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차 지방에 다녀오는 기찻간에서 주로 졸거나 알라딘 북플을 들여다봤는데(북플이 '북'과 '피플'의 합성어라는 것도 오늘에야 알았다), 너무 시간을 낭비한다 싶어서 몇 페이지 읽은 책이 조이스 캐롤 오츠의 <작가의 신념>(은행나무, 2014)이다. 주문했던 원서를 엊그제 받은 터라 아침에 같이 가방에 넣은 책이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가의 일>(문학동네, 2014)과 겹쳐 읽으면 좋을 만한 책(작가 지망생이라면 두 권 모두 필독해 볼 만하다).

 

 

원서도 주문한 건 만만한 분량인데다 오츠의 문장을 좀더 정확하게 읽어보고 싶어서였는데, 역시나 도움이 된다. 번역이 모호한 대목이 있고, 예기치않은 오역도 나오기 때문이다. 대단한 건 아니므로 2쇄때는 교정되면 좋겠다 싶어 적는다. 먼저, 젊은 작가들에 대한 오츠의 충고.

젊거나 갓 시작하는 작가들은 끊임없이 고전과 현대 작품 양쪽을 광범위하게 읽어야 한다. 이 기술의 역사 속에 푹 빠져보지 않은 작가는 아마추어, 즉 '창조적 노력의 95퍼센트가 열정뿐인 개인'으로 영영 남게 되기 때문이다.(10쪽)

'기술의 역사'는 'history of craft'를 옮긴 것이다. 장인적 기예를 가리키며 오츠는 작가를 '기능공'이라고 부른다. 막심 고리키 같은 작가가 스스로를 일컬어 '숙련공'이라고 부른 것과 마찬가지다(기능공이나 숙련공이나 영어 단어로는 'craftsman'을 옮긴 것이다). 이 숙련공이 전업 작가인 것. 반면에 아마추어란 열정으로 뭔가를 해보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오츠가 말한 건 창조적 노력의 '95퍼센트가 열정뿐인 개인'이 아니라 '99퍼센트가 열정뿐인 개인'이다. 'ninety-nine percent'를 특별한 의도가 있어서 '95퍼센트'로 옮긴 것 같지는 않고, 선입견에 따라 잘못 본 게 아닌가 한다.

 

오츠의 에세이들 가운데 가장 먼저 읽은 건, 원서를 주문하기 전에 조금 들여다봤던 '작가의 독서: 기능공으로서의 작가'다. 작가는 글을 쓰는 사람을 가리키지만, 독서가 빠진다면 과연 무엇을 쓸 수 있을까. 오츠의 생각도 그렇다. "당신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작가가 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작가가 되고 싶다면 책을 읽어야 한다."(142쪽) 에세이는 바로 그 작가의 독서 경험을 여러 다른 작가들과 오츠 자신을 사례로 삼아 다룬다. 가령 젊은 카프카의 경우는 어떤가.

 

"나를 찢어버리지" 않기를 바라면서, "내가 머릿속에 갖고 있는 거대한 세계"를 산문으로 바꾸어 그 세계의 압력을 해소하기 위해 밤샘 작업하며 첫 소설 <소송>을 고투 속에서 쓰고 있는 젊은 프란츠 카프카를 생각한다.(123쪽)

얼핏 문제가 없는 듯싶지만, '첫 소설 <소송>'이라고 옮긴 건 'his first story, "A Judgment"'다. (장편)소설이 아니라 '선고' 또는 '판결'이라고 옮겨지는 단편을 가리킨다. 1912년 9월 22일 밤 10시에 시작해 아침 6시까지 꼬박 8시간 동안 매달려서 완성했다고 하는 단편으로 카프카로서는 창작에 결정적인 돌파구였고 가장 만족스러워 한 작품 가운데 하나다. 역자가, 더구나 송경아 작가가 <소송>이라고 잘못 옮긴 건 의외다.

 

 

그리고 레이먼드 카버에 대한 한 대목. 나도 강의에서 자주 언급하는 카버의 마지막 발표작 <심부름>을 언급하고 있어서 반가운데("체호프의 마지막 나날들과 죽음, 그리고 그의 죽음에 따른 사건에 대한 것") 이에 대한 오츠의 평은 이렇다.

그것은 실제로 체호프의 전기에서 고쳐 쓴 것이지만 카버의 특징인 스스럼없는 문체와는 달리 긴박하고 시적으로 추출된 문체로 쓰였다. 쉰 살의 젊은 나이에 폐암으로 죽음에 다가가며, 레이먼드 카버는 마흔네 살에 폐결핵으로 죽은 그의 영웅 체호프의 요절 이야기를 위해 새로운 목소리를 만들어낸 것 같다.(139쪽)

이 단편이 <대성당>(문학동네, 2014)에는 빠져 있어서 아쉬운데, 단편집 <내가 부름 받고 있는 곳(Where I'm Calling From)>에 수록돼 있다. 그런데, '내가 부름 받고 있는 곳'이란 번역은 아무래도 오역이다. <대성당>에 '내가 전화를 거는 곳'이라고 번역된 작품이고, 내용상 그게 맞는 것 같기 때문이다. 수년 전 카버의 단편들을 읽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 가운데 하나였다.

 

카프카의 단편이나 카버의 단편이나 많이 읽히는 작품이고 번역도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자나 편집자가 확인하지 않은 건 불찰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피할 수 있는 실수들이다. 작가의 독서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고...

 

14.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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