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저자'는 오래만에 한국 작가 3인으로 골랐다. 중견작가들이 나란히 장편소설을 펴냈기 때문. 먼저 김인숙의 <모든 빛깔들의 밤>(문학동네, 2014). 장편으로는 <소현>(자음과모음, 2010)과 <미칠 수 있겠니>(한겨레출판, 2011) 이후 오랜만에 나온 작품이다(3년 정도의 터울이라면 과작은 아니지만).

 

기차가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한다. 그 안에는 희중의 아내 조안과 그들의 어린아이가 타고 있었다. 조안은 기차에서 아이를 살리고자 창밖으로 던졌으나, 바로 그 판단 때문에 아이가 죽고 그녀 혼자만 살아남는다. 희중은 소중한 존재를 모두 잃을 뻔했지만, 사랑하는 아내가 살아 돌아왔기에 묵묵히 그녀를 돌본다. 조안은 사고의 충격과 상실의 슬픔으로 심인성 기억상실증에 빠지고 자신이 아이를 죽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대해 잊는다. 이제 극심한 비통함은 오로지 희중의 몫으로 남는다...

'상실을 둘러싼 비극과 미스터리'를 담은 작품이라고.

 

 

활발한 행보를 보여주는 권여선 작가도 새 장편소설을 펴냈다(2004년에 나왔던 <처녀치마>도 이번에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토우의 집>(자음과모음, 2014). 토우란 '진흙소'를 가리킨다. 어떤 내용인가.

소설 <토우의 집>의 주 배경인 '삼벌레고개'는 삼악산의 남쪽을 복개하면서 산복도로를 만들고, 그 시멘트도로 주변으로 지어진 마을과 그 골목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제집 사는 사람, 전세 사는 사람, 월세 사는 사람'들이 모인 마을, 주인공 '안 원'에게는 언니 '영'과 동생 '희'가 있다. 이 세 자매는 주인집에 세들어 살고 있으며, 주인집 아들 '은철'이와 마을의 비밀을 조사하는 스파이가 되기로 한다. 하지만 원이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사라지고 '감옥에 갇혔다는' 소문이 무성히 돌았으며, 아버지는 세 아이들의 이름처럼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인혁당 사건'을 연상케 하는 이 소설은 '토우가 되어 묻힌' 사람들의 자리, '토우의 집'이다.

작가의 말에서 권여선은 "고통 앞에서 내 언어는 늘 실패하고 정지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 어린 고통이 세상의 커다란 고통의 품에 안기는 그 순간의 온기를 위해 이제껏 글을 써왔다는 걸."이라고 적었다.

 

 

원숙한 나이에 접어든 중견작가 최인석의 신작은 <강철무지개>(한겨레출판, 2014)다. 제목은 물론 이육사의 시 '절정'에서 가져온 것이다.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20대 이상의 활달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저자의 새로운 컨셉은 100년 후의 미래상을 그린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첨예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견고한 작품 세계를 축적해온 중견작가 최인석의 열두 번째 장편소설. SS 울트라마켓의 계산원 '지니(차지연)'와 서울클라우드익스프레스의 화물 배달기사 '제임스(윤재선)', 세상을 바닥부터 경험하며 분노와 복수로 살아온 '멜라니(안영희)'와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간호사 '아이리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2105년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기계의 연장이 되어 쳇바퀴를 돌듯 반복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누군가의 삶을 진술하는 동시에, 언제든 해고로 몰릴 수 있는 불안정한 고용 현실, 편리를 가장한 '감시' 기술과 체제의 발전, 대체 에너지를 둘러싼 기업의 경쟁 등 예측 가능하면서도 피할 수 없는 우리의 디스토피아적 사회상을 그려나간다.

한국문학에서는 보기 드문 시도라 주목하게 된다. 하지만 모든 디스토피아 소설이 그렇듯이, 궁극적으로 겨냥하는 것은 바로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김인숙, 권여선, 최인석, 세 작가가 공통적으로 묻는 것이기도 한데, 그것은 현재 우리가 살 만한 삶을 살고 있는지, 이렇게 살아도 좋은 것인지, 란 물음이다. 이렇게 살아도 좋은 것인지...

 

14. 1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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