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생각할 필요 없이 날씨만으로 12월이고 겨울이다. 늘 그렇지만 이맘때면 일정이 많건 적건 간에 마음 한쪽이 분주하다. 하루를 정리하고 한달을 정리하는 일에 덧붙여 한해를 정리해야 하니까. 다사다난했다기 보다는 험난했다는 표현이 어울릴 2014년을 정리하는 마지막 달에 읽을 만한 책들을 골라놓는다.

 

 

 

1. 문학예술

 

읽어볼 만한 한국소설로는 '은행나무 노벨라' 시리즈를 고른다. 비슷한 분량이라도 '경장편'이라고 우기지 않고 '노벨라(중편)'라는 점을 표나게 내세웠는데,  시리즈 목록이 좀 늘어나면 단편도 아니고 장편도 아닌, '중편'이란 과연 무엇인가, 생각해볼 거리도 제공해줄 듯싶다(중편의 시학?). 배명훈의 올여름 배명훈의 <가마틀 스타일>로 첫발을 뗀 이후 김혜나의 <그랑 주떼>, 김이설의 <선화>, 최민경의 <마리의 사생활>까지 네 편이 선보였다. 현재까지는 <선화>가 가장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듯하다.  

 

 

세계문학 쪽으로는 최근 셋째 권이 나온 '문학동네 세계시인 전집' 시리즈를 고른다. '선집'이 아니라 '전집' 시리즈다. 세이머스 히니, 필립 라킨에 이어서 폴란드 시인 <즈비그니에프 헤르베르트 시전집>(문학동네, 2014)이 이번에 나왔다. "1956년 출간된 첫 시집 <빛의 심금>을 필두로 1998년 출간된 마지막 시집 <폭풍의 에필로그>까지 총 10권의 시집에 빠졌던 작품들까지 한데 묶은 이번 시전집은 역자 김정환의 즈비그니에프 헤르베르트에 대한 오랜 관심에서 출간까지 빛을 볼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무려 936쪽, 번역의 노고가 여실히 느껴지는 분량인데, 이 참에 영역 선집도 구해볼까 싶다.

 

 

예술 분야의 책으론 좀 가볍게, '모마 아티스트 시리즈'를 고른다. 12권이 한꺼번에 나왔는데, 뉴욕의 현대미술관 '모마'가 현대미술가 12인을 집중조명한 시리즈다. 현대미술 전성기의 주역으로 세잔, 브랑쿠시, 레제, 마티스, 피카소, 호안 미로 등 6명, 그리고 미국 현대미술의 대표작가로 드 쿠닝, 폴록, 재스퍼 존스, 리히텐슈타인, 워홀, 라우센버그 등 6명이다. 개인적으로는 다소 덜 알려진 미국 현대 작가들의 작품세계에 대해서 일별해볼 수 있겠다 싶어 반갑다.

 

 

 

2. 인문학  

 

인문학 분야에서는 출판사를 옮겨 다시 번역돼 나온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와이즈베리, 2014)를 고른다. 200만부 이상 팔려나간 책이지만 실제 독자는 생각만큼 많지 않다는 게 출판계의 생각이다. 그 실제 독자 수가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나대로 그런 바람을 갖는 이유는 별권으로 나온 해제에 적었다). 여전히 좀 어렵게 느껴지는 독자라면 <10대를 위한 정의란 무엇인가>(미래엔 아이세움, 2014)를 대신 읽어봐도 좋겠다. 토머스 캐스카트의 <누구를 구할 것인가?>(문학동네, 2014)는 <정의란 무엇인가> 때문에 널리 알려진 '전차(활차) 문제'를 폭넓게 다룬 책으로 '‘도덕적 딜레마’ 시대를 사는 이들을 위한 탁월한 윤리학 입문서'이다. 승계호 교수의 <철학으로 읽는 괴테 니체 바그너>(반니, 2014)는 고급 인문독자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올해의 책 가운데 하나다.

 

 

 

3. 사회과학

 

사회과학 쪽에서는 최근에 나온 자본주의 관련서들을 골랐다. 월러스틴 등의 <자본주의는 미래가 있는가>(창비, 2014)를 포함해서, 자본주의의 역사를 다룬 울리케 헤르만의 <자본의 승리인가 자본의 위기인가>(에코리브르, 2014), 그리고 데이비드 하비의 <자본의 17가지 모순>(동녘, 2014) 등이다.

 

 

더불어, 한국사회의 지울 수 없는 상처이자 질문이 된 세월호 문제를 다룬 책으로 <눈먼자들의 국가>(문학동네, 2014), <4.16 세월호 민변의 기록>(생각의길, 2014), 그리고 <사회적 영성>(현암사, 2014) 등을 고른다. 올해가 다 가도록 우리는 여전히 '눈먼자'로 남아 있겠지만 손가락으로 더듬어서라도 알아내야 할 진실이 아직 우리 앞에 있다.

 

 

 

4. 과학

 

과학 쪽에서는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지식채널, 2014)가 아무래도 기본서. KAIST의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의 <김대식의 빅퀘스천>(동아시아, 2014)도 이름값이 기대되는 책이다. 같은 뇌과학자의 책으론 개정판으로 다시 나온 에릭 캔델의 자서전 <기억을 찾아서>(알에이치코리아, 2014)도 같이 읽어봄직하다.

 

 

<인터스텔라> 열풍에 기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사이언스북스, 보급판, 2006)를 다시 읽어봐도 좋겠다. 미치오 가쿠의 <평행우주>(김영사, 2006)도 현대 우주론을 이해하는 흥미로운 길잡이. 복잡한 수식 없이 밤하늘을 바라보고 싶은 독자라면 폴 보가드의 <잃어버린 밤을 찾아서>(뿌리와이파리, 2014)의 안내를 받아도 좋겠다.

 

 

 

5. 독서교육

 

그리고 내맘대로 고른 이달의 주제는 독서교육이다. 자극이 될 만한 책이 마크 바우어라인의 <가장 멍청한 세대>(인물과사상사, 2014). 실제적인 독서교육 방법과 사례에 대해서는 김은하의 <독서교육, 어떻게 할까?>(학교도서관저널, 2014), 경기도중등독서토론교육연구회 교사모임에서 펴낸 <함께읽기는 힘이 세다>(서해문집, 2014)를 참고해볼 수 있겠다.

 

14. 12. 03.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은 예기치 않은 출현으로 최근 알라디너들의 환영과 지지를 받은 새 번역 <돈키호테>(열린책들, 2014)다. 예전에 창비판으로 읽고 강의를 했었는데, 새 번역본이 나온 김에 다음 주부터 진행하는 한 강좌에서는 열린책들판을 교재로 정했다. 겸사겸사 다시 읽어보려고 한다. 돈키호테와 함께 뭔가 제정신으로 지나온 것 같지 않은 한 해를 마감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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