것이며 사진의 사회적 책무가 무엇인지 단 한 컷으로 웅변해주는 듯싶다. 아동 노동자들에대한 사진도 마찬가지다.

천진한 아이들의 표정과 고된 노동의 흔적을 여실히 보여주는 그들의 옷차림이 대비된다. <변경 지도>에서 작가가 담고자 한 우리의 현실도 이와 다르지 않다. 조국 교수의 추천사에 따르면, "이 책은 탐욕과 폭력의 체제가 유린한 사람과 자연의 모습에 대한 이상엽의 명징한 보고서다." 이 '보고서'를 '올해의 사진책'으로 꼽아두고 싶다...
14. 1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